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훈, 타워, 문학과지성사, 2020, 신판 1쇄.
처자식이 처가에 가 있는 동안에도 세상은 별로 달라지지 아니하였다. 세상 곳곳을 들추어내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한 병균들이 우글거리는 것 같아서 아침 뉴스는 늘 피곤한 몸을 깨워주기에 좋았다. 이토록 세상이 어지러운데, 물론 우리는 여전히 거대한 미 제국을 모시고 사는 소국의 백성들이지만, 바이든이 되건 트럼프가 재선이 되건 세상이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단지 내 눈으로 보고, 손아귀에 잡힐 수 있는 세상이 정돈될 수 있기를 원했다. 도장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기술들을 연마하고, 내가 읽을 수 있는 글들을 새겨넣듯이, 나는 구태여 내가 모르는 세상에 내가 스스로 욕심내지 않기를 바랐다.
배명훈 선생은 이미 문단에 정말이지 혜성처럼 등단할 때부터 '문단 바깥에서 태어난 행복한 재능' 이라는, 지금도 역시 토씨 한 글자 아니 틀리고 그대로 외울 수 있을 정도의 별호로 칭송받던 이다. '무규칙 이종소설가' 박민규 선생, '영등포의 수호신' 이명랑 선생, '한국 문단의 무관의 제왕' (형님!!) 한차현 형님 등 다양한 별호를 자랑하는 작가들이 무림의 은거기인마냥 포진해 있으나, 나는 아직까지 이처럼 사람을 압도하는 별호를 보지 못했다. 타워를 처음 읽었을 무렵이 벌써 십 년 전에 가까운데, 그 책은 어느 덧 절판되어버려 배명훈 이라는 SF계의 거장의 뒷그림자처럼 남아버리었다. 그렇게 남기에는 실로 아까운 작품이기도 하거니와 배명훈 선생 스스로도 근작 '빙글빙글 우주군' 에서 고백하듯이, 독자와 작품 사이에 어느 정도의 선을 설정해야 하는 고민은 늘 작가에게 남는 끈질긴 숙제이므로, 결국 그러한 고민이 비교적 덜 보이며 독자에게 한없이 뛰어드는 처녀작을 찾아보는 일을 매우 즐거운 일이다. 나 역시도 차현 형님에게 푹 빠져 있었을때, 형님의 '괴력들' 을 읽곤, 맙소사, 형님은 이 책 여전히 사랑하시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었다.
타워 의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이자 시종일관 독자를 붙들어 매두는 매력은, 바로 배경에 있다. 작중 배경 빈스토크Beanstalk (얄궂게도 콩나무 줄기 라는 뜻이 있으며, 잭과 콩나무에도 등장했다.) 는 거대한 건물로만 이루어진 도시국가로서, 이미 그 자체만으로 많은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건물이기 때문에 주변국의 영토에 어쩔 수 없이 일부 의지하면서도, 그 부유함과 강성함을 이웃 국가와 공유하려 하지 않을만큼 인색하고, '높이' 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이 있는만큼 빈스토크의 국민들은 모두 3차원의 개념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빈스토크 토박이들은 저소공포증을 앓고 있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며 건물의 높은 곳에서 살기를 즐겨하고, 그들은 대중교통처럼 엘리베이터 노선도를 외우며 3차원의 세계를 종횡무진한다. 고층건물 자체가 국가가 되어버린 이 매력적인 배경에서, 인물들은 당연히 빈스토크의 특성을 나누어받아 입체적인 매력을 지니게 되는데, 그 매력은 그 중 '엘리베이터 기동연습' 에서 전적으로 드러난다. 당시 많은 '좌파' 청년들이 이 소설을 즐겨 읽었다고 하는데, 엘리베이터 노선도를 중심으로, 계급주의적 노선을 대변하는듯이 보이는 '수직주의자' 들과 평등을 주장하는 듯이 보이는 '수평주의자' 들 간의 이야기를 즐겁게 다룬 소설이다. 단 하나의 낭만적인 SF 를 꼽으라면 물론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를 꼽기에 주저하지 않겠지만, 단 하나의 정치적 SF를 꼽으라면 나는 바로 이 작품을 꼽고 싶다. 정치가 삶을 대변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면, 문학은 마땅히 그 삶에 낭만을 더해야 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