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다시 한 번, 죽도 사무라이
마츠모토 타이요 쓰고 그림, 김완 역, 죽도 사무라이, 미우사,2015
햇수로는 어쨌건 무슨 무공이든지 십육년 동안 이것저것 다뤄봤으나 몸은 여전히 나약하다. 팔자에도 없는 호사스러운 고등교육을 받으며 천박한 성품 감추고 청운의 꿈도 품어보려 했다. 어느 쪽이건 대성할 수 없어 술만 마셨다. 그래도 가리지 못할 부끄러움이 있어 무엇이든 시간이 나는대로 의지가 허락하는대로 나섰다. 그러므로 어제의 찌르기와 오늘의 찌르기가 다르고, 검은 띠 시절의 앞차부수기는 마땅히 흰 띠 시절의 앞차부수기보다 나아가야 마땅하다. 하물며 시대를 물려 읽는 고전이며 위대한 유작들일까. 나는 무공을 익히기 전부터 은사님으로부터 사람도 책도 영화도 음악도 무엇이든 세 번 이상 겪어보고 평하라고 배웠다. 진번 이소룡은 천 개의 발차기를 찰 줄 아는 이보다, 하나의 발차기를 천 번 연습한 이가 더 무섭다고 했다.
시간을 두어 다시 읽는 죽도 사무라이는, 과연 그러했다. 작가 특유의 독특한 화풍과 꾸밈글자, 고증을 가려내니 비로소 그 특이성에 감춰진 서사와 작가의 말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 만화는 간살스럽고 아취있게 줄을 타지만, 결국 외로운 사내들의 칼부림 이야기다. 그 외로움에 공명하는 화살주이 기생 여인도 있다. 그 와중에 영주의 피붙이 세노 소이치로ㅡ통칭 여우는 검술이란, 원래 살인귀에게 대적할 수 없는 것이라며, 키쿠치의 연쇄 살인에 압도당한 사무라이들을 위로한다. 나는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었고, 한때 파락호처럼 살던 시절에도 언제나 몇 수 주워배운 기술로 내 스스로의 나약함을 가리곤 했었다. 금마장 영화제를 휩쓴 영화 사부 역시 무공으로 먹고 살고자 하는 이들의 이야기지만, 결국 제아무리 천하제일의 무공을 지녀도 밥 한 그릇 빌어먹을 수 없는 사내들의 이야기기도 하다. 세상은 만화가 아니라서 평생 시나노 설산에 박혀 있던 세노 소이치로를 덥썩 흠모하는 미모의 여인도, 그를 훈장으로 채용해주는 스님도 없다. 나는 그저 늘 많은 책과 얕은 무공으로 도망다니는 사내일 뿐이다. 죽기 전, 처자식이 이를 알까 가끔은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