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ㅡ 슬슬 일평도장 一坪道場의 날인가보다.
영어를 대충 듣고 흘려 말해버릇하면, 분명 일상회화를 그럭저럭 하긴 하는데 자막없이는 뉴스는커녕 영화, 드라마도 못 보는 병문이가 된다. 한자를 아무리 오래 쓰고 읽어도 갈겨 써버릇하면 막상.정자로 읽고 쓸때 손끝으로 어 어 붓방아만 찧는 병문이가 된다. 영어는 공교육으로만 십년이 넘었고, 비록 해외는 못 갔을망정 주짓수 도장, 태권도장, 인사동, 홍대 넘나들며 영어 쓴 세월이 길고, 한자는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써왔는데도 여전히 헤맨다. 기초가 부족하거나, 혹은 약해진 기초를 보완하지.않았기 때문이다. 나이.마흔이 되어서야 한 자, 한 장씩 다시 들여다보는 삶이 부끄럽고 번잡스럽다.
태권도를 포함한 다른 무공도 다르지 않다. 빠르고 격렬하게 치고 차는데만 치중하면, 올바른 자세를 잊게 된다. 잊은 순서야 다시 외우면 된다지만, 움직임의 요체를 건너뛰게 되면 겉보기만 그럴듯한 헛동작이 된다. 어느 무공이나 중심과 허리는 귀중한데, ITF는 위아래로 움직이는.싸인 웨이브가 더해져 신경쓸 겨를이 많다.
어머니 아버지가 급한 일로 지방에 출타하시고, 동생이 먼저 퇴근하여 아이를 데려온 뒤, 씻기고 먹여 뒤늦게 퇴근한 나와 교대한 오늘, 나는 이미 아침 일찍 아내를 배웅하느라 잠을 설쳤으나 이전부터 구상한 훈련이 있어 오늘 맛이나 보고자 했다. 어차피 나이먹어 물러지고 쇠하는 몸으로, 젊은 사제사매들 날렵하게 뒤따르긴.이미 틀렸으니 한 동작, 한 동작에 힘을 싣고 아주 천천히 움직여서 올바르게 구사하는 연습을 하고자 했다. 나는 이미 유급자 시절 몇번 시도한 연습법이었으나, 그때는 역설적이게도 지금보다 젊어 힘이 넘쳤는데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답답해하여 결국 옛날의 빠른 연습법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동안 옥상도장 못쓸때 연습하던 소은이 방에 모기장을 놓았기에 내가 연습할 자리는 더 좁아졌다. 그러나 설사 한 자락의 땅만 있다면 제자리걸음하며 태권도 연습을 충분히 할 수 있다. 나는 소은이를 보면서, 사주찌르기, 막기, 천지, 단군, 도산, 원효까지 아주 천천히 반복했다. 오랜만에 온몸에 힘 빡빡 줘가며 아주 천천히 느리게 한 동작 한 동작을 완성하니 온몸에 땀이 금방 솟았다. 그래도 십년 한 가락이 있어 도산 틀까지는 그럭저럭 했으나 구부려 준비서기 후 옆차찌르는 동작이 있는 원효 틀부터는 느리게 하니 허리 높이로 발뻗기도 힘들었다. 예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으나 더해야한다. 겨울은 실내에서 힘을 기르는 연습을 더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