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면식수햏(11)ㅡ 대림 ㅂ 반점, 신도림 ㄱ(다른음식)
1. ㅂ 반점
사현님과의 인연도 벌써 십년이 넘었다. 내가 서른살, 뒤늦게 학교를 나와 서생도 아니요, 사회인도 아니요, 젊지도 늙지도 않고, 그렇다고 더더욱이 어리지도 않은데 철은 덜 들어 참으로 데미안 쫓아다니는 싱클레어도 아니요, 수레바퀴 아래서 방황하다 시냇물에 스르륵 흘러가버린 한스 기벤라트도 아니었는데, 하여간 이도 저도 아니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을 때, 나는 태권도장에 입문했다. 이십대 때 다양한 무공을 해보았노라 겉으로는 자부했지만, 실상 기본기만 반복하다 깊은 맛을 완전히 보지 못하고 다른 무공을 해야만 했다. 물론 무공을 지속할 수 없었던 이유는 늘 있었다. 돈이 없어서, 어머니가 체육관까지 찾아와 극렬히 반대하셔서, 내가 다른 무공에 더 관심이 생겨서, 익숙해질만하니 다쳐서 등등...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결국 무공도 삶의 한 부분인지라, 내가 먼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숙하고 제 몫을 다하지 못하면 무공 연습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혼 7년차인(벌써!!) 생각해보니, 당연 그렇지 않은가? 제 밥벌이도 못하는 남편이,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아비가, 무슨 수로 가정을 제대로 꾸릴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나는 단지 무공의 가짓수만 많았을 뿐, 사회인으로서도, 사회체육인으로서도 성숙치 못한 상태에서 도장에 입문하게 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아직 그리 덥지 않아, 겉에 얇은 긴소매 남방을 입어야 했던 5월 첫날이었다.
그때 아직 5단 사범이셧던, 지금의 사현님은 훨씬 젊었고, 내게 형님뻘이셨다. 당시만 해도 성인 태권도장이 없던 때였다. 태권도를 해볼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어렷을때는 무공에 내 스스로도 흥미가 없었고, 이십대 때에는 내 스스로도 건방을 떨며 태권도는 소년 시절에나 하는 스포츠라고 떠들고 다녔었다. 내가 익혔던 수많은, 그러나 깊이가 상대적으로 얕은 모든 기술들은, 사범님의 기술 앞에서 산산히 무너졌다. 규칙 안의 기본기조차 나는 상대할 수 없었고, 태권도의 공식적인 경기에서는 없는 메치기나 조르기를 풀어내고 막아내고 반격하는 태권도의 유려한 기술들, 그리고 그를 입증하고 설명하는 젊은 사범님께 나는 깊이 매료되었다. 사범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지만, 사범님-사현님은 내가 생각했던, 몸으로 직접 무공을 입증하고 실천하며, 또한 정확한 이론과 교육체계로 설명해주시는, 내가 생각했던 무인상에 가장 가까웠다. (물론, 나를 이전에 알려주셨던 다른 무공의 사범, 교련, 관장, 스승들께서 절대로 약하다거나 잘못 가르쳤다는게 아니다. 그들도 모두 고수였고, 좋은 지도자셨지만, 다만 방식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무엇보다 나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범님-사현님을 통해서 다른 방식으로 사회를 살아가고, 정치를 보는 방식을 깨달았다. ITF태권도는 비록 북한 태권도라는 잘못된 오해 속에서 국내에서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지만, 국외에서는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하며, 내가 몸담은 중앙도장은 한국 지부의 본부이니, 좋으나 싫으나 늘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외국인들도 많이 만날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짓수 도장에서도 외국인들은 항상 있었지만, 해외 문화에 소속된 주짓수와, 반면 한국 문화에 경도되어 태권도를 찾아온 외국인들과의 만남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모순적이게도, 나는 한국 친화적인 외국인들의 시각으로 한국을 다시 바라보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철학관이나 역사관 중, 비현실적이고, 겉멋에 빠진 허세가 많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결코 부유하진 않지만, 가난하고 힘들던 시절이었다. 정말이지 도복과 띠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도 총각 시절, 나는 사범님이나 부사범님들에게는커녕, 동기들, 사제사매들에게 커피 한잔 제대로 사주지 못했다. 회식 때도 솔직히 말하고 늘 입만 가지고 다녔다. 물론 통역이나 도장 잡일들은 간간히 돕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사현님께서 나를 믿어주시고 가르쳐주지 않으셨으면, 결코 나도 바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십일년 동안 사범님을 모시면서, 사범님이 6단을 받고, 다시 승단하셔서 사현님이 되시는 동안, 나 역시 늦게나마 승급하고 승단하면서, 동시에 조금이라도 내게 모자랐던 현실성을 갖춰갔고, 또한 달라지면서 결혼도 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도장은, 내가 갖고 있는 삶의 영역 중 직장 다음으로 가장 큰 현실적 무게를 지녔다. 도장에서는 반드시 보여줘야하는 행동들이 있으며, 말로써 숨길 수 없는 명백한 승부의 명암이 있다. 나는 사현님을 모시면서 비로소 한 남자로 거듭난 기분이었다.
그러므로 이제서야 결혼을 하고, 한 몫이나마 하게 되면서, 때가 되면 사현님께 도움이 되고 식사를 대접하는 일은, 내 스스로도 뿌듯한 일이다. 내가 밥자리 술자리에서 당당히 카드를 뽑을때마다 사현님은, 이야, 내가 전병문이한테 이런 날이 다 있네 하며 반농반진으로 감탄스러워하신다. 내가 사현님께 배운것은 결코 태권도뿐만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매해 새해나, 스승의 날, 혹은 태권도의 날에 항상 사현님께 식사를 대접한다. 제자로서 당연한 도리다.
결론 : 예상보다 훨씬 괜찮은 집이었습니다.
한 대학의 수준은 도서관에 있고, 한 집안의 깊이는 서재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분은 화장실이라고도 하는데, 그 또한 보고자 하는 가치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아직 음식 맛을 보기 전 음식점의 수준은 뭘로 알 수 잇을까요? 물론 위생도 있고, 친절도 있고, 음악이나 기타 장식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보는 곳은 술 종류입니다. 이제 술을 많이 줄이는 상황인데도, 아니, 오히려 그래서 그런가, 한번 마실때 조금이라도 좋은 술을 마시려는 욕심 때문인지 술에 대한 관심 자체는 좀 더 높아지는 듯도 합니다. 요즘은 이른바 '힙하다' 는 중국집들 대부분이 그런듯하나, 중국집에 다양한 고량주들디 갖춰져 있으면 좋고, 맥주도 칭따오 말고 하얼빈도 있으면 오, 이 집 뭘 좀 아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현님이 드셔보셧다는 깐풍기와 삼선쟁반짜장을 주문했습니다. 깐풍기는, 솔직히, 맥도날드 치킨 텐더에 중국식이랍시고 땅콩향 나는 식초 양념을 버무린듯하여 다소 식상했지만, 쟁반짜장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제대로 볶은 불맛이 났구요, 불지 않았고, 캡사이신을 때려넣어 맵지도 않았습니다. 실내 장식을 봐서는 젊은 사람들 많이 오는, 가벼운 중국집이라 생각했고, 깐풍기는 확실히 그런 느낌이었는데, 쟁반짜장만큼은 맛이 과하지 않고 은은해서 먹기가 편했습니다. 아내의 직장으로 가거나 처가에 가면, 지방도시를 주름잡는 중화요릿집들이 꽤 있고, 공무원들이 반드시 회식을 하곤 하는데, 그런 집과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가격 대비 맛이 좋은 집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간이 된다면, 느긋하게 가서 다양한 요리들을 즐겨보고 싶은 마음은 충분히 드는 집이었습니다. 아내와 같이 한번 가야되겠네요.
2. 신도림 ㄱㅡ 마제소바
지금 생각해보면, 삶의 관문 중 가장 작고 유치할것만 같은 고개였지만, 그때는 왜 그리도 장대해보였는지, 대입 앞에 눌려 이리 휘둘리고 저리 쓰러질듯 했던 내게 조금이라도 주체성을 심어주려 노력하셨던 은사님께서는, 사람이든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세번은 겪어보고 평가하라는 명언을 남기셨다. 방만하고 방종했던 이십대, 나처럼 소란스럽고 얕은 사내를 세번씩이나 깊게 만나주려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사람에 대해서만큼은 한참 늦게서야 알게되었지만, 책이나 영화나 음악이나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이른바 삼세번의 법칙을 가능한 지키려고 노력한다.
신도림 ㄱ 은 도장에서 가장 가깝기도 하거니와, 장소가 좁다는 점 빼고는 맛이 좋아서 모든 메뉴를 먹어볼때까지는 다녀보자 고 생각한 집이었다. 돈코츠와 쇼유는 모두 먹었기 때문에, 국물을 찍어먹는 츠케멘을 먹어볼까 하다가, 국물없는 라멘을 한번 시도해보자 해서 마제소바를 먹었다. 난생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다.
결론 : 정말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습니다.
신림 ㅅ의 이에케라멘에 이어 또다시 느끼는 '과하고 넘치고, 빗나간듯한' 맛이었습니다. 일단 마제는 일본어로 비빈다는 뜻의 마제루混ぜる의 준말이라니, 비벼먹는 비빔면인것도 알겠고, 날달걀과 고기 고명도 알겠는데, 기본이 되는 양념은 무엇인지 내 미각으로는 도통 알기가 힘들었습니다. 약간 청국장처럼 텁텁하고, 구수한듯하면서도 시큼하기도 한, 일본식 된장이 들어간 듯은 한데, 기름지기도 하고, 뻑뻑하기도 하고, 하여간 여지껏 겪어본 맛의 범주 안에는 그 맛이 없어서 어떻게 설명을 못하겟네요. 먹어본 맛중에는 그나마 된장 맛은 확실하게 느껴지는듯한데 그 이외의 재료나 맛은 잘 모르겠습니다. 설명서에 있는대로 다시마 식초도 넣어봤고, 밥도 비벼먹어봣는데, 그 뻑뻑함이 가셔지지는 않았고, 기름진 맛도 덜해지지는 않았습니다. 모든 맛의 범주가 과하게 넘쳐서 흐르는 듯하다는 점은, 이에케라멘과 비슷한데, 국물이 없으니 오히려 그 질감과 박력이 더합니다. 다른 집에서도 먹어보며 비교의 기준이 생기지 않고서는, 신도림 ㄱ 의 마제소바를 뭐라 말하긴 아직 어렵겠네요.
3. 번외편 ㅡ 의왕 ㄱ
의왕에 잠시 놀러갔다가, 처자식과 함께 갔던 샤브샤브 집의 국수사리..^^;;
그냥 넘기기는 아까워서 번외편으로 하나 넣어봅니다.
사람이 바글바글했고, 처음 온듯한 우리 가족에게, 단골들께서 이 집은 뭐가 맛있다며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하시는 집이라, 잘 찾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국물이 아주 기가 막혀서 전체적으로 맛이 깔끔하고 아주 좋았어요. 다만, 밑반찬이 조금 적은 점은 아쉬웠습니다. ㅠㅠ 하지만 만두는 무지 맛있어요! 안 먹으면 후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