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음식감평)

오늘의 면식수햏(24) ㅡ 숙대입구 ㅇ, 구디 ㅇ

by Aner병문


1. 숙대입구 ㅇ



이 날은 정말 선명히 기억난다. 세상말로 오지게도 뜨겁고 끓는 날이었다. 날 덥다고 제 어미도 없는데 집 안에서 에어컨만 쐬고 있기도 어려운 날이라 소은이 데리고 어디든 나가야 할 날이었다. 전쟁기념관 어린이박물관을 예약햇는데, 막상 가보니, 다 큰 딸내미가 놀기엔 다소 즐길거리가 많지 않았다. 폭염을 뚫고 안양에서 지하철 갈아타가며 힘겹게 갔는데, 아이는 막상 좀 놀다 심드렁하고 매점에서 아이스크림만 사달라고 계속 조르던 날이었다. 한도끝도 없이 아이스크림만 사줄수가 없어서, 소은아, 우리 냉면 먹으러 갈까? 하니, 정말이지 냉면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우리 딸, 눈이 똥그라져서, 아빠, 냉면 사줄꺼야? 해서 서둘러 간 집이었다. 보통 냉면집 하면 코로나 시대 이후로 '브레이크 타임' 때문에 항상 힘들었는데, 다행히도 그 당시 이 집은 브레이크 타임은 없엇던 것으로 기억한다.



결론 : 유명세에 비하면 솔직히 아주 대단한 맛은 아니었습니다.


맑고 진한 고기 육수, 참기름을 많이 뿌린 회냉면 양념. 분명 맛이 없는 냉면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먹으면 먹을수록 그렇게 맛있는 집일까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점심 때를 한참 넘긴 시각, 이미 식사를 하고 계신 분들도 적지 않았고, 더위를 뚫고 새롭게 들어오신 분들도 끊임없었습니다. 더위와 지루함에 지친 아이야 일단 잘 먹었지요. 4살때부터 냉면 한그릇을 다 먹던 아이니까요. 그러나 내게는 뭔가 마뜩치 않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아주 사소하지만, 유독 생쪽파를 많이 썰어넣어 면을 씹을때마다 파의 풋내가 거슬리던 그 느낌도 아주 선명합니다.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지금이야 예전의 유명세는 찾아볼수 없지만, 음식하면 그 분이라며 어느 매체에서나 손쉽게 얼굴을 보던 ㅂ 사장, 그 분이 대놓고 배우고 싶다 말했던 유명한 그 냉면집이란 걸요. 먹을때에도 그렇게 대단하다 느끼지 못햇는데, 하물며 나중에서야 그 집이란 걸 알고 나서는 오히려 더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전문 미각훈련을 받지 못했어도, 미우나 고우나 믿을건 내 혀뿐이다, 라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구요. 물론 제 혀가 이상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ㅂ 사장께서 드셨던 그 때와 지금은, 맛이 완전히 달라졌을수도 있구요. 여하튼 양념은 다소 희떠웠고, 먼 나라에서 온 명태의 씹는 맛도 썩 좋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이가 먹엇던 물냉면이 그나마 평균 수준이었던 기억입니다.







2. 구로디지탈단지 ㅇ



부자사전, 을 그린 허영만 화백은 몇 가지 꼭 있어야할 인연 중 병원 의사를 꼽았다. 사실 인연 중 용도로 사람을 꼽자면, 필요하지 않은 이 몇이나 되랴. 오히려 필요하지 않은 이,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이를 추리는 편이 빠를 터이다. 구로디지탈단지 ㅇ 은, 옛 직장 상사이자 동료, 도장에서의 좋은 사매, 이제 곧 결혼하는 친구이기도 한 밥 잘하는 유진이가 소개시켜준 집이다. 여간해서는 소위 말하는 체인점을 잘 데려가지 않는 친구인데, 본점이라 그래서 맛이 좋은가 싶었더니, 가격에 비해 좋은 도가니와 수육이 나와서 어른들 모시고 가기도 편하고, 사범님이나 도장 식구들 데려가기도 좋았다. 도장 바깥에서 밥 먹어야할 일이 있을때, 좋은 사람들과는 한두번씩 가기도 한 집이었다. 고기 좋은 집에 육수도 좋을테니, 당연히 더운 여름에는 냉면도 있을 터이다. 시간이 애매해서 훈련도 못하고, 곧 출근은 해야 하는데 속은 비었고, 해서 믿고 먹는 집이라 생각되어 냉면 한 그릇 먹었던 집이기도 하다.



결론 : 근 반 년만에 생각날만한 맛까진 아니었지요...^^;;;


참 오랜만에 쓰는 일기입니다. 다 완성하지 못한 습작, 다 마치지 못한 훈련이 늘 몸이나 마음 한켠 어딘가에 걸려 가시처럼 사람을 괴롭히듯, 야심차게 시작한 이 면식수햏 일기도 잠시 절벽처럼 막다른 길에 맞닿아더랬습니다. 바쁘고 힘들고, 쓸만한 여유가 없었다는 점도 다 하나의 이유겠지만, 제일 큰 점은 제가 전문 미각 훈련을 받지 못한데다, 그나마 느끼는 미각을 표현할만한 어휘도 바닥났기 떄문일 겁니다. 다른 분들은 이 곳을, 출판의 계기나, 혹은 등단 비슷한 등용문처럼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전 예나 지금이나 내가 읽고 보고 겪고 느낀 일들을 수다떨듯이 두드리고, 가끔 찾아오시는 뉜가가 몇 마디 남겨주시면 같이 이야기 나누는게 좋은 사람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찾아와서 읽어주시는 문장들이기는 했기에 매일 똑같이, 짜다, 싱겁다, 질기다, 부드럽다, 슴슴하다, 맵다, 칼칼하다 이런 표현들만 늘어놓을 순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남들보다 더 예리한 미각으로, 맛의 층위를 분석하면서 전문적인 어휘를 쓰기도 무리가 있었구요. 그래서 한동안 쓸 말이 생각나지 않아 멈춰놓았다는 사실이 더 맞을 겁니다.



최근의 경험을 하나 들어보자면, 맛이란 건 정말 간사하게도 사람의 환경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듯해보였습니다. 젊었을때, 돈 없을떄, 그래도 감사한 친구들과 막 어울려 다닐때, 술을 막 배웠던 철없을 무렵에는, 소주에 새우깡 하나 놓고 마셔도 그렇게 맛있고 달았습니다. 최근에 가족들과 한 잔 마신 다음에, 입 안이 심심하고, 아쉽기도 해서, 젊었을때 생각하며 새우깡에 소주 한잔 해보았지요. 옛날과는 다르다며, 그냥 새우깡이 아닌 와사비 새우깡까지 놓고 말이죠. 와, 그런데 그렇게 맛이 없을수가 있을까요. 와사비 새우깡 자체가 어쩌면 내 입맛에 맞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대학 시절, 친구들과 어울려 밤늦은 혜화동 대학로 거리에 퍼질러 앉아 먹던 그 맛과 추억은 온데간데없고, 혀 안에는 찝찝한 밀가루 조각들만 뭉쳐 남았을뿐입니다. 소주로 입을 가셔도 그 찜찜함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이럴수가 있는가, 이럴수가 있는가 싶어 어머니가 담가주신 김치에 몇 잔 더 마시긴 했지만, 이미 흥은 깨져 가족들과 함께 마시던 즐거움도 흩어질뻔 하더군요. 맛이란 단순히 혀로만 느끼는건 아닌가 싶어 털보 큰형님과 야밤에 통화로 오랫동안 맛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 일기를 슬쩍 손대보았어요. 뭐니뭐니해도 맛있는건 가족들과, 처자식들과 함께 어우러져 먹는 음식이지요. 아내는 독감에 걸려, 본인도 힘들지만, 혹시나 요즘처럼 일교차 큰 때에 아이에게 옮기는게 무섭다며 이번에는 올라오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없는 주말은, 벌써부터 너무 길고 적적합니다. 무려 반년 전의 사진을 찾으려고 전화기 안을 뒤지니, 아내와 주말마다 함께 있던 사진들만 소록소록 올라오네요. 맛이란, 이렇게 없던 사람도 당겨오듯 그리워하게 하는 힘도 잇어야 하겠지요. 무려 반년만에 사진을 보고 다시 떠올린 ㅇ 의 맛은, 물론 도가니, 수육집인만큼 이 집의 냉면이 대단치는 않습니다. 다만 늘 그렇듯, 잘강잘강 적당히 탄력있게 씹히던, 구수한 고기맛만큼은 지금도 떠오르네요. 아내의 동네에 내려갈때마다 공식처럼 먹는, 돼지찌개와 삼겹살, 혹은 단골 감자탕 집의 맛은 언제 떠올려도 늘 잘 떠오르는데 말이지요. 맛도 사람에게 얽히고 엉기는 계기가 잇는듯 보입니다.




작가의 이전글마땅히적을곳이없어서!(짧은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