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여유에 대하여
예배본 뒤, 후다닥 교횟밥 먹고 회사로 출근했다. 물통을 놓고 와서, 회사에서 늘 두고 쓰는 컵에 물을 꽉꽉 채우고 있는데, 어데선가 익숙한 음정이 들렸다. 그 왜 들리는 그대로만 발음을.옮기면, 마씨밴야~~~ 발발이 치와와~~~ 처럼 들리는, 디즈니 라이온킹.여는 노래, 바로 그 음률이었다. 보안 때문에 전화기는커녕 종이 한 장 못 들고오는 사무실에서 노랫소리가 들릴리가 없는데, 하며 주변을 기웃대다 그만 실소하고 말았다. 돌아가며 내 컵에 물을 채워주는 정수기의 기계소리가 무심코 그.음정으로 들렸던게다. 깨닫고나니 그나마 음악소리처럼 들리던 정수기 소리도 그저 평범한 기계음으로 돌아왔다.
인생사 마음먹기에 따라 달렸다는 말을, 가장 잘 실천한 이가 부처님 다음으로는 원효스님일 터이다. 사람이 아무리 애쓴들 삼라만상 중 제 뜻대로 바꿀수 있는게 몇이나 되랴. 따라서 세상을 바꾸려 집착하느니 내 마음을 바꿔먹는게 나을 터이며, 현상학은 불교와 그래서 닿는 구석이 있다. 마음을 중히 여겨 심학心學 이라고 까지 불리는 양명학 또한 불교와 비슷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술 못.끊은 불민한 집사 주제에 잘 알지도 못하는 불교며.서양철학을 끌어대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비록 어느.분야 하나 대성치 못했으나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평생 책을 읽고, 지금까지 태권도를 익혀온 이로서, 모르지 않는다. 마음이 산란한데 무슨 글자가 눈이 들어오며, 무슨 태권도를 맘 편히 도장에서 할수 있을까. 그러므로 순수히 독서나 무공을 즐길수 있는 여유도 성숙한 인격이 자아내는 삶의 기반에서 나온다. 나는 젊은 시절, 내 인격이나 허술한 삶의 기반을 돌보지 아니하고 무조건 잡다한 기예에만 몰두했었다. 그때의 허덕임은 지금도 몸서리쳐지게 안다. 너와 가끔 술잔을 마주할때 젊은 때로 돌아가기 싫다 진저리치는 이유다.
그러면 지금은 꼴에, 내 스스로 인격이 조금이라도 성숙되고 삶이 탄탄하게 바뀌었는가? 물론 지금껏 살아온 세월과 경험이 있으니 약간은.바뀌었을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이토록 마음 편하게 바깥 생활하고, 가정을 잘 돌보며, 몸은 번잡스러워도 마음이 푸근한 이유는, 비록 일주일에 길어야.2,3일 보더랴도 아내가 있어 그렇다. 내가 성숙했다기보다, 부부는 일심동체이므로, 늘 든든하고 성숙한 아내가 나를 사랑해주고 함께 해주니 나도 물들어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그러므로 같은 물소리를 들어도 내게는 노래처럼 들리는, 삶의 작은 틈새마저도 발견하여 기쁘다. 나는 지금 아내에게 간다. 내 출근 이후 혼자 아이를 돌보고, 씻기고, 재우고, 또 이 남편을 기다리는 고마운 아내에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