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동안 세상은 더욱 느리게 흘러가는듯이 보였다. 송나라의 밤거리에서 따왔다는 불야성의 전등들은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갑자기 나타난 트럭 장사들을 따라 강변이나 공원 둔치에 모여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웠다. 나는 술을 열심히 마셨지만 담배는 애초부터 태울 줄 몰랐다. 나는 아내가 아이와 잠든 아침에 비어 있는 어학원 시간 대신 한 시간씩 불충분하나마 기초 수행을 했고, 점심 단 이십 분에도 책 몇 줄을 읽었다. 안타깝게도 저녁에는 깊이 있는 훈련이나 독서를 하거나 처자식과 오붓하게 보내는 시간 중 무엇 하나 선택할 수 없고 거의 술을 마셨다. 모처럼 단둘이 남은 시간, 아내가 구워주는 삼겹살에 소주를 마셨고, 찾아온 벗들과 생고기, 부침개, 국수에 막걸리를 마셨고, 나머지 시간에는 아버지와 갖가지 밥상으로 술을 마셨다. 늘 행복하신 아버지는 서울 근교의 한적한 밥집을 찾으시거나 혹은 좋은 안주거리를 찾아오셨다. 그러므로 나는 아버지와 족발 보쌈에 소주를 마셨고, 어머니가 캐오신 바지락에 또 소주를 마셨고, 어머니가 드시고 싶으셨으며 정작 바닷가 출신인 아내는 먹어본적도 없다는 병어조림, 간재미 매운탕에 지역소주를 마셨고, 어머니가 끓여오신 오리 백숙에 막걸리와 보드카를 마셨다. 인사동 시절, 수염 형님과 밥 잘하는 유진이는 가게를 닫을 무렵, 늘 짜투리 재료로도 기가 막힌 안주를 만들어서 셋이서 자주 어울려 하루도 아니 빠지고 마시던 그 총각 시절이 떠올랐다. 병어 조림은 달고 부드럽고 고소했지만, 아내는 끝내 사십도짜리 보드카를 마저 비우려는 내 손을 상 아래로 톡 쳤다. 덕분에 총각 시절, 제가 무슨 까뮈라고 파카 안주머니에 콕 끼워두고 비어가는 정수리가 마음처럼 시리던 날에 한두 모금씩 꼴깍 넘기던 손가락만한 보드카 병은 안즉 두어 모금 남아 냉장고에 오도카니 서 있다. 2주간 느린 축의 시간이 다시 흘러 스트렛칭괴 팔굽혀펴기를 마치고 어학원을 나가는 오늘 아침, 커피에 자꾸 남은 보드카를 타려는 손을 거두느라 무척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