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면식수햏(8) ㅡ 구미 ㅇ 국수, 홍대 ㅂ
1. 구미 ㅇ 국수
아버님은 한동안 살이 많이 빠지셨다가, 최근에야 2kg 정도 살이 붙으셨다. 젊었을때는 유도 초단도 따셨고, 원래도 키가 크고 체격이 좋으시던 아버님이셨다. 내가 처음 아내와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갈때, 교회도 다니시지 않는 분이, 그 장중한 체구로 서서 커다란 성경책을 넘겨보시다가 내가 들어오자 '어, 왔는가? 여 앉게.' 하시던 그때 그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기사 금지옥엽 기른 딸이 아닌 말로 임신하지도 않았는데, 만난지 2주, 정확히는 이틀만에 결혼하겠다 하는데 어느 아버지가 오냐, 그래라, 하겠는가. 내가 이제서야 딸 가진 아비가 되어보니 아버님 마음을 헤아리고도 남는다. 어머님이 갑자기 편찮으시어 그렇게 가버리신 뒤, 아버님은 정말로 많이 외로워하시고, 적적해하셨으며, 소은이를 데리고 자주 내려와달라 자주 말씀하시었다. 아내도 육아 휴직을 끝내고 복직했거니와, 아직 총각인 처남 형님과 아버님 둘이서 소은이를 볼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버님 역시 어머님 편찮으실때 비슷하게 편찮으시어, 식사량을 줄이시고 많은 신경을 쓰셔야 했는데, 그래서 살이 많이 빠지시다가, 최근에서야 살이 조금 붙으시어 아내도 무척 다행이라 했다. 어머님 살아 생전부터 나는 정말이지 회라면 사족을 못 써서, 삼시세끼 한달도 먹을 수 있다 떵떵 큰소리를 쳤는데, 바닷가에서 지천으로 나는것이 회 아니겠느냐며, 아버님은 지금도 회를 자주 사서 실컷 먹으라 안겨주신다. 그런 아버님이 이번에 내려갔을때 갑자기 말씀하시었다. 내, 오늘은 국수나 묵사발이 먹고 싶데이.
늦은 단풍철로 차표 구하기가 어려워 중간에 만난 곳이 구미 옛 시가지였다. 커다란 구미 중앙시장 안에 국수골목이 있다고 하여 소은이를 앞세워 골목골목 사이를 누볐다. 아이는 제 어미와 외할아버지를 본데다가, 저 좋아하는 국수까지 먹는다니 두 눈에 기쁨이 가득해서 얼른 가요, 얼른 가요 방방 뛰며 신이 났다. 지금 생각해도 갑자기 눈시울이 또 시큰한데, 원래 아이는 그렇게 뭐든 먹고 싶고, 놀고 싶고, 제 어미를 보고 싶은 것이다. 나는 아이가 구김살없이 잘 놀고 신나하면 괜히 좋아서 눈물이 날때가 있다. 아직도 호떡 하나에 500원, 떡볶이 하나에 2,000원씩 파는, 옛 가격의 시장 골목을 돌아다니다보니 약간 높은듯한 언덕이 보이는데, 보이는 곳마다 온통 국수, 국수, 국수 간판이었다. 누가 안 물어봐도 국수 골목이라고 능히 알 수 있었다.
결론 : 육수는 분명 좋았어요. 근데 면이....?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역시 어느 지역에나 맛의 보증수표라 불리는 백 선생님 그 분이셨습니다. 솔직히 그 분이 해주신 음식을 직접 먹어보지도 않았고, 잘 모릅니다. 다만, 그 분의 방송을 보았을때, 단맛으로 주로 음식 맛을 내는 것은 알고 있었고, 또 그 분의 많은 음식점들이 사실 맛 관리가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회사 앞 우동집도, 한국에서, 우동집이지만, 주방 분들은 대부분 대륙의 동포분들이셔서, 나는 늘상 회사 동료들에게 낄낄대며, 이 업장에 한중일이 다 모여 있다고 농담하곤 했으니까요. 젊었을때 대학가를 주름잡았던 그분의 고깃집은, 고기와 김치찌개를 싼 맛에 먹을 수 있어 좋았을 뿐이고, 예나 지금이나 백 선생의 음식점들이 뭔가 대단한 맛의 기준이라고 생각치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출연하는 방송 광고판을 보고도, 속으로는, 적어도 맛이 없진 않나보군, 정도로 생각했어요.
육수는 분명 좋았습니다. 멸치로 우린 육수에 김가루를 가득 뿌렸는데, 김도 진한 파래김이라, 정말로 구수한 김향이 하나 가득 풍겼어요. 그 김향이 정말 국수 전반을 지배하는 듯했습니다. 아버님은 묵사발을 드셨는데, 묵사발이 가장 맛있었어요. 구수한 육수에 탄력 있는 묵이 어우러지니 절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더군요. 아내와 아이는 잔치국수를 먹었고, 나는 비빔국수를 주문해서, 아내와 서로 나눠먹었습니다.
비빔국수 양념은 솔직히 많이 달았습니다. 초고추장을 기본으로 한 양념에 설탕을 좀 많이 넣으신 듯햇는데, 그 느끼한 단맛이 좀 많이 거슬렸어요. 아내의 잔치국수를 먹어보니, 역시 묵사발처럼 아주 구수했는데, 역시 거슬리는게 잇었으니 그게 바로 밀가루 향이었어요. 인천 소래포구에 많은, 이른바 '무한리필' 조개구이집에 가면 서비스로 내어주곤 하는, 칼국수에서 비린내 못지 않게 진동하는 밀가루 향, 바로 그 향이 엄청났어요. 아버님의 묵사발은 아주 맛있었지만, 우리들의 국수는 썩 그렇게 맛있진 않았고, 다행히도 아이는 잘 먹었습니다.
나중에 우리 부부끼리 잘때서야, 아내는 조심스레 말하더군요. 국수가 덜 익었더마. 아뿔싸, 그때서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면이 애초에 덜 익었던 겁니다. 바쁘셨을까요? 하기사 혼자서 일하시는 곳이었고, 카드 계산기도 없는 곳이었고, 아주 좁은 대여섯 개의 의자에 이미 사람은 두세 사람 있어서, 딸아이를 위해 어느 중년 부인이 자리를 옆으로 당겨주셔야 할 정도의 곳이었지요. 국수는 굵은 중면이었는데, 채 익지 않아서, 그 좋은 육수에 잊지 못할 밀가루 향을 깊게 남겼었던 겁니다. 그게 좀 아쉬웠어요. 김향 가득한 육수는 지금 생각해도 참 좋았습니다.
2. 홍대 ㅂ
회사에서 안색이 안 좋아보인다 할 정도의 날들이 이어졌다. 하기사 아내의 복직 이후로, 솔직히 평일에는 편하게 자는 날이 드물었고, 아무리 잘 자도, 하루에 한번 이상은 반드시 깨었다가 소은이를 한번 어르고 다시 잠드는데다가 근무에 육아, 가끔 있는 도장 훈련, 살림을 제외하면, 잠을 깎아서라도 책을 읽거나 집에서 연습을 따로 해야할 정도로 늘 바쁜 날들이었다. 주5일은 정신없이 빨리 가고, 아내와 함께 있는 주말은 그보다 더 빨리 녹는다.
신도림 ㄱ 라멘의 다른 라멘도 맛있다면, 혹시 한 번 더 갔을지도 모르지만, 모처럼 시간이 나서 그보다는 멀리 가고 싶었고, 다른 라멘도 먹어보고 싶었다. 너무 추워서, 냉면 생각은 솔직히 나지 않았다. 여기저기 알아보다 홍대 정도면 다녀올만 하다고 생각했다. 홍대, 내 청춘의 한자락이 분명히 있었던 곳이다. 부천이 내 현실에 그림자를 드리워 좀처럼 잘 가지 않았던 곳이라면, 홍대는 내 청춘의 유희와 열락과 꿈이 있던 곳이었다. 나는 홍대에서 커피와 술과 춤을 배웠고, 늘 시간날 때마다 홍대의 그럴듯한 까페에서 커피나 술을 마시면서 책을 읽었다. 돈은 많이 못 벌었어도 무척 바쁘게 살때라, 주말까지 일을 하고 보통 월요일에 쉬었는데, 누군가 내게 전화하면 '응, 나 홍대야.' 할 정도로 늘 홍대에 있어서, 오죽하면 그 때 내게는 홍대대마왕 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머리를 밀고, 번개 모양의 자국을 내고, 수염을 기르고 다니던 때도 이때라,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지만, 나는 하여간 그렇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다녔었다.
내가 처음 라멘을 먹었던 곳은, 아는 형님과 한참 줄을 서서 먹었던 홍대의 그 유명한 ㅎ 이었는데, 그 이후로 라멘을 좋아하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그렇게 줄을 서고 싶진 않았다. ㅎ은 당시 점포 하나만을 유일했고, 일식 라멘이 유명하지 않을떄라, 홍대의 또다른 강자 ㅅ 을 제외하면 그다지 겨룰만한 가게 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찾아보니, ㅅ 이나 ㅎ 이나 상당히 많은 점포를 가지고 있어, 아니, 그때 그 장인 같던 콧대의 운영전략은 대체 무엇잇는가, 싶긴 하였다. 여하튼 아내와 나는 아무리 맛집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필요 이상으로 줄 서가며 기다리지 않으려 한다. 우리 동네 근처에 조그마한 일식 나베로 유명한 아기자기한 식당을 간 적이 있는데, 비교적 줄 안서고 빨리 먹긴 했으나, 어찌나 불편하던지, 지금도 체할듯한 그 기분이 생생하다. 아내가 막 내게 수영을 가르쳐주던 무렵이었는데, 아내는 그나마 창가를 등지고 앉아 괜찮지만, 나는 창가와 정면으로 보는 자리라, 젊은 남녀들이 줄줄이 서서, 저 사람 언제 다 먹나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늦게 먹나, 기다리는 표정들이 역력히 다 보여서 정말 불편했다. 젊은 MZ들답게 그들은 심지어 입을 가리지도 않고, 대놓고, 아, 뭐야, 먹었으면 빨리 좀 인나지, 아, 진짜, 뭘 또 추가해~ 이런 입모양까지 다 보이는지라, 나는 급해서 아내에게 '아이고, 이 사람아, 대충 먹고 인나게, 이건 식사가 아니고 고문이여.' 했던 기억이 있다. 하여간 기다려야 먹을 수 있고, 먹으면서도 누군가의 자리를 배려해줘야 되는 곳은, 우리 부부에게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중래향에 단체 예약이 잡히면, 우리 부부는 무조건 음식을 포장해서 온다. 그 편이 속편하다.
진짜 오랜만에 찾아간 홍대입구역은, 이미 내게 사당역이나 종로역 이상으로 크고 번화해져서 도통 길을 찾기 어려웠다. 공항철도가 연결된 이후로, 커다란 여행가방을 끌고 다니는 외국인 가족들이 엄청 많이 보여서 강남역으로 왔는가 싶을 정도였다. 온갖 외국인들이 가득한 역사 벽 양옆으로는 커다란 액정들이 설치되어 보기에도 어지러운 광고들이 많았고, 그 외에도 빵이며 과자, 타코야끼, 커피 등 군것질거리들을 파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더운 나라에서 온듯한 외국인 가족들이 꽤 보였는데, 실제로 그들 중 영어를 하는 이들은 눈이 정말 신기하다며 눈을 뭉쳐 장난도 많이 쳤다. 어딜 가나 아이들은 귀엽고 이쁘다.
공항철도선을 따라서 6번 출구로 나와, 골목을 한번 꺾어 번화가 쪽으로 가면, 어렵지 않게 본점을 찾을 수 있다. 다행히도 줄은 없었고, 대신 좀 무섭게 생긴 남자 직원분이 나와 혼자 있는 사람은 무조건 바BAR 자리로 안내했다. 두툼한 차림표에 면과 육수의 농도와, 고명의 양, 추가 주문 등 라멘을 어떻게 주문할 것인지 상세히 적어놓아주어서 좋았다. 점심을 넘긴 시간인데도 사람들은 제법 와서, 아무래도 혼자 먹는 손님은 무조건 바 쪽으로 안내할수밖에 없겠구나 생각은 들었다.
결론 : 양, 양념 모두 박력이 넘칩니다!
사실 이 집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누군가 쓰신 글을 보고 찾아간 곳입니다. 스스로를 라면덕후라고 소개하신 그 분은, 저의 잡문과는 비교도 할수 없는 깊이로 맛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주셔서 저도 고르기가 좀 쉬웠습니다. 저도 가볍게 만든 음식보다는 좀 더 맛의 방점이 강한 쪽을 선호하긴 하는데, 확실히 그 분의 제안대로, 양념을 보통으로 했는데도 확실히 육수가 강하고 묵직하고 기름졌습니다. 이제껏 제가 먹은 라멘 중에는 범계의 ㅇ 라멘이 가장 간이 셌는데, ㅇ 라멘이 염도가 높다면, 홍대의 ㅂ은 육수 자체가 굉장히 진하고 기름집니다.
일단은 양이 굉장한데요, 저는 숙주와 마늘과 파를 모두 많이 달라고 했는데, 그릇 하나가 가득 넘치도록 왔습니다. 면을 추가해서 그런가 했더니, 추가한 면은 또 접시에 따로 나왔어요. 이미 고명이 많아서 고명을 먹는데도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그새 접시에 놓여진 면은 다소 굳고 불어버리고 말앗지요. 게다가 고명을 먹은 다음에도 면을 넣자 육수가 다소 부족해서, 두번째 면을 먹을때는 그 진한 라멘 육수도 아무래도 좀 물을 탄듯 좀 연하게 느껴졌습니다. 숙주, 파 등 물기가 잇는 고명을 많이 추가한 덕도 있었겠지요. 보통 어느 집이건 면과 밥을 추가해서 충분히 면을 즐기고 밥까지 말아먹는 편인데, 드물게 밥을 만 육수를 절반정도 남겼습니다. 양 자체도 많았지만, 제가 양 선택을 잘못 해서, 육수가 흐릿해지는 바람에 끝까지 맛있게 먹질 못했어요.
여기는 간 마늘 자체를 고명으로 올려주는 곳인데, 이 곳에서 마늘 고명을 먹어보고 나서야, 요즘 라멘집에서 마늘을 올려주는 이유를 조금은 알 듯했습니다. 확실히 기름기 많은 육수에는 마늘 고명이 잘 어울립니다. 다만 먹다보니 육수가 빠르게 식어서 숙주가 완전히 국물에 푹 배어들진 못했어요. 다음에는 고명을 좀 적게해서라도 균형을 좀 맞춰야겠습니다. 차슈나 달걀 등은 모두 평균 정도였고, 꾸불꾸불한 면도 아주 특별하다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박력 있는 육수가 이 한 그릇의 모든 맛을 다 끌어올리는 듯 보입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가수 테이 씨, 비 씨, 또 곳곳 연예인들이 다녀갔다는 글씨가 제법 보이네요. 요즘 키오스크로 주로 주문을 받는데 비해서, 좀 무섭긴 해도, 직원분이 직접 와서 주문 받아주고 계산해주시고 하는 건 무척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