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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국가의 역할

by Aner병문

백전노장의 망치가 모루를 정확히 찍었다. 바이든의 공세에 트럼프 대통령은, 나라(nation)와 세계에 대혼란을 주고 싶지 않아 코로나에 대한 정보를 통제했었노라고 결과적으로 시인했다. 결국 미국이라는 제국이 있는 시대에 살기 때문에 로마 시대나 진나라 시절을 되새겨 읽어야 한다는 강신주 선생의 말은 물론 옳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백인제일주의를 내세우며 노골적으로 미국이 세계의 중심이자 대표임을 공인하려는 트럼프 또한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한 미국을 "다스리는 사람" 이기에 그는 혼란을 막기 위해 스스로 정보를 통제했노라 공언할수도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사실 서른이 넘은 나로서는,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물어봄과 동시에 국가의 역할 또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십대의 나는 모든 자유를 억압하는 통제를 강렬히 비난해왔지만, 서른이 넘으니 희한하게도 그럴 수 없어졌다. 이십대에 맑시스트가 아닌 이는 바보라지만, 서른이 넘고서도 맑시스트인 이는 더욱 바보라던가. 나는 이제 다치지 말라고 덮어놓고 아이 손에서 칼부터 빼앗는 아비어미의 심정을 이해한다. 물론 국민의 행복을 위해 불가피한 국가의 통제를 인정하는 마음은 기껏해야 전근대 목민관의 심정에 지나지 않으며 푸꼬 식으로 말하자면 내 스스로 국민이 통제가 필요한 영유아적 존재임을 자인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국가의 기본은 통제이자 규율이며 때로는 폭력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집단화된 개인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을 국가는 해낸다. 그래서 우리는 때때로 국가를 신뢰하고 스스로 종속되며 때로는 자부심을 느낀다.



트럼프의 발언 자체는 이해가 되며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격동의 민주화를 겪은 우리들로서는 저러한 정부의 논리가 확장되는 순간 얼마나 큰 폭력으로 변할 수 있는지도 잘 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때때로 어떤 사안이든지 국민이 스스로 전문가이자 감찰관이 되기를 요구한다. 복잡하고 피곤한 세상이다. 그냥, 사범님께서 흰 띠 수련자들에게 처음부터 뛰어뒤돌아옆차찌르기 를 가르쳐주지 않는 좁은 맥락 안에서 세상이 쉽게 이해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나는 2단을 받은지 3년째인 지금도 뛰어뒤돌아옆차찌르기는커녕, 그냥 뒤돌아옆차찌르기도 흔들흔들 시원치 않다. 어제도 소주 1병, 오늘 아침도 뉴스 틀어놓고 1시간 훈련했다. 저녁 훈련만 마저 할 수 있음 참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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