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 - 범주와 경계
그러므로 오랜 노예 생활을 마치고, 열 가지 재앙이 내린 이집트를 마침내 탈출하여, 홍해를 쪼개어 건너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이스라엘 민족을 보는 주변 국가나 제후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위대한 절대자의 가호 앞에 그들은 승승장구했다. 열두 개의 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 민족은 내부적인 인구 조사를 통해 엄선된 군인 및 정치가, 사제, 노동 계급 등으로.이루어져 있으며, 가나안을 통해 무섭게 진군하고 있었다. 그들을 두려워했던 인물 중 하나가 모압 족의 왕 발락이다. 물 한 모금 없는 바위산에서 지팡이로 돌을 때려 물을 내게 하고, 먹을 것 없는 황야에서도 꿀과자와 같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불러다 먹으며, 신이 허락하는 한 패한 적이 없는 용맹한 이민족이 자기 땅을 지나가겠다는데 신경이 곤두서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발락은 용하기로 소문난 무당 발람을 불러 저주의 굿판을 부탁하지만, 발람은 이미 자신이 타고다니던 당나귀를 통해 한 차례 절대자의 계시를 받아, 선택받은 민족을 저주하는 짓을 꺼려한다. 발락은 천금을 약속하며, 이스라엘 민족의 앞쪽에도 가보고, 뒤쪽에도 가보며, 절대자의 눈을 피해 이 민족을 망하게 할 궁리만 했다. 이쯤 되자 제아무리 신의 말씀을 듣는 무속인이라고 해도 다시 속세의 욕심이 고개를 쳐들지 않을 수 없다. 끝내 저주는 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 민족을 축복했지만, 복채 받았으니 받은 값은 해야겠다는 발람의 투철한 직업 의식, 혹은 잔꾀는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다. 일찍이 은나라 주왕을 망하게 하기 위해, 훗날 주나라를 세우는 희씨 일족이 허리 잘록하고 가슴이 풍만한 서역 소녀들을 모아다 음란한 가무를 가르쳐 주왕을 꾀었듯이, 발람 역시 오랜 광야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이민족의 섹시한 성 문화를 보여주라는 잔꾀를 남기고 떠난다.
총칼은 막아도 눈물은 못 막는다는 이야기처럼 전략은 적중했다. 차라리 한 판 붙자 했으면 이스라엘 민족도 이토록 허물어지지는 않았을 터이다. 그러나 모압과 미디안 여인들은 이스라엘의 장정들을 뜨겁게 꾀었고, 유흥과 향락이 벌어지는 사이 이방 신의 믿음이 이스라엘 민족에 퍼졌다. 사람들은 흔히 신이 장엄하고 공정, 공평해야 한다 여기는 듯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성경의 절대자는 스스로 말씀하시기를 질투하고 화를 내는 분이시기도 하다. 사람이 그토록 감정에 솔직한 이유도, 신이 자신을 본떠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만을 섬기라 했던 십계 중 첫 명령을 돌에 새긴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방 여인들과 함께 온갖 신들을 섬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모습은, 절대자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고, 결국 전염병이 그들을 덮친다. 이때 떨치고 일어난 자가 모세의 형이자 가장 권위 있는 제사장이었던 아론의 손자이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였다. 그는 한 자루 창을 들고, 때마침 장막 안에서 이방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있는 동족 사내를 발견하고는 그 둘을 한 창에 꿰었다고 했다. 그 이후 이스라엘 민족을 유린하던 염병은 비로소 멈추고, 절대자는 분노를 거두셨다.
목회자들께서는 이런 설교를 하셨다. 비느하스의 창에 꿰어 죽은 남녀는 이스라엘 진영 내의 장막에서 불경한 짓을 저질렀다. 즉 잘못을 저질러도 선이 있고, 범위가 있는데, 부정한 행위를, 선을 넘어 이스라엘 진영 안에까지 끌고 왔으니 더할 나위 없는 죄라는 뜻이다. 아내도 가끔 일에 힘들어하는 나에게, 심정은 이해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문 밖에 버리고, 웃으면서 문 열고 들어오라 말한 적도 있다. 아직까지 다 지키진 못하지만 최대한 노력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물며.감히 가정을 깨고 흝을만한 죄악은 생각치도 않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의 기틀을 고민하며, 열두 개의 범주를 만들었다. 범주란 분류의 기준이자 범위이다. 분류는, 개체들이 어떻게 다른지 파악하여, 섞이지 않도록 하기 위한 기준이며 그 밖을 나서는 순간 스스로 부정되는 선이다. 나눈다는 것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서로 물들어서도 안된다. 그러므로 범주에서 경계가 생긴다. 갑이 을이 될 수는 없다. 이러한 관념을 가리켜 어떠한 이들은 매우 보수적이라고 한다. 이름을 바로 세워 살아야 한다는 공부자의 정명(正名) 사상은, 수제자 자로를 깨우침과 동시에, 공부자의 정치 철학 중 하나아기도 했는데, 왕이 왕다워야하고, 신하가 신하다워야 하며, 백성이 백성다워야 한다는 요지다. 즉, 왕이 신하 같아서도 안되고, 신하가 왕 같아서도 안되며, 백성이 그 위를 넘볼수는 더더욱 없다. 참새 한 번 잘못 가리켰다가 13억 인민 싸그리 굶겨죽일뻔 했던 모택동이 젊은 시절 집요하게 문제 삼았던 사상이기도 하다. 그는 결국 계급 분쟁이 세상의 가장 큰 모순이라고 생각했고, 이 큰 모순을 해결하면, 불평등이나 차별, 가난 등의 작은 모순들은 자연히 해결되리라는 글을 썼다. 그 유명한 모순론이다.
나도 젊은 시절 모순론을 읽었을 뿐 아니라, 온갖 석학들의 책은 닥치는대로 읽었고, 술에 절은 혀로 난설과 요설을 지껄여 대었는데, 지금 그 부끄러운 기억을 다시 헤집어보니, 결국 나를 합리화하기 위함이었다. 왜 구태여 나를 설명하고 합리화하려 했을까? 보통 사람들은 범주와 기초를 지키며 평범하게 산다. 그러나 괜히 특이성과 천재성을 가장하고, 남들이 안하는 무엇을 하려는 나를 구태여 설명하려다 보니 나의 혀는 쓸데없이 길고, 허랑방탕한 말은 길어질수밖에 없었다. 범주와 경계가 없는 청춘이란 그러하였고, 나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물론 자유롭게 살며 자신의 재능과 재주를 맘껏 펼치는 이들도 있으나,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나는 내 스스로의 분수를 알기 위해 너무 많은 상처를 주고 받았다.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내게 있어 진정한 범주와 경계가 처음으로 생겼다. 딸까지 태어나니 더욱 그랬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처자식 아플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즉, 가정이 나의 범주였고, 가정 바깥이 내 경계가 된 것이다. 가정 안은 항시 따사롭고 나를 믿어주어서 고마웠으니, 가정 밖에서 힘든 일이 있더라도, 구태여 젊은 시절처럼 구구절절 나를 설명할 필요도 없고, 애정을 구걸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다. 그저 집으로 돌아와 아이를 돌보거나, 아니면 주말마다 오는 아내에게 내 마음을 내보이면 그만이었다. 그러므로 이 가정을 넘어서는 짓을 할 수 없었다.
유지해야할 범주인 가정이 생기니, 하지 말아야할 경계가 생겼고, 그 테두리 안에서 나는 내 삶을 다시 설계해야 했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가 쭉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모두 생각해보았다. 무엇보다 온 세대를 아우르는 당대의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적어도 조명 아래 관객들이 보는 앞에서 공식적인 경기에 나가는 무인도 겸하고 싶었으며, 레너드 코헨처럼 낭만적인 가수도 되고 싶었고, 춤이나 마술, 혹은 성우나 이야기꾼, 주조사, 교사 등에도 두루 관심이 있었다. 한때의 열풍처럼 정한 곳 없이 방랑하며 내 족적을 곳곳에 남기는 여행객이 되고 싶기도 했다. 바람둥이 카사노바는 300개가 넘는 직업을 가졌다고 했다. 가정이 생기고 나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내 발에도 비로소 땅에 꽂을 뿌리가 돋아난듯했는데, 가만히 돌아보니, 내가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많은 분야들이 결국, 내 스스로 주목받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부산물 뿐이었다. 나는 내가 지금껏 이룬 것을 생각했고, 이룰 수 있을 것을 생각했으며, 반드시 해야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반드시 해야할 일에 비해, 이룬 것은 거의 없었고, 앞으로 이룰 것도 그와 다르지 않을 듯 해보였다.
내가 해야할 일은 평생 처자식을 올바로 건사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금액은 둘쨰치고라도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했고, 벌써 여기에서부터 많은, 허망한 꿈들이 사라졌다. 나는 더이상 가수나 전문 격투가, 소설가, 이야기꾼, 주조사 등을 꿈꾸지 않는다. 술과 노래와 춤은 흥이 날때 즐기면 그만이었다. 뒤늦게 시작한 무공을 20년간 다양히 해오며, 좌우간 부사범 직함까지 받고 나니, 무공에 대한 관점도 달라졌지만, 내 신체 기능과 무공으로는 도저히 돈 받고 경기를 흥행시킬 수 없었다. 나의 무공은 평생 삶을 유지하는 방향이자, 몸을 지키는 수준으로 만족해야 했다. 문학은 가장 내 욕망을 오래 붙잡은 덩쿨과도 같지만, 그조차도 나는 읽기에 만족키로 했다. 습작은 아직도 가끔 끄적이지만, 출판을 하거나, 훌륭한 문인이 되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나는 문장과 서사를 다루는 전문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고, 그나마도 감성과 연습량이 받쳐주지 못해 많이 무뎌졌는데, 단지 무슨 책이건 끊임없이 반복해 읽어 살짝 흉내는 낼 수 있다. 오랫동안 글을 흉내내어 써온 세월이 길어 문장의 나열이 아닌 '글' 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는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범주를 나누고 경계를 설정하고 나니, 나라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해졌다. 이 일기장의 대문에도 써놓았듯, 나는 책 읽고 태권도하고 술 마시는 이다. 늘 나와 함께 해야하는 신앙과 가족은 말할 필요도 없아 가장 토대라서 굳이 말 앞에 세우지 않았다. 이 3개만큼은 더이상 양보할 수 없었으나, 다만 나이 마흔이 넘으니 젊을 때처럼 두주불사로 마시기도 부끄러워 홀로 책 보며 마시는 술조차도 줄였다. 그러므로 사내는 기틀을 잡고, 나이를 먹을수록 자꾸만 작고 좁아진다. 지켜야될 것을 위해 포기해야하는 것들이 늘어나니, 결국 지켜야할 것은 반드시 지키기 위해 고집스러워진다. 나의 하루는 빈틈없이 짜여져 있는데, 누군가와의 약속이 있는 날이 아니라면,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순 있으나 하루의 독서와 훈련은 근무와 육아 사이 어딘가에 반드시 배치되어야 있어야 한다. 하루의 독서나 훈련을 다 하지 못하면 그렇게 몸과 마음이 찜찜하다.
그러므로 실로 오랜만에, 마치 피아니스트처럼 섬세하게 변해버린 누군가의 손가락을 보았을때, 나는 너무 기가 막혀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꼭 1년만의 일이었다. 무쇠 같던 근육은 다 빠져버리고, 어깨는 좁아졌으며, 무엇보다 꼿꼿하던 허리가 굽고 체간(體間)이 무너져, 불과 1년 전의 자신만만하던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는 내가 아는 한 문무를 겸비했으며, 지식도 무공도 내가 감히 넘볼 수 없어 늘 언젠가는 대등해보리라 생각하던 이이기도 했다. 그가 국기원 태권도를 할때 나는 종합격투를 했고, 그가 권투를 할때, 나는 ITF태권도에 뿌리박게 되었는데, 그는 종교가 없었고, 전공 분야도 각자 과학과 철학으로 닮은 듯 서로 달랐다. 피아니스트처럼 변해버린 손가락으로 그는 젓가락과 술잔을 들기도 힘겨워했고, 뛰거나 운동을 하긴커녕, 걸어서 계단도 올라갈 수 없게 되었다고 조용조용 힘겹게 말하는 모습을 보았을때, 나는 인간이 어찌 이리 변할 수 있나 하고 매우 놀랐다. 그를 늘 이기기를 선망했지만,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하나의 목표로 생각했을뿐, 정말 이런식으로 이기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어서 그가 회복되어 경계가 넓어지길 바랐고, 나는 그날, 빠르게, 많이 마셨다. 내 멋대로 살다가 무너져버린 내 옛 청춘을 보는 듯하여 견딜 수 없었다.
할 수 있다면 다 해보리라 큰소리치며 범주와 경계를 무시하고 뻗대던 대머리 청년은, 이제서야 겨우 분수를 알고 범주와 경계를 지키며 살려고 노력한다. 가끔의 미식과 술을 즐기기 위해 나는 서너달째 약속없는 날에는 집밥을 싸가며 하루를 보낸다. 지켜야할 것만을 지키고 살기에도 하루가 버거운.사내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