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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er병문 Nov 15. 2024

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수능 잘 보셨기 바랍니다.

수능은, 순응하기 위한 이들을 골라내기 위한 잔인한 과정에 불과하다 여기던 때가, 이 아저씨에게도 있었습니다. 듣기 시험이 시작되면, 비행기조차 조심하며 날기를 저어한다니, 행여나 비둘기나 까치도 그런가 싶을 정도로 위세가 넘치는 시험입니다. 수능을 볼 무렵에는, 이 아저씨도 비록, 교복 허리띠 바깥으로 무른 뱃살이 넘치고, 구부정한 허리에 큰 안경을 낀 채, 햇볕 아래 지나는 시간을 어찌할 바 모를지언정, 가방 안 책더미들을 꼭 끌어안으며, 대학만 가면 이 모든 억압이 사라지리라 믿던 때가 있었습니다. 숱없는 머리를 일부러 빡빡 밀어, 구석에는 번개 모양 표시도 내어보고, 맞고만 다니다 난생처음 배운 기술로 드잡이질도 해보고, 하염없이 술과 사랑에 취해 지분대던 어두운 밤거리도 떠오릅니다. 그때 이 아저씨의 곁에 누가 있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혹은 기억해내선 안될 입장이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나생문과 지옥변만큼은 지금도 선명히 떠오릅니다. 만약 그 때 내 청춘에 제동이 걸리지 않았다면, 계속 돈을 벌 수 있었다면, 어쩌면 지금은 아직도 아저씨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지금.이 아저씨의 몸에는 문신을 새기지 않았고, 더는 몸을 기능적으로 찌우거나 빼지 않았고, 주짓수의 화려한 도복들은 모두 농 속에 깊숙이 넣어두었습니다. 만약 그 길로 계속 갔었다면, 적어도 지금의 처자식이 있는 우주에는 닿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다른 형태의 나를 감히 상상할수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 아저씨의 모습은 놀랍게도, 비록 실패의 흉터는 있을망정, 가장 최적의 선택들이 모아져 유지된 결과입니다. 가장 최선의 모습, 최근 읽은 아리스토텔레스 식으로 말하자면 가능태 중 가장 현실적인 형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세상살이 자체가 옥살이입니다. 너희 때가 좋다는 해묵은 농을 건네려는게 아닙니다. 수능을 지났다 해서 시험이 없지도 않고, 세상사는 매순간 음험하고 짜증스러운 시험의 순간이며, 수능의 높은 점수가 명문대와 연결되었다 한들, 그리하여 좋은 직업을 얻었다 한들, 삶의 의미와 행복과 직결되지도 않습니다. 사회의 축소판이 학교라 하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애초에 공교육의 목적 중 하나가 사회의 구성원을 길러내고 생산하는 일이니까요. 수능이 끝나도, 수없는 학교와 시험이 산처럼 중첩되어 있습니다. 사회에 살아있는 한, 끝나지 않을 일일 겁니다.



그러므로 수능 점수가 낮다거나 수능을 통과하지 못했다 하여 반드시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이 아저씨는 한때 스스로 학교를 떠났으나, 결국 세상이 외로워 다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돈을 내고, 간단한 시험을 보고, 반성문 같은 학업계획서를 제출하면 이전의 학점과 학번을 인정해주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공부는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세상은 돈을 벌어야 하여 성학십도聖學十圖 나 맹자 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거리에서 찾아헤맨 맑시즘도 내게는 옷자락 한번 스치우기도 허락해주지 않았고, 다만 피 식히듯 술만 실컷 마셨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아저씨는 여전히 책을 읽고, 검은 띠를 매고도 옛 기초를 계속 연습합니다. 이러한 반복이 불과 이십여년전, 아저씨가 아닐 때의 내가 꿈꾸던 우주를 끌어오리라 믿기에 하는 일은 아닙니다. 다만, 매일 출근하고 아이보는 삶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스스로 발악하듯 가리고 싶어 하는 도피는 아닌가, 스스로 숨을 몰아쉬며 도장 앞 거울을 보거나, 혹은 가끔 술잔 속으로 고개를 떨구며 생각할 때는 있습니다. 의외로 옛 책들을 읽을때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데, 그 때, 이 아저씨의 넋은 이미 옛 성인들을 따라 큰 생각들을 움켜쥐어보려고 어데론가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수능 때가 되면 항상 마음이 이상합니다. 누가 얘기해달라, 써달라 청하지도 아니 했고, 읽어주고 들어줄 이도 없다는걸 아는데도 자꾸 주절거리게 됩니다. 이십여년전, 수능만 통과하면 다 될 줄 알았던, 그저 책만 읽고 공부만 했을뿐, 세상이라곤 도통 몰랐던, 그때 그 소년이 안쓰럽고 불쌍해서, 또 도넘는 감정이입을 하는걸까요? 나이를 먹나봅니다. 자꾸 옛 실패들이 떠올라 혹시 지금 삶조차 무너질 허깨비는 아닐까 무서울때가 있습니다. 참 위태한 청춘이라, 지금의 삶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어쨌든 이 아저씨도 이리 삽니다. 살아내고 있습니다. 이번 수능날은 유독 훈훈했고, 시험도 쉬웠답니다. 오늘도 회사 앞 철탑은, 하늘을 겨누고 찔러 올라가는데, 이 아저씨는 오늘도 그 밑을 지나 도장 다녀오고 출퇴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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