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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

고전명작의 위엄 ㅡ 베르테르

by Aner병문

아내의 동창, 쌍둥이 아가씨들이 배우 ㅇ을 무척 좋아하시어 응모한 25주년 뮤지칼 공연 베르테르 행사에 당첨되었다는데, 갑자기 몸이 아파서 가질 못하게 되었다 했다. 점잔빼고 잰체하며 책, 그림, 영화, 음악, 음식, 무공 등 예술 앞에서 뭐든 아는척하는 남편을 둔 아내는, 내가 좋아하지 않을까 싶었다 했다. 이글대는 철판 사이로 송장군과 회포를 풀던 저녁에 아내는, 갑자기 베르테르를 볼테냐고 전해왔고, 오랜만에 기름진 곱창, 고소한 생간 앞에서 이미 노골노골 녹아있던 나는, 아따, 여보, 역시 수준있네, 내 마누라 될 자격 충분하다 말여, 근데 좀 있다 얘기해도 되겠어요? 근본없는 반존대에 사투리, 서울말 섞였으니 아내는 이미 제대로 된 대화는 어렵다고 판단, 어머니 아버지께 부탁드려 아이봐주시기로 합의하고 모처럼 뮤지컬을 보러갈수 있었다.



아내는 사실 영화나 전시회, 뮤지칼, 공연 등을 별로 찾아보는 성격이 아니었고, 내가 몹시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아서 종종 전시회, 전람회, 공연 일정 등을 가져오곤.해서 고마웠다. 왜 더욱 고마웠냐면, 아내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읽어봤는가? 뭔 내용인지는 들어본거 같기도 하고.. 그 짝사랑하다 자살한 사람 얘기 아인가배? …맞긴 맞는데, 불멸의 고전이 순식간에 사랑과 전쟁 꼴 나네… 신도림역 앞에는 녹색옷을 차려입은 아일랜드 사람들이 춤추고 노래부르고 악기 두드리며 성 패트릭의 날 축제를 하고 있었다. 좌우간 아내 덕에 아이없이 모처럼 호젓이 나와.간단히 외식도 하고 오랜만에 뮤지칼도 보려니 좋았다. 고등학교 때 은사님이 보여주신 지하철 1호선 이후로 내가 본 뮤지칼도 많지 않아 손에 꼽았다. 가장 마지막에 본 작품이 총각 시절 본 렌트와 틱틱붐 이었다. 비교적 소박한 작품만 보다보니, 25주년까지 맞았다는 국내의 뮤지칼이 어떤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이른바 뮤덕들 심기 거스르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우리 부부는 무례하거나 촌스러워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생각보다 무대는 그리 크지 않았고, 관객석도 오밀조밀해서 앞사람 뒤통수가 배우를 때때로 가렸다. 나는 주변에서 쑤군대는 소리를 좀 들었는데, 역시나 듣던 바대로 25주년 공연 할인 행사에 올 정도니, 대단한 통通 들이 많았다. 나는 넘버 다 듣구 와서 이제 외울거 같아… 여기 무대는 또 뭐가 다를까? ㅇ도 좋지만 다른 베르 들도 만만찮아! 꼭 여성들만 있지도 않았고, 연배가 지긋한 중노년 신사들도 소년처럼 눈을 빛내며 무대를 기다리고 계셨다. 새삼 뮤지칼이 대단히 폭넓은 취미이구나 싶었다.



결론은, 버킹검…. 이 아니라. 배우 ㅇ 가창력 얘기 하지 않을수 없다. 솔직히 기대가 너무 컸는지, 기대 이하였다. 원래, 연극, 뮤지칼 배우 아니셨었나? 당연히 나보다야 잘하시겠지만, 그리고 연기 또한 알베르트와 대비되어 신경질적이고 감성적인 베르테르 그 자체를 실로 내 어렸을적.상상하던 그대로 아낌없이 보여주셨지만, 뮤지칼의 핵심인 노래가 그래서야…ㅜㅜ 목 상태도 별로 좋지 않으신듯.했는데, 다른 공연이나 무대에서 따로 부른 노래들을 들어봐도, 낮은 음역대에서는 호흡도 성량도 감정조절도 풍부하고 다 좋은데, 조금만 음이 올라가면, 소리를 밀어올리느라 안간힘을 쓰시는 음색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집중이 깨졌다. 소리의 고삐를 틀어잡고 시원하고 유려하게 밀어내셔야하는데, 소리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고 계셨다. 마치 나의 발차기를 보는듯 했는데, 나 역시 가운데까지의 발차기는 그럭저럭 유지해서 차지만, 특히 왼발 기준으로 무릎이 높이 올라가면, 발끝 높이를 유지하느라 오히려 발.이외의 다른 자세가 엉망이 되어버린다. 나는 지금껏 내 발차기를 다듬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고, 급한 상황일때 나는 항상.손기술을 애용했었다.



그 외에는 솔직히 다 좋았다. 장중하고 복잡한 원작을 현대적 감성에 맞게 축약하고 다듬은.서사 및 연출도 좋았고, 특히 알베르트 역의 ㅇ 배우의 굵고 중후한 음색이 내 취향에 꼭 맞았다. 아내도 나 혹시 잠들모 깨워도, 했으나 눈을 초롱초롱.빛내며 재밌게 보았다. 굳이 하나 더 얘기하자면, 로테는 내가 상상했던 청순하고 고아한 모습보다 약간 더 발랄하고 깜찍한 느낌이었지만 그 또한 신선했다. 이전 다른 작품들에서는 보지 못했던 강렬한 조명이나 위아래로 움직이는 배경 장치, 특히 베르테르 마지막의 연출은… 누구나 그 결말은 모르지 않겠지만, 소품으로 그렇게 멋지게 베르테르의 종언을 고할 줄 전혀 예상 못했다. 솔직히 마지막 장면만큼은 괴테께서도 벌떡 일어나실만큼, 내 마음에도 쏙 들었고, 그 장면을 흡입력있게 끌고 간 ㅇ 배우의 관록이 돋보였다.



아내는 정말 매우 좋았다 했다. 오랜만에 함께 본 공연인지라 한동안 극중 대사를 흉내내며 장난도 많이 쳤다. 부부가 함께 하니 늘 좋지만, 다만 공연.끝나기가 무섭게 소은이가 제 할아버지 전화로 바로 걸어서, 엄마아빠, 어디예요오, 왜 안와아아, 소은이 안 보고 싶어? ㅜㅜㅜ그래, 전소은, 언제나 너가 최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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