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면식수햏(17) ㅡ 영등포 ㅎ , 포항 ㄱ
1. 영등포 ㅎ
뛰어나지 않은 실력으로 스무살 부터 지금까지, 무공을 계속 붙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내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어보았지만 가장 주된 답은 분명했다. 내 스스로 요설과 난설을 지껄이는 자이므로, 그 말에 숨는 이들을 잡아내기 위해서였다. 제 입으로 강하다 말하는 이는 붙어보면 알고, 제 입으로 다 안다 말하는 이는 가르침을 청해보면 안다. 나는 스무살 시절부터 지금까지 웬만한 무공은 아주 조금씩이라도 기초를 겪었고, 서른살 이후부터는 ITF태권도 하나만을 익혔는데, 도장 내외를 막론하고, 어느 무공 무슨 곳이든 간에, 믿을수도 없이 자신의 실력을 부풀려 떠드는 이들은 어디나 있었다.
미각도 비슷한 맥락으로 접근 가능하다. 남이 온갖 미사여구 붙여가며 화면속 먹는 모습 봐봐야 알 수도 없고 배만 고프다. 다만 나는 서정적으로 노래 잘 부르는, 어느 키 큰 발라드 가수의 유튜브는 꽤 즐겨보는 편인데, 귀공자처럼 생겨서 서글서글하게 노포 밑반찬에 소주 콸콸 부어 마시는 모습도 그렇거니와 그의 맛 설명과 미각은 비교적 내 취향과도 맞는 듯했다. 안그래도 그가 자주 간다는 평양냉면집이 입맛에 잘 맞아서, 그가 또 찾아간 곳이기도 했고, 몇몇 방송에서도 찾아갔던 영등포 근처의 함흥냉면집을 한번 가보았다. 식사 시간을 훨씬 넘겼을 때인데도 사람들은 꽤 많았다.
결론 : 가격이 너무 비싸요. 일단은 사실 좀 보류입니다.
널찍한 가게 안에 육수 향이 확 끼치고요, 자리는 빈틈없이 채워져 있는데, 1인석, 2인석도 제법 있습니다. 빨간색 함흥냉면이 너무 매워보이기도 하고, 일단은 물냉면 파이긴 해서 저는 물냉면을 주문했지요. 고민하다가 만두도 하나 주문하긴 했는데요, 당시에는 감량 전인데 뭘 그렇게 걱정했을까요? 다름 아닌 가격이었습니다. 저는 아내가 허락해준 카드만 쓰는데요, 사실 아내가 별말하진 않지만, 안그래도 주말 부부인데 가끔 제가 평일에 쉬는 날이면 우리 남편 어디서 뭐하나, 안 그래도 술 좋아하는데 혹시나 행여나 어디서 뭐 안 좋은 일이나 안할까 걱정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스스로 아내가 궁금해하지 말라고 아내가 준 카드로 하루를 생활합니다. 아내나 나나 크게 잔재미가 없는 사람이라 하루 지출이 그리 크지 않고, 금액이나 위치만 봐도, 서로 '아 , 무엇때문에 뭐 샀겠군.' 할 정도인데, 냉면 한그릇 값이, 솔직히 그냥 도로 나갈까 싶을 정도로 만만치 않았어요. 거기에 만두까지 하려니, 이거 이래도 되나... 할 정도였죠. 맛있으면 다음에 처자식이랑 같이 오는 조사 비용 정도 하자는, 스스로 약간 변명 같은 위안을 하면서 먹었습니다. 음식은 빨리 나왔어요.
바쁜 식당치고는 상당히 친절했고, 맛도 없는 편은 아니었는데, 솔직히 가격 때문인지 냉면이 그렇게 제 값한다고 느껴지진 않았어요. 사실 간지 꽤 오랜만에 쓰는 일기인데 입에 육수의 기억이 잘 남질 않습니다. 좀 밋밋했던 기분이에요. 그동안 좀 한다 하는 집 냉면을 먹엇느데, 그런 냉면집은 간이 과하지 않으면서도, 굳이 더 식초나 겨자 등을 치지 않아도 충분히 입에 만족감을 줬거든요. 근데 평양냉면처럼 은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서울식 물냉면처럼 혀에 시원하게 젖지도 않는, 어중간한 맛에 과연 이 가격이 맞는가, 고민을 좀 했던 기억입니다. 대부분 함흥냉면을 드시던데, 역시 전문인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싶기도 했구요. 반면 만두는 진짜 그 불만을 날려버릴만큼 맛있었습니다. 만두의 맛은 선명히 지금도 입에 남으며, 바로 침을 불러일으키게 하는데요. 따뜻하고 포실포실한 만두피가 텁텁하지 않고, 부드럽게 이에서 잘려서 기분 좋았구요, 두부와 고기, 부추, 등 소를 잔뜩 다져넣은 만두가 정말 맛잇었는데, 김치만두보다는 고기만두가 약간 더 좋았던 기억입니다. 김치가 살짝 쓰고 군내가 났었지만, 감안해도 아주 맛있는 만두였습니다. 이 집은, 혼자서 다시 오긴 어렵고, 처자식과 함께 올때 함흥냉면 다시 한번 먹어보고 다시 한번 판단해보겠습니다. 일단 다녀온게 아까워서 지금이라도 일기를 씁니다.
2. 포항 ㄱ.
때는 바야흐로 약 6년전, 우리 부부가 아직 부부가 되기 전, 만난지 2주- 주말마다 한번씩 만났으니 딱 두번 만날때 바로 결혼을 결정하고 얼마 안 있어서의 일이다. 아내나 나나 털털하고 특별히 가리는 음식이 없는데다, 비싼데다 양 적고 점잔빼는 음식은 딱 질색이라 이래저래 주말에 맛있는 음식 찾으러 많이도 다녔었다. 냉면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고 하자, 그때도 지금처럼 이뻤던 물방울 같은 아내는, '내도 냉면 억수로 좋아합니데이~ 그라모 여서 유명한 냉면집 맛 한 번 보실랑교?' 하며 운전해서 데려다준 곳이 바로 이 ㄱ냉면이었다. 충청도의 ㅈ 처럼 경북 쪽에서는 냉면집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린다는, 가맹점 많은 업장이기도 했다. 아내와 나는 이 냉면집의 본점과 지점을 지역 불문하고 참 많이 갔는데, 가는 곳마다 사람이 많았고, 냉면뿐 아니라 갈비찜, 갈비탕, 육전 등도 따로 드시는 분들이 많아 이 집의 내공을 짐작케 했다. 처가 가면 기본 한번씩은 꼭 먹고 오는 곳이기도 하다.
결론 : 지역 친화적인 맛집은 적어도 이래야 합니다.
육수만 다르지, 언뜻 보면 진주 냉면 비슷한, 전형적인 육전 냉면입니다. 그렇지만 일단 썰어올린 육전이 두툼한데, 육수와 겉돌지 않게 기름기가 많지는 않고요, 고기와 면이 모두 탱글탱글하게 잘 씹히는데다 육수가 참 개운합니다. 비빔냉면도 많이 맵지 않은데, 참기름을 많이 넣어서 고소하고요. 다만 처가, 혹은 아내가 당직일때 내려갈때마다 한번씩은 먹었던 듯 하니, 햇수로 얼추 6년- 그래도 1년에 적게 먹진 않은듯한데, 확실히 한때는 육수와 양념장이 모두 좀 달게 느껴진 적도 있었습니다. 게다가 코로나 영향으로 24시간 운영하던 지점도 운영시간을 대폭 줄이거나, 난데없는 '브레이크 타임' 이 생기면서, 밥 먹는데 어려움이 있기도 했었지요. 맛도 그때쯤 잠시 한번 흔들렸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근에 다녀왔을떄는 아내와 제가 결혼 전 먹었던 그 맛으로 많이 돌아왔어요.
이 집의 가장 큰 장점은, 냉면을 훌륭하게 풍성하게 해주는 육전에 있습니다. 물론 정식적으로 먹는 광주 육전 등에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적절한 가격에 냉면 고명으로 올려주는 육전이라기엔 양도 맛도 훌륭합니다. 적어도 한 그릇 다 먹을때까지 육전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요. 고기 식감에 밀리지 않게 면의 탄성도 적절하구요, 무엇보다 육수가 어색하지 않습니다. 조미료맛도 나지 않고, 그렇다고 밍밍하거나 시거나 하지도 않아요. 양념은 그에 비하면 참기름도 조금 많고, 살짝 더 무겁게 맛을 내리눌러 덮어버리는 느낌은 있지만 감안해야겠지요. 이 집 냉면도 '꾼' 들을 감안한 안주용 냉면에 좀 더 가깝습니다. 맛의 끝을 경쾌하게 날리기보다는, 살짝 무겁게 눌러서 분명히 이 맛이라는 걸 알게 하거든요. 저처럼 술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이거 어려운 겁니다. 왜냐하면 술 마실때는 맛있게 느껴졌던 음식이, 술꺠고 다시 먹었을때는 짠 경우가 많거든요. 태권도의 기초가 호흡과 서기라면, 음식은 청결과 간으로 좌우하는 겁니다. 여하튼 ㄱ냉면의 장점은, 이 정도 훌륭한 냉면을 적어도 경북 번화가라면 어디든 한번씩은 맛볼수 있다는 점에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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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소은이는 이 집 냉면 4살때부터, 어른 그릇으로 혼자 다 먹었습니다...(...) 지나시는 분들마다 '아이고, 공주야, 니 이걸 혼자 다 묵어뿟나~~~' 할정도로 이미 그때부터 냉면 대장...다른건 잘 나눠주는데, 냉면과 빨간고기- 즉 생고기만큼은 잘 안 나눠줘요. 일단 제 입에 막 끌어넣고 봅니다... 아니, 아비 어미가 굶기냐고;;;; 진짜 38선 이남에서 우리 딸만큼 잘먹고 다니는 아이 드물걸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