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모님들께 바칩니다. - 뮤지칼 엄마 까투리는 슈퍼맘
아내는 첫 뮤지칼이었던 베르테르와의 경험이 몹시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원래 그렇긴 했지만, 내게 말도 미리 안해주고, '엄마 까투리'의 뮤지칼 편인 '엄마 까투리는 슈퍼맘' 을 예약했다. 우리 가족은 소은이가 서너살 쯤, 첫 가족 뮤지칼을 본 적이 있다. 다름아닌 뽀로로..^^;; 제아무리 뽀통령이라 한들, 진짜 성우가 연기하는 것도 아니고, 그럴듯한 탈바가지 쓰고 젊은 배우들이 열과 성을 다하는 공연 수준이래봐야 높다고 하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그때 아이는 말이 늦게 터서 정확한 반응없이 그냥 몰두해서 보기만 했으니, 뽀로로 뮤지칼 하나로 아이가 과연 엄마 까투리 뮤지칼도 좋아할지는 알 수 없었다.
하필 갑작스레 눈발까지 날리는 늦은 꽃샘추위가 작렬하면서, 아이는 박물관 가서 잘 놀다 오긴 했지만 콧물 감기 심하게 걸려, 아비 기어이 할머니께 또 혼 한번 나게 하고^^;; 당일 취소가 안되어 3인 가족 10만원 돈을 날릴 수는 없었으니, 다행히도 열은 없고, 콧물 기침만 좀 할뿐이라, 아내가 운전하여 서둘러 다녀왔다. 결론만 보자면 다녀오길 참 잘했다. 아이가 생각보다 크게 아프지 않아서도 다행이었으나, 그동안 아이가 훌쩍 자라 뮤지칼의 기승전결 서사를 잘 이해하는 모습이 여실히 보였다. 무엇보다 하루 늦게 온 제 어미와 갑작스레 밖에 나가 공연을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았으랴. 얼음 뺀 딸기 주스 한잔 꿀꺽 하고, 제 어미가 사준 우산 모양 응원봉을 들고 의기양양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엄마 까투리는, 몽실언니로 유명한 권정생 선생님의 작품이었다. 그 분께서 돌아가셨을때, 동네 사람들은 그 분이 그토록 대단한 작가라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고 했다. 온갖 사람들이 장례에 찾아오는, 대단한 문인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사회에 큰 뜻으로 환원하는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었음에도 그토록 검소하게 살아오셨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고 했다 .원래 줄거리는 대단히 슬프고 서정적이지만, 교육방송 측에서 TV 만화 연작물로 방영하며, 인물을 줄이고, 서사를 밝게 만들어 크게 흥행하고 성공했다 들었다.
뮤지칼 공연의 서사는 간단했다. 홀로 어린 꿩들-마지, 두리, 세찌, 꽁지 등, 꺼병이 넷을 키우는 젊은 엄마 까투리는, 동네의 부탁으로 택배 일을 며칠 도와주기로 한다. 자녀들이 좋아하는 버찌를 다섯 바구니나 받기로 했으니, 자녀들이 좋아하리라는 부모 마음이 그렇다. 그러나 애 넷 키우기도 힘든데, 거기다 갑자기 안해본 일까지 하려니, 처음 결심과 달리 아침에는 출근하느라 허둥대서 안아주거나 뽀뽀도 제대로 못해주고,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집에 들어와서는 잠만 자기 일쑤다. 어린 아이들이 주로 보는 뮤지칼이라 이러한 갈등과 위기 장면이 길거나 크지는 않았고, 가족간의 화합으로 잘 마무리되었다. 뽀로로 뮤지칼과 비교해볼작시면, 관람 연령대가 달라서일지는 몰라도, 무대 연출은 비슷비슷했으나, 배우들의 역량은 좀 차이가 있었는데, 엄마 까투리 쪽의 배우들이 좀 더 관록이 있어보였고, 춤이나 가창력도 훨씬 좋아서 어른들이 보기에도 나쁘지 않았다. 다만 공연시간은 1시간 남짓. 이후 어린이 관객들과 인사하며 관람석 한바퀴 도는 시간 포함해도 1시간 30분 이 채 안되니, 시간은 약간 짧은 편이다.
아내는 의외로 몇번씩 눈물을 지으며 우울해했다. 엄마 까투리가 원작에서도 남편과 사별한듯한 홀어미이며, 뮤지칼 내에서도 혼자 육아와 근무를 병행하며 바쁘게 사는 모습이 온전히 보여서, 네 마리의 꺼병이들이 아침과 밤에 제 어미를 그리워하며 서운해할때마다 아내는 눈과 입매를 아래로 떨구며 슬퍼했다. 아내는 조그맣게 속삭였다. '꼭 내 얘기 같아가 마음이 아프데이, 소은이도 나 없으모 꼭 저럴거 아이가.' 나 역시 같은 크기로 화답해주었다. '말해 뭐허겄는가, 조 것도 다 커서 엄마 없시민, 포이 갔다고도 안허고, 인자 회사 갔다고 헌당게, 엄마 사라져서 슬프다고 을매나 처져있는지 몰러. 여보는 내려가서 바쁘겄지만, 우리는 계속 소은이 남겨져 있는것을 봉게 또 느낌이 다르지. 근디 뭐 그거이 소은엄마 뿐이겄어? 국내 일하는 어미가 백만대군은 될거인디...' 아내는 크게 위안은 안 되는 투였다. 미안합니다..ㅠ
아이는 공연이 무척 재밌었나 보았다. 일단 대략적인 줄거리를 기억해서 계속 재잘재잘 말해주는 것도 대견했고, 특히 같은 배우가 연달아 열연했던 고양이 마술사- 남생이 - 악어새 의사 흉내를 집 안팎에서 끊임없이 내며 낄낄거렸다. 비록 우리 부부가 부모로서 아직 부족한 점이 많더라도, 아이를 위한 마음만은 결코 변치 않을 터이니, 이대로 건강하게, 별 탈없이 무사히 잘 자라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