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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음식감평)

오늘의 면식수햏 (14)- 신도림 ㄹ, 안양 ㄷ

by Aner병문


1. 신도림 ㄹ



'오늘의 면식수햏' 은, 사실 굉장히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분류다. 수햏 이라는 말만 해도, 나 고등학교 때나 유행하던, 일종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그때 그 시절 말장난을 이제 와서 천연덕스럽게 다시 쓰는 뻔뻔함 또한 아저씨의 특징일 터이다. 어차피 몇몇 분들만 슬쩍 지나가시는, 나의 개인 일기와 다를바가 없지만, 그래도 약간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픈, 딱 그 정도의 역할만 하는 이 공간에서, 면식수햏은 ITF태권도 훈련일지 다음으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작문이다.. 다름아닌 처자식을 위한, 맛있는 면(麵)집 알아놓기 용이랄까.



아내와 내가 모두 주말 근무를 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온전한 가족을 이루는 때는 주중 2일, 48시간에 지나지 않는다. 자고, 씻고, 이동하는 시간 다 빼면, 이틀 합쳐도 온전히 가족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20시간이나 될까 알 수 없다. 그러므로 특히 면을 좋아하는 딸과, 역시 그 못지 않게 면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오늘은 뭘 먹지?' 하는 시간이나마 아끼고 싶었다. 어쩌다 가끔 틈이 날때에, 처자식 함께 먹을 수 있는 국수집, 냉면집, 라멘집 등을 찾아, 이 아저씨는 나름대로 자기 용돈 써가며, 도장이 끝나고 나면, 비교적 집 가까이에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 그렇게 헤매어 왔던 게다.



그래도 언제나 그럴 수는 없다. 아무 생각없이 시작한, 일기의 한 분류였을뿐인데, 벌써 14회에 이르렀다. 식당 하나만 안내하기는 아쉬워, 회당 두 개의 식당을 소개했으니, 자주 가는 단골집이나, 혹은 가끔 가족들이 해주시는 음식을 제외해도 스무 곳 정도는 소개한 듯하다. 절반 이상은, 제가 혼자 간 뒤, 정말 괜찮다는 생각을 했을때, 처자식과 함께 가고자 쟁여둔 곳이지만, 또 몇 곳은, 가족 여행을 함께 가거나, 예상치 못하게 들렀던 곳을 적기도 했다.



왜 이렇게 앞말이 긴고 하니, 아무 준비 없이 아내와 그냥 간 곳은 적어도 '오늘의 면식수햏' 역사상(?) 이 곳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아내와 내가 갑작스레 뮤지칼 베르테르 를 보러 신도림역으로 향했던 주말, 사실 안그래도 조만간 날이 풀리기 전에 신도림의 ㄱ 라멘을 한 번 먹여줄 생각이긴 했으나, 생각보다 공연 전까지 시간이 빠듯하여 도보 단 몇분이라도 아쉽던 때였다. 아내는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그냥 공연장 아래 식당층에서 빨리 나오는 무언가를 먹자고 했었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다. 아무리 7년차 부부지간이라도, 모처럼 아이없이 나온 데잇트 아닌 데잇트인데, 뭐라도 맛있는걸 먹여주고팠지만, 마음이 넘쳐도 시간이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내 손 꼭 잡아주며, 맛없는 것 먹더라도, 넉넉하고 여유롭게 남편과 같이 먹는 시간이 더 좋다고 말해주는 아내가 있어 새삼 또 고마웠을 따름이다.



결론 : 그렇지만 역시 사전조사가 중요합니다.

푸드 코트Food Court라고 하지요. 백화점이나 마트처럼 큰 매장의 손님들을 위해 각종 식당들을 모아놓은 곳 말입니다. 제아무리 명식당의 지점이 있다 한들, 이른바 푸드 코트에 입점한 곳에 대해서는 기대치가 어느 정도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껏해야 접근성이 좋다할뿐이지, 비싼 도심에, 비싼 매장에 입점했으니, 설사 맛이 같다 할지라도, 그 모든 이익의 격차는 결국 음식값에 배분되어, 손님이 물지 않으면 안되는 가슴 아픈 구조입니다. 게다가 하물며 맛있다 할만한 집도, 당연하달지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겪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얘기한적이 있지만, 칼국수를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돌고 돌아 뭘 먹어도 후회한들, 기왕이면 내가 선택한거나 먹고 후회하자고, 아내는 라멘을 먹자고 했습니다. 남편과 같이 먹으면 뭘 먹어도 맛있다고 말해주는 아내라 정말 고맙지요. 그래서 아내는 기본 돈코츠라멘을, 저는 또 안 먹은거 먹어본다고 호르몬- 즉 일본식 대창 라멘을 먹었습니다.



시판 육수에 면조차도 불고, 고명은 고만고만. 특히 풋내나는 숙주는 국물안에 깊이 묻어놔도 좀처럼 그 맛이 쉽게 살아나지 않았죠. 돈코츠 라멘은 별다른 양념이 없어서, 불어버린 면과 밋밋한 국물이 선명하게 느껴졌구요, 기름진 대창을 얹어서 그 맛을 상쇄하려고 매운 맛을 더한듯한 호르몬 라멘은..글쎄요. 일단 맵기보다는 너무 달았고, 올라간 대창 또한 그저 질기기만 할뿐이었습니다. 정말이지 부부 간 사랑으로 그냥 좋게 먹었던 기억입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대창을 참 오래 씹었구나, 라는 생각 이외에는 혀끝에 마음속에 선명히 남는 기억이 없네요. 그저 아내와 있어 좋았을 뿐입니다.




2. 안양 ㄷ


아버지는 이제 옛날처럼 약주를 자주 즐기지 못하게 되시었다. 부자유친父子有親 이랬는데, 나는 젊은 날 참 많이도 속썩이다, 겨우 결혼하고 애 낳으며 비로소 아버지 어머니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리려는, 철 늦게 든 중년 사내가 되었다. 남자는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데, 나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등도, 어머니의 얼굴도 볼 마음도 갖지 않았다. 이제서야 감히 내 유년 시절과 청춘을 돌아보며 생각하건대,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참 오랫동안 감정적으로 연대하지 못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어머니 아버지와 교감을 하거나, 마음을 헤아릴 여유 자체가 없었고, 그럴 마음도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운명처럼 유학儒學을 만났음에도, 소위 좌파 유학이라 불리는 양명학에 좀 더 깊이 파고들었고, 혹은 유학의 가족적 논리를 집요하게 비판하고 파고드는, 묵가나 도가, 혹은 서양 철학에 오히려 먼저 빠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아니, 어쩌면 일부러 고집스럽게 세상에 물들지 않고 그저 철없이 '칼집 없는 칼'처럼 치기어리게 살려던 청춘이 드디이 세월에 꺾이고 깎여, 남들과 똑같은 아저씨가 되어가는 과정인지, 나도 결국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알고 지낸 인연은 그리 많지 않은데, 그들은 젊었을때의 나의 철없는 독기가 빠지고, 그저 처자식에 죽고 못사는 아저씨가 된걸보고 어느 정도 신기하게는 여긴다.



다시 아버지의 약주 이야기로 돌아와, 내가 술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는, 아버지와 술상을 마주할 생각도 하지 않았고, 내가 이제 아버지 잔 좀 채워드리려 하니, 아버지께서 노쇠하시며 여러 병증이 오시어, 좀처럼 약주를 안 하시게 되었다. 아버지와 내가 여동생과 함께 즐겁게 겸상하여 마시던 때는, 아내가 복직하기 전, 신혼초부터 소은이 낳고 나서의 초반 정도일 뿐이다. 오는 백발 막을 길이 없으며, 가는 부모 원망말고 있을때 효도하라더니, 그 말이 꼭 맞았다. 모처럼 어머니가 계시지 않을때, 아버지는 웬일로 막걸리를 찾으시며, 소은이 밥 먹이며 막걸리나 한 잔 하자시었다. 반지원정대, 아니 막걸리 원정대의 시작이었다.




결론 : 이 집은 사장님이 막걸리를 무료로 사다줍니다!

아버지는 뚜껑이 하얀 서울 막걸리를 주로 드십니다. 그게 쌀막걸리라 부드럽고 뒤끝이 적다 하시네요. 저는 솔직히 아스파탐으로 맛을 내어 시금털털하고 뒤끝도 좋지 않은, 일반 막걸리는 잘 마시지 않습니다. 사실 막걸리는 맛은 있어도 마시다보면 배가 불러 굳이 찾아 마시는 술은 아니지만, 정 막걸리를 마셔야 한다면, 역시 남자라면 해창막걸리죠. 가격이 비싸고, 별다른 약품을 넣지 않아 장기 보관이 어려워 그렇지 12도짜리 해창 막걸리는 걸쭉하고 무게감이 있어 사내가 즐길만한 술입니다. 인사동에서 일할때는 6도짜리 설성병영 막걸리를 많이 쟁여두고, 여성분들께 권하기도 했었는데, 해창 막걸리와는 정 반대의 술이지만, 가벼워도 끝맛이 선명하고 해창막걸리처럼 뒤끝이 없어, 아스파탐 넣어 대량생산하는 일반 막걸리와는 감히 견주기 어려운 술입니다. 그 외에도 우렁이 막걸리, 복순도가 막걸리(내 취향은 아니지만^^;;), 등 사실 찾아보면 전국적으로 좋은 막걸리가 많지만, 아버지께서는 누가 뭐래도 하얀 뚜껑 서울 막걸리가 제일 입맛에 맞다 하시네요.



문제는, 이 놈의 딸내미, 즉, 이렇게 표현하면 이 놈은, 제가 되겠죠^^;; 모처럼 부자지간에 오붓이 막걸리라도 한 잔 하려는데, 자꾸 옆에서 짜장면 먹고 싶다고 조르는 겁니다. 하기사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어머니/할머니 안계신다고 때는 이 떄다 하고 모처럼 한 잔 하려는데, 이 녀석 또한 눈치가 빤하지, 그걸 왜 모르겠어요? 왜 어른들만 덕보려 하냐, 나도 이럴때 덕 좀 보자, 한 다리 끼자, 자꾸 조르는 겁니다. 그런데 저 어렷을땐 분명히 중화요릿집에 막걸리도 많았던 듯한데, 소은이와 같이 갈만한 깨끗한 중화요릿집, 그러니까 단무지와 김치와 생양파는 모두 '셀프'요, 테이블마다 이른바 '태블릿' 이 있어서 카드 꽂고 직접 띡띡 찍어서 '크림마요사천탕수육' '칠리사천볶음짜장' 등, 그야말로 서역에서 건너온 사파무공 초식과도 같은 출처 불명의 요리나 주문하지만 어쨌든 꺠끗한(너무 개인적인 취향인가?^^:;) 식당은 막걸리 자체가 없더라 이겁니다. 아버지께서도 낙담하셔서 '아니, 어찌 쭝국집에 막걸리가 읎냐...' 조용히 중얼거리시던 찰나였어요.



결국 소은이가 두어번 가봤던, 최근에 생긴 중화요릿집을 가게 되엇는데, 사실 이 곳은 아내나 나나 일부러 좀 피하던 곳이긴 했습니다. 솔직히 우리 가족에겐 안양역 앞의 절대적인 ㅈ 사장님이 계시는데다가, 설사 정통 중식이 아닌 중화요리를 먹는다 해도 조금만 나가면, 이 집 보다 훨씬 깨끗하고 맛있는 집들이 있거든요. 생긴지 얼마 안되는 집이긴 한데, 식사 때에도 영 한산한데다, 가끔 위생에 뜨악한 장면도 본 적이 있어, 소은이와는 아니 가리라 생각한 적도 있지만, 어쩌겠습니까, 애는 이미 지 고모와 두어번 온 눈치고, 게다가 짜장면 먹고 싶다고 이토록 조르는데요.


기대를 너무 안해서일까요? 물론 식사 때 지나도록 여전히 한산한건 변함이 없었지만, 인상이 푸근하신 사장님은 의외로 친절하셨어요. 막걸리가 없냐고 여쭈어보니, 오히려 사다주겠다고까지 하시네요. 너무 사람이 없어서, 우리 가족이라도 잡아야겠다고 생각하시는걸까요? 여하튼 여기가 무슨 시골 다방도 아니고, 심부름값 드리며 담배 사다달란 풍습도 아니기에, 제가 소주도 더 사마시고 할테니, 막걸리 두 병만 사오겠다 허락받고 부리나케 막걸리를 사와 아버지 소원을 풀어드렸습니다. 어쩌다 효도 한번 했네요. 면이라면 불문곡직 덤비는 딸을 위해 큰 쟁반짜장 하나, 정말 오랜만에 드시는 아버지를 위해 해물짬뽕 하나, 그리고 작은 탕수육을 하나 주문했습니다.



기대를 너무 안해서일까요?(2). 음식맛은 의외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또 와야겠다, 싶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손님이 없을 정도는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특출난 맛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탕수육은 튀김옷이 다소 눅눅하고 질겼구요, 짜장면은 달콤하니 무난했고, 짬뽕도 못 먹을 정도로 혀가 아리거나 해물이 비리진 않았으나, 한 번 먹을떄마다 불편한 단맛이 남았습니다. 아마 매운 맛의 균형을 잡으려고 코코넛유 같은걸 살짝 넣지 않았나 합니다.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흔이 넘어서야 겨우 딸 키우며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리는 아들이 되어, 술상도 봐드리고, 끝나고 커피도 사드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술자리였고, 딸이 또 짜장면 타령하는데 아버지 막걸리 잡숫고 싶어하시면 슬쩍 부탁할 수 잇는 집을 알게 되어 좋았다,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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