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의 결, 업무의 결, 일상의 결
학교 다닐때, 옥은 결따라 깎아야 한다고 배웠다. 학교에서 돌이나 나무 깎는 법을 알려주지는 않으셨고, 새길 각 刻 을 배울때, 나무의 결을 따라 칼을 대어 깎는 모습이라 하셨고, 이치 리 理를 알려주실때도 옥 玉 을 결따라 재단하는 모습이라고 하셨다. 이십대의 나는 형식을 무시했고, 절차를 얕잡아보았으며, 교만할 정도로 실리 實利를 추구했었다. 오로지 형식을 파괴해야 비로소 결실을 거둘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는데, 사상의 기초를 다지기보다 오로지 현실에 바로 적용할 수 있을법한, 이른바 '~이즘ism' 이나 '~주의' 에 깊이 빠져들었고, 권투와 종합격투와 주짓수 등을 접하면서, 그저 상대를 치고 쓰러뜨리고 묶어 제압할 기술에만 골몰했다. 세상을 변혁하고, 상대를 때려눕히는 그 끝에 내 손에 잡힐 결실이 있으리라 끊임없이 믿었다. 그러나 무엇 하나 손에 남은 건 없었다. 내 스스로 삶을 망칠 정도로 열심히 했다곤 생각했는데, 아마 미생 未生의 장그래처럼 그냥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해야할지, 아니면 그 유명한 남원북철南轅北轍 의 고사처럼 남쪽 초나라로 가려는 이가 세상 좋은 말과 마차를 부리며 북쪽으로 열심히 달리는 꼴이었을지 나는 지금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김동인 선생의 무지개처럼, 내가 쫓던 꿈이, 적어도 나는 이룰 수 없었던 허망한 꿈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내 졸렬한 무공으로 정정당당히 제압할 수 있는 사내가 몇 되지 않듯, 나처럼 덜 여문 풋사내의 난삽한 요설로 쉽게 바뀔 세상이 아니었다. 세상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고, 만만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이제서야 나는, 그저 내일 없이 하루를 버티는 사내로서의 나를 본다. 군대에서는 그래도 휴가나 제대날은 기다리기라도 했다. 사실 회사나 혹은 짬내 도장에 있는 나에 비해 실제로 평일에 소은이를 돌보며 살림을 해주시는 어머니 아버지가 훨씬 더 집안 내의 일이 많으신데, 그러므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살림의 결을 틀어쥐고 계시고, 나는 내무반에 갓 들어온 신병처럼, 이미 살림에 대해 오랫동안 숙련된 어머니 아버지의 고삐를 따라 수건을 다시 접거나, 혹은 면도 후 세면대를 올바로 씻는 방법에 대해 올바로 몸에 익혀야 했다. 도장에서 걷고 서는 법을 다시 신경써 배우는 일과 다를 게 없었다. 업무도 이와 마찬가지라, 결국 사시사철 생산되고 가공되는 공정은 비슷하되, 항시 세상이 요구하는 기준은 높아지거나 다를 수 있고, 그를 관리하는 기계나 전산은 늘 똑같은 듯 하면서 다른 오류가 있을 수 있는지라, 결국 조직은 하나의 생물처럼 결따라 규칙따라 움직였다. 그러므로 살림과 마찬가지로 나는 회사에 들어서서도 늘 업무의 결을 신경써서 타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 모든 것이 합쳐져서 이미 일상이겠지만 올곧이 나로 남을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비록 몸은 더 피곤할지언정, 차라리 아침에 충분히 훈련하고 씻고 회사로 넘어가 모든 업무에 기력을 소진하고 이토록 늦은 시간이나마 잠을 깎아가며, 책을 읽거나 조금씩 공부를 하거나 남은 일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이, 비로소 나의 남은 결을 세어 정돈하는 일이다. 나는 늘 깎이우는 사람이다. 한편으로, 바울은 스스로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달라 세 번이나 기도했으나 그때마다 거부당했다. 그러므로 나는 노인에게 깎이우는 방망이도 아니지만, 늘 여기저기 일상에 굴러다니며 깎이우는 사람이다. 깎일때마다 웃으며 넘기거나, 혹은 속으로 깊이 새겨 안 그러도록 내 스스로 결을 남겨 놓지 않으면 살아 남을 수 없다. 현실적으로 업무량에 비해 너무 급여가 적어서 나는 처음으로 내 스스로 법인을 다시 옮겨야 하는가 생각중이다. 내가 속한 조직은, 늘 나보다 크고 넓고 의탁할 곳은 많아 뵈지만, 내 가정을 꾸리도록 톺아보는데는 더 많이 신경쓰지 않으면 안된다. 세상은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으므로, 이럴때일수록, 내 남은 결을 잘 지켜야 한다. 이십대처럼, 결을 무시한다거나, 혹은 일부러 결에 어긋나 가는 길은, 적어도 내게는 더 이상 감행하고 싶지 않은, 아주 바보 같은 모험이다. 아직도 부족한 내게는 읽어야할 책이 너무 많고, 처리해야할 일이 너무 많으며, 배워야할 기술이 너무 많다. 갈 길이 아득해 나는 먼지처럼 더욱 작다. 젊은 날의 동주-윤동주 시인은, 어떻게 쇠사슬처럼 옭아매는 조국에서 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노래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