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오랜만의 훈련일지
하루의 책읽기는 고작해야 점심 먹고 사피엔스 30분 정도로 줄었지만, 훈련 시간은 매일매일 꾸준히 늘었다. 회사가 가까워져 확실히 부담이 덜하고, 무엇보다 요즘 아버지께서 소은이 돌보시며 어찌나 기쁘신지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부부를 부르시어 소주 한두 병의 낙을 즐기시니 아침 훈련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좁은 방에서 뉴스를 틀어놓고 아령과 밴드로 기초 기술 수행을 하고 회사에서도 계단을 애용하며 수시로 팔굽혀펴기와 스쿼트를 해주었더니 몸매는 아직 바나나우유 단지마냥 동그래도 제법 힘이 돌아왔다. 매일 하루 한 시간씩이나마 기초수행을 거르지 않았더니 골반도 금방 풀어져 연속차기나 상단차기를 할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악명 높은 고당 틀의 옆차찌르기 후 발을 유지한 채 반 바퀴 돌기도 비록 볼썽사납긴 해도 그럭저럭 돌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이래서 사람은 술을 자주 마셔주어야.. 읍읍.
오늘은 날씨가 좋아 옥상에서 혼자 맞서기 연습을 했다. 아내는 모처럼 단잠에 빠졌으니 딸이 집에 있을 때는 누릴 수 없는 사치다. 열심히 땀을 빼다가 옥상 구석에 집을 짓고 먹이를 쟁여놓은 거미를 보았다. 집값이 천정부지 치솟던 시절에는 달팽이나 소라게를 부러워하더란 이야기도 있는데 이 거미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여러 세대를 혼자 독식하고 그럴듯하게 먹이를 척척 걸어놓았다. 리처드 도킨스나 유발 하라리 같은 현대 석학들은 각 생명에게는 스스로를 유지시키는 본능적 정보가 각인되어 대대로 물려진다 했다. 유학에서는 보통 성性 이라고 한다.
아이와 함께 걷던 지난 주말, 태풍이 뒤집어 엎고 간 옥빛의 맑은 안양천에서 아내는 누가 잘라낸듯한 나뭇가지를 줍고는 거위벌레 이야기를 해주었다. 거위벌레는 말 그대로 거위처럼 큰 부리가 있는 곤충인데 열매에 알을 깐 다음 행여나 새에게 잡혀 먹히지 말라고 나뭇가지를 입으로 끊어 흙바닥에 떨어뜨린단다. 유충은 열매를 파먹으며 자란 다음 흙으로 들어가 성충이 되면 다시 제 어미아비가 하던 일을 반복한다. 이 때 반드시 나뭇잎이 넉넉히 붙어 있는 가지를 잘라줘야 알이 든 나뭇가지는 마치 낙하산처럼 뱅글뱅글 돌며 느리게 안착한단다. 갈릴레이마냥 낙하의 원리를 본능에 새기기까지 한낱 곤충조차 얼마나 많은 세대를 거쳐야 했을까? 그래서 도킨스도 하라리도 인본주의를 비웃으며 인간ㅡ사피엔스는 그저 지구의 한 생명뿐임을 강조한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연적 본능을 억제하는 종은 인간뿐이란다. 하기사 이영도 선생 말처럼 올바른 생활태도를 지녔다면 굳이 출중한 검술을 욕심낼 필요가 없다. 나는 무엇하러 늙고 둔한 몸에 그나마 기술을 놓치지 않는다고 꼭두새벽부터 잠을 설쳐가며 수선을 떨고 있을까,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