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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Jul 09. 2024

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

블루비틀 - 진정한 가족에 대하여

감독 앙헬 마누엘 소또, 주연 숄로 마리두냐, 수잔 서랜든 외, 블루비틀, 미국, 2023.



우리 도장의 칠레 사제지간- 미스터 펠리페 사범님과 가비-정확한 본명은 미즈 가브리엘라 우르비니는 시도 때도 없이 만날때마다 껴안는다. 일단 도장에서 만나서 서로 껴안고, 연습하다가 고생했다고 껴안고, 훈련 끝날때도 껴안고, 하여간 자주도 껴안는다. 그래서 왜 자꾸 서로 껴안고 껴안고 하냐고 물었더니 둘다 젊은 사제지간- 씨익 하고 웃으며 칠레 스따일, 칠레 스따일~ 하며 나도 껴안아준다. 칠레는 가족간은 물론이고 친구 사이에도 항상 자주 껴안는단다. 프랑스의 입맞춤식 인사 비쥬Bisou랑 비슷한건가? 하기사 그 유명한 픽사 애니메이션 코코Coco에서도 그랬지만, 당시 임신했던 아내랑 나랑 정말 펑펑 울면서 봤는데, 머나먼 남미가 그렇게 우리나라 못지 않은 찐한 가족애를 연상케할줄은 진짜 몰랐다. 가족사랑에 고금동서가 다르겠냐만서도, 사실 쥬노Juno를 보면서도, 미국 부모님들은 진짜 세상말로 엄청 '쿨' 할줄 알았는데, 미성년 딸이 임신해서 오니까 어느 놈이 애 애비인지 하여간 다리몽댕이를 분질러버리겠다고 하는 아버지하며(아니, 그래, 어서 날잡고 결혼하자 허허허 하면서 허락해주는게 미국 부모님 아니었어?! ㅋㅋ), 제멋대로 살아온 조수가 알고보니 자기 아들이라는 걸 알자마자 대번에 따귀 날리며 '너 임마 당장 귀국해서 대학부터 졸업해! 너가 네멋대로 살아도 적당히 칭찬해주고 했던건, 네가 내 자식인걸 몰랐을때나 그런거지!' 하며 화를 내던 희대의 도굴꾼, 인디애나의 존스 박사도 그렇고, 이번에 무료로 풀려서 본 DC코믹스의 아이언맨- 블루비틀 역시 그렇다.



멕시코의 빈민촌에서 힘겹게 살면서 아들의 출세를 위해 미국 본토로 유학보내 대학 졸업까지 마치게 한 레예스 가문. 아들이 학사모를 쓰고 졸업하는 날 공항까지 온 가족이 맞이하러 나오는 것도 그렇고, 아들이 대기업 면접을 보러 가는 날에도 온 가족이 응원하며 소리지르는 일까지, 웬지 우리 가족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어느 나라의 젊은이들이 대부분 그렇듯, 제아무리 학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가문의 장남 하이메 레예스도, 이미 결딴난 집안을 일으키긴 어려웠다. 열심히 카센타를 운영하던 아버지는 학비를 대느라 허리가 휘도록 일하다 한 차례의 심근경색으로 죽다 살아나 제대로 일도 못하고, 집 월세는 3개월이나 밀려 있었으며, 고향을 떠나고 싶진 않지만, 마땅한 직장이 없어 레예스 가문의 두 남매는 부잣집 청소를 해주면서 근근히 살아간다. 이 와중에 하이메는 그 유명한 그린 랜턴(아니다, 이 악마야!)에게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진 외계 생물 스캐럽에 감염되어 마치 아이언맨과도 같은 로봇 갑옷을 두르게 되고, 때마침 1인 군대를 표방하는 전투 로봇 오막OMAC 에 더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기 위한 군사기업 코드의 공격을 훌륭히 막아내고 영웅으로 우뚝 서게 된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핏줄이 같거나, 함께 산다는 것만으로 가족이 아니라, 어떤 가치관을 지니는 공동체가 가족인지를 뚜렷이 보여주려 한다. 마치 아이언맨의 스타크 인더스트리를 연상케 하는 코드 인더스트리의 주력 상품 오막OMAC 은 One Man Army Corps 의 약자로, 말 그대로 개체 하나가 군대 하나를 표방할 정도로 만능이라는 뜻이다. 마치 요즘 유행하는 혼삶- 1인 가정 등을 상징하는 듯하다. 전화기 하나만 있으며 배달 음식부터 오락, 음악, 영화 등 뭐든지 주문할 수 있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가상공간 상에서 주로 하고자 하며, 육체적 욕망이나 심지어 임신, 출산까지도 정자, 난자 은행의 도움으로 가능한 세상이 되었다. 좋고 나쁘고 를 따지고자 함이 아니라 1인 군대 오막은 무엇이든 혼자서 해결할 수 있다고 외치는 1인 시대를 상징하는 듯이 보인다. 반면 레예스 가문은 비록 힘들게 어렵게 살지언정 가족 간의 유대감이 몹시 끈끈하며, 어떤 일을 만나든 가족들이 함께 공유하고, 논의하며 해결하고자 애쓴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열쇠는 바로 '희생' 이다. 수잔 서랜든이 열연한 코드 인더스트리의 현 총수인 빅토리아 코드는 말끝마다 '큰 일을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고 되뇌이지만, 정작 자신은 그 희생에서 늘상 쏙 빠진다. 레예스의 몸에 장착된 스캐럽을 억지로 빼낼때도 이 말을 쓰고, 자신의 충실한 오른팔인 이그나시오가 고통스러워할때도 이 말을 쓰고, 심지어 자신의 친조카인 제니 코드조차도 희생을 강요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쓴다. 그러므로 그녀는 말로는 하나밖에 없는 핏줄이다, 신뢰하는 부하다, 라고 말하지만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만 살아남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레예스 가문은 말 그대로 가족이기에,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자신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실제로 하이메의 아버지 알베르토는 딸을 구하려다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아들을 구하기 위해 전직 게릴라 출신이던 할머니도 아낌없이 총을 들고 전장에 뛰어든다. 마치 이야말로 진정한 가족의 희생이라는 점을 몸소 보여주는 듯한 행보다.



블루비틀은 남미 특유의 지역성이 강하여 국내는 미개봉되었고, 실제로 많은 면모에서 일본 특수촬영 전대물의 연출을 따라 다소 과장되고 유치하다는 평도 받았으나, 우리 나라에서 개봉했어도 좋았을뻔했다. 적어도 가족이 함께 보기에 즐거운 흥행물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극장 밖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다. 동급생을 화장실로 끌고 가 칼로 난자해 죽인 뒤, 본인도 옥상에서 몸을 날려 자살을 기도한 학생이 있었고, 여전히 제 핏줄을 굶기고 학대하고 죽이고 미워하는 가족들이 산재하여, 도대체 왜 이래야만 하는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가끔, 내 가족의 행복을 누군가에게 얘기하거나, 혹은 이 곳에 올리기가 몹시 조심스럽다. 비록 나 역시 엄격하고 우울하고 휘어진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적어도 내가 남편이자 아비가 되고 나서는, 우리 부모님의 마음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고, 또한 부모가 되면 마땅히 자식을 사랑해야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그러므로 사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는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행동하는 부모는 이미 논외다. 이야기할 가치도, 범주도 아니다. 그러므로 제 자식을 평생 초원 위의 공놀음으로 세상의 정점에 올려놓았다 한들 그 돈을 탐하여 자식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저 스스로도 죗값을 받아야 하는 아비도 아비라 할 수 있을까. 제 자식을 외로움에 죽이고도, 연예인으로서 높게 받은 보험금을 생모랍시고 나타나 홀랑 챙긴 여인도 어미라 할 수 있을까. 평생 쉼없이 일하여 벌어온 돈을 탕진하며 아들을 노예처럼 내몬 가족을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 자리에 있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말하기 조심스러우나, 회사의 어느 동료는, 출산을 하고 났더니 아내도 여자로 보이지 않고, 딸도 그저 지긋지긋하기만 하다며 이혼했던 전 남편이 더 어린 여자를 만나서 또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더라는 말을 하며 내 앞에서 치를 떨었다. 여유가 있었더라면 아내 허락을 받아 술이라도 한잔 마셨을 터이다. 내 자식이니까 참고 키우지 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토록 힘들고 어려워도 내 새끼이기 떄문에 얻는 행복이 있다. 그러므로 아이를 사랑하는 추상적인 감정 때문에 혼자 벌어 조용히 살다 가는 행복을 버리고 싶지 않다며, 자식 낳아봐야 상류층 계급의 노예 역할이나 하다 갈것 아니냐, 내 자식 뼈빠지게 일하는 동안 여행 다니고 호의호식하는 상류층 자식의 꼴 더러워서 못 보기 싫으니 결혼도 출산도 아니 하리라는 누군가의 말이 이해는 되었되, 옳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내 자식은 곧 또다른 나이니, 마치 도장에서 사제사매와 함께 연습하며 기초를 가다듬듯, 나도 내 어린 삶을 다시 사는 듯한 기분이다.



아이와 함께 있을때 우리는 그래도 부모라고, 어디든 가서 꼭 비싸지 않더라도 가족이 다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즐겁게 나눠먹고, 돈이 많이 들지 않더라도 박물관이든 공원이든 가서 함께 놀며 추억을 쌓고, 또 아내가 출장 온 길에 우리는 다같이 가서 일하는 어미 모습도 보여주고, 다양한 지역의 특산물도 맛보고 왔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또한  희생이나 피로가 아니라, 마땅히 가족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행복이다. 그러므로 사실 블루 비틀이 정말로 마블의 아이언맨, 혹은 DC의 또다른 갑부 배트맨과 다른 점은, 언제나 그의 등 뒤에는 든든한 가족이 버티고 있다는 점이다. 아비이자 남편으로서 내 역할이 없다면, 나는 과연 힘들었던 청춘을 보내고 이토록 행복할 수 있었을까? 나 역시 한 마리의 딱정벌레처럼 열심히 살아 가족을 봉양하는 이 삶에 충분히 행복하고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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