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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사는이야기)

오늘의 면식수햏!(5) ㅡ 충주 ㅊ 면옥, 사당 ㅎ

by Aner병문


1. 충주 ㅊ 면옥.


이번 추석 때 정말 오랜만에 강원도에 계시는 천사고모 댁에 다녀왔다. 평생 기도원 봉사와 교회를 다니시면서, 사촌 형님 누님들 남부럽지 않게 잘 키워내시고 신실히 사시는 분이다. 늘 우리가 연락드리고 찾아뵐때마다 천사처럼 맞아주시고 우리 편을 들어주시는 고마운 분이시다. 물론 카지노 가까운 동네 길목 어귀에 들어서자마자 열 개가 넘는 전당포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어서 더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평균 기온 10도는 더 낮은듯한 시원한 동네에서, 초가을이어야 마땅할 추석 즈음에도 여전히 더웠는데, 강원도는 등골이 저릴만큼 시원하고 모기도 없어서 좋았다. 그나마 그게 더워진 것이라 하니 더 놀랍기도 했는데, 과연 강원도에 맞닿은 충청도로 바로 내려오자마자 순식간에 습기가 끈적이는 더위가 확 몰려와서 강원도에서의 휴가가 꿈인가 싶었다. 충청도 선산의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 잘 드리고, 다시 올라오는 길, 다음날 출근 때문에 하루만에 강원도에서 충청도를 거쳐 다시 돌아가야하기에 점심 때를 애매히 놓쳤는데, 마침내 소은이가 배고프다고 찡찡대니, 그 날은 추석 당일, 과연 문 연 가게가 어디에 있을까, 하다가 잠시 저녁 장사 준비를 하다가 17시에 문을 연다는 ㅊ 면옥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16시 30분 정도에 우리 가족 도착했는데, 이미 주차하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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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전혀 기대하지 못했는데, 아주아주 맛있는 집입니다.

추석 당일이라 문 연 집도 많지 않았고, 상경길에 들를 수 있는 집으로 급하게 찾았는지라 사실 그렇게 큰 기대가 없었어요. 그런데 소위 말하는 '웨이팅' 이 상당히 많기도 했고, 눈썰미 좋은 아내는 '오, 여기 맛있는갑데이, 보시소, 사람들 기다리라 밖에 의자 다 빼놓고, 담배 피우는데도 있다 아입니까.' 하면서 셜록홈즈 같은 매의 눈을 빛내더군요. 아닌게아니라 17시 딱 되어 문 열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는데, 우리 가족도 겨우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어요. 아주 날렵하게 생긴, 한국말 그럭저럭 잘하는 동남아 출신 여직원분 하나가 그야말로 닌자처럼 뛰어다니며 주문을 잘 받더군요. 그런데 탈북하신 사장님이 고향에서 먹던 그 맛이 그리워 그대로 만들었다는 설명도 설명이었는데, 만두에, 수육에, 어복쟁반까지.. 오, 대체 이 집 뭐지?! 마치 다 쓰러져가는 문파에 절정고수가 있었다는 내용의 무협지처럼, 엄청난 집에 들어와버리고 만 것인가?


평양냉면을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평양냉면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살짝 얼굴이 흐려졌는데요, 날도 더웠겠다, 일단 나온 냉면 육수 한번 후루룩 들이키더니 냉면그릇 아래로 나온 표정은 활짝 밝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수원에서 먹었던 평양냉면보다 이 집이 몇 수 위였어요. 아주 강하지도, 그렇다고 담백하지도 않게 간을 절묘하게 한 평양냉면 육수에, 부드러운 메밀면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일품이었습니다. 두부와 김치를 잔뜩 다져넣은 만두도 맛있었구요, 메밀전은 미처 먹어보지 못했지만, 메일을 잘 다루는 집인듯하니 맛있었겠죠. 대부분의 자리는 쉴새없이 냉면을 드시고, 빠지고, 또 들어오고 정신없었지만, 어복쟁반이나 수육에 느긋하게 약주를 드시는 자리도 꽤 있었습니다. 이미 이 지역에 상당히 자리잡은 맛집임을 알겠더군요. 비빔냉면 또한 달지 않고, 새콤매콤한데다 면과 고명이 충실해서, 정말 부모님 계셔서 술 한 잔 못했던게 천추의 한이었습니다. 안주에 술 한잔 찐하게 하고, 해장삼아 평양내면에 마지막 입가심 술 한잔하면 그만일, 최고의 집이라고 생각했어요. 오죽하면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냉면 한두그릇씩 더 주문하셔서 나눠서 먹었습니다.

충주 가실 일 있다면 꼭 한번 드셔보시길 권합니다. 벌써 한달쯤 지난 일인데도 아직도 눈 앞에 선연하여 입에 침이 고이네요.




2. 사당 ㅎ

가끔 아내 없이 평일에 혼자 쉬게되면, 혼자만의 시간이라지만 빠듯하다. 일단 아이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도장으로 향하는 버스타면 보통 9시 30분. 도장 앞 까페 사장님하고 수다좀 떨며 커피 받아오면 보통 10시 30분. 청소하고 몸 풀면서 오전반 시작하면 11시. 지도 보조 및 개인훈련까지 마치고 나면 12시 30분에 목욕까지 하면 벌써 한 시 정도 다 되어간다. 사범님과 점심 한끼 하고 커피 한잔 마시면 벌써 그 시간이 2시 정도. 후다닥 집에 오면 세 시. 화장실 쓰고 삼사십분 정도 눈붙이고, 바로 일어나서 다시 세수 한번 하고, 바로 소은이 데리러 가서 조금이라도 놀고 들어온다. 이럴 떄 아니면 언제 또 제 아비와 놀랴! 그러므로 저녁 먹을때쯤 들어오면, 소은이는 계단참에서 벌써 코를 실룩거리며 '와아, 맛있는 냄새가 난다, 아, 그렇구나! 할머니가 하고 있는거구나!' 하며 우다다 뛰어올라간다. 덩치도 크고 혀도 트여 안그래도 배고파 저녁을 먹고 싶어하는 아이를 달래어 겨우 씻기고, 행여나 감기 올까 머리 말리며 피부약 발라주고 옷 입히고 밥 한끼 먹이면, 이미 나는 지쳐 늘어진다. 그러나 그래도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글씨 한번 쓰나 싶어 종이나 칠판 펼쳐주고 글씨 좀 공부시키다, 또 딸내미 지루해하면 TV 좀 틀어주고, 아비도 그때서야 밀린 공부 좀 하고, 그러다 재우고.. 오히려 쉬는 날이 더 바쁘기 짝이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이런 나날에, 심지어 가끔 사범님과 식사도 못할때, 짬내어 어데 가서 면이라도 먹어주면 그래도 세상말로 일상이 조금 '리프레시Refresh' 되는 기분이다. 아내는 따뜻한 잔치국수를, 아이는 냉면을 가장 좋아하니, 나는 이럴때 아니면 언제 라멘을 먹어보나 싶어 요즘에는 가까운 곳에 라멘집을 찾아보는 편이다. 사실 멀지 않은 독산동에 '먹을텐데~' 성시경 씨 다녀간 유명한 평양냉면 집 있다 하여 좀 더 날씨 서늘해져 냉면 먹을 이 적어지면 그때 슬쩍 가볼까 생각중이기도 하다. 아직은 혼자 가끔 입맛 다시기에는 라멘집이 더 좋다고 생각되고, 범계의 ㅇ 라멘은 실제로도 시간 나면 혼자서 두어번 갔었다.


그래도 늘 똑같은데 갈순 없으니 모처럼 비오던 날에, 소은이 데리러 갈 시간 가늠하여 후딱 다녀온 데가 있었다. 멀지 않은 사당의 ㅎ! 제법 평이 좋았고, 비도 지긋이 내려 이때야말로 갈때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비 오는 평일 점심, 비교적 한적한 거리에는 얕은 천처럼 물이 찰랑거렸지만, 그리 넓지 않은 라멘집은, 확실히 맛과 양, 모두로 승부하는 집이라는 소문 때문인지, 젊고 건장한 청년들이 모여 라멘과 덮밥을 우걱우걱 드시고 계셨다.



결론 : 기대햇던것보다는 간이 살짝 못 미쳤어요.

라멘보다는 가라아게 덮밥을 드시던 분들이 많아 살짝 고민은 했었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돈코츠 라멘은 없어서, 무얼 먹어도 중간은 한다는, 일본식 된장- 미소라멘과 가라아게 작은 접시를 주문했지요. 약간 달짝지근한 된장육수는 확실히 구수하고 먹을만했고, 면도 무난했습니다. 범계 ㅇ 라멘에 비하면 간이 약했는데, 그렇다고 전체적인 맛의 균형이 흐트러지거나 깨질 정도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다만 후루룩 빨아들여 씹을 때 쫄깃한 탄력으로 일종의 쾌감까지 불러일으키던, 범계 ㅇ 라멘의 면에 비해 사당 ㅎ의 면은 약간 다소곳하다 느낄 정도로 부드러웠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닭육수에 된장을 개어 은은하게 맛을 낸 된장라멘에 어울리는 면이었다고 생각이 듭니다. 사실 최근 여러 번잡스러운 이들이 많아 꽤 오랜만에 쓰는 감평인데, 그때도 밥을 말아 허겁지겁 한그릇 뚝딱 했을 정도니 사실 라멘에 대해서는 크게 만족도가 떨어지지 않았던 기억입니다. 지금도 혀끝에 살짝 침이 고이네요.



제가 이 집을 좀더 기억하게 된 건, 젊은 청년들이 하나같이 기세좋게 먹고 있던 덮밥의 가라아게, 바로 그 간 때문이었습니다. 겉 튀김옷은 정말 바삭했구요, 심지어 약간 감자향이 나도록 구수하기까지 했어요. 감자전분을 섞었나 싶을 정도였죠. 근데 문제는 간이었습니다. 가라아게는 일본식 닭튀김이니 살짝 짭짤한 느낌이 있어야할텐데, 심지어 찍어먹을 아무 소스도 없는데, 뒷향은 분명히 살짝 간장향이 나긴 해도 정작 튀김옷이나 그 속살에는 짠맛을 전혀 느낄수가 없어서, 약간 퍽퍽한 느낌까지 들었어요. 기름기가 강해 바삭하고 고소하게 부서지는 튀김옷과 담백한 닭고기는, 소금이 없으니 좀처럼 그 조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튀김옷과 닭살을 따로따로 먹는듯한 기분까지 들었어요. 그래서 정중하게 사장님께 여쭈어보니, 사장님 머쓱하게 웃으시며 '간장으로 간한거 맞아요. 처음에는 저희도 소금으로 염지를 했거든요. 근데 손님들이 많이들 짜다고 하셔서..' 아뿔싸, 그랬군요. 아마 개업하시고 처음에는 간이 좀 셌었나봅니다. 그래도 저도 한때 소싯적에 유기농 매장에서 무항생제 닭으로 진짜 염지해서 닭좀 튀겨봤는데, 소금 간이 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네요. 라멘이 좋았기에 더 아쉬웠나봅니다ㅜ 게다가 사장님의 내공과 인덕(?!)을 알수 있는, 화려한 장 좀 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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