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영웅, 혹은 어느 한 인간의 삶 - 김한민 감독, 충무공 3부작
감독 김한민, 주연 최민식, 명량, 한국, 2014
감독 김한민, 주연 박해일, 한산 : 용의 출현, 한국, 2022
감독 김한민, 주연 김윤석, 노량 : 죽음의 바다, 한국, 2023
구국의 영웅 하면, 누가 뭐래도 충무공이시다. 엄밀하게 따져 혈연간 왕가의 방계 혈족이라고는 하나, 16세기 조선에서조차 청년 취업난은, 젊은 날의 덕수 이씨 순신에게도 피해갈 수 없었다. 어렸을때부터 소꿉놀이 대신 아이들과 진치는 놀이를 하며 남아로서의 기개를 키웠다곤 하나, 문과 과거- 요즘으로 치면 행정공무원 고시를 오래 보다 결국 낙방하엿고, 이후로 무과로 전향하여 겨우 합격하였다. 말에서 떨어져 정강이뼈가 부러졌음에도, 버드나무 가지로 대략 처매고 끝까지 시험에 임했던 설화는 이미 유명하다. 영화 천군, 에서도 나오듯, 처음부터 해군, 즉 수군은 아니셨고, 북방의 말직 무관인 군관으로서 봉직하시다 수군으로 부임하시어 비로소 왜국의 침략을 예견하시고 구국의 영웅으로 거듭나시었다. 충무공 연구소까지 있는 마당에, 일개 학도였던 내가 감히 전공도 아닌 충무공의 삶을 뭐라 말하기도 어렵다. 다만, 서른이 넘어서야 비로소 무과에 드셨고, 비록 개인의 무공은 뛰어나지 않을 수 있더라도 공께서는 전쟁을 큰 그림으로 볼 줄 아셨고, 왜국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바다의 경로를 일체 근절하심으로써, 7년 전쟁을 승리로 이끄시었다.
김한민 감독은, 전작인 최종병기 활에서, 제한적인 조건에서 소위 말하는 ‘클라이막스’ 영화적 서사의 절정을 끌어내는 방식에 대해 상업적 흥행으로 충분히 검증을 받았다. 만인이 영웅으로 칭송하는 충무공에 대한 영화를 구상할떄, 이미 서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를 수가 없기에, 그는 영화적 장면을 어떻게 ‘맛있게‘ 구상할지 최선을 다했을 터이다. 아마 그래서 같은 영화의 3부작의 중심이 되는 주연 배우를 다 다르게 설정했던 이유도 그 떄문이 아닐까 싶다.
최민식 배우가 주연했던 명량, 은 백의종군이 끝난 충무공께서, 전임자 원균이 온통 망가뜨려놓은 12척의 조선 수군을 인계받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의 절박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므로 명량 이전의 싸움은 이미 의미가 없고, 당시의 명량이 해소되어 생존하여야, 비로소 조선의 미래도 열려서 다음 싸움도 기대해볼 수 있다. 육군 도원수였던 행주대첩의 영웅 권율 장군을 위시하여, 자신의 부하조차 12척의 배들을 가지고는 이길 수 없다고 진언하는 가운데, 최민식 배우가 열연한 충무공은, 그저 반드시 이 싸움을 이겨야만 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는, 한 명의 사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없는 극적 과장 사이에서, 충무공은, 어떤 위기에도 결코 부서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 위세를 보인다.
박해일 배우가 주연했던 한산 ; 용의 출현은, 부제와 마찬가지로 거북선에 방점이 찍혔다. 충무공 하면 거북선이다. 그런데 그 거북선의 약점이 들켜 왜군이 쑤시고 들어오는 설정을 넣었다. 내가 북촌에서 일했던 당시, 오전 7시에도 청초하고 해사한 미모로 촬영하다 말고, 출근길을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투로 안녕하세요, 인사하던 하얀 얼굴의 미청년 박해일 배우는, 이순신 장군에도 은근히 잘 어울렸다. 명량에서의 최민식 배우가 열연하던 모습이 , 투박한 짐승 같았다면, 박해일 배우의 충무공은, 소위 말하는 전쟁 엔지니어 같다. 그는 장기두듯 전쟁의 승패를 가늠한다. 거북선의 약점을 극복할 방법을 찾고, 원균이라는 약점을 안고서도 이길 방법을 골몰해야 한다. 영화 절정 직전에, 진법을 구상하며 종이에 글과 그림을 써넣는 모습은, 큰 ‘프로젝트;‘를 앞두고 PPT를 구사하는 직장인의 모습과 다를게 없다. 박해일 배우의 가녀린 선은, 오히려 고뇌하는 전쟁 엔지니어로서의 충무공을 반영하였다.
김윤석 배우가 주연했던 노량 : 죽음의 바다에서의 충무공은,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 충무공꼐서 최후를 맞이하시는 바로 그 곳이다. 선조는 뛰어난 머리를 지니 영민한 군주였지만, 백성의 위안보다 궁중의 평안을 우선시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오죽하면 퇴계께서 수없이 스스로 낙향하시고, 성인이 되느 열 장의 그림 - 성학십도聖學十圖 를 그러다 바쳤을까. 글 읽기 싫거든, 그림이라도 보란 얘기다. 퇴계께서는 한 나라의 군왕에게도 이처럼 우아하게 ‘먹일줄’ 아셨다. 임해군이 전쟁 위무를 간답시고 백성들을 사찰하다 오히려 기생에 술 접대 받고자 하여 몽둥이 찜질 당할떄 둘째 아들 광해는 진짜로 백성을 잘 돌보아 민심을 얻었는데, 그조차도 질투했던 아비이자 왕이 선조였다. 그에게 제일 중요한 일은 왕권의 안정이었다. 강맹했던 배설이 스스로 탈영하여 도망쳣을때, 선조는 오히려 충무공께서 전쟁 후 역천逆天 하지 않을까 하여 충무공의 진중을 뒤졌다. 뛰어난 용장이 탈영할리 없으니 반란군을 따로 육성해서 쳐들어오겠다는 심산 아니냐는 의심을 대놓고 비춘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나는 어느 정도, 충무공께서 스스로 총탄이 맞을만한 자리에 계셨던 게 아닌가 하는 의심에 약간 마음이 간다. 아들 면의 죽음, 왕의 의심, 명나라 외교관 심유경의 농간질, 명에서 파견한 육군 이여송의 평양 패주와 수군 제독 진린의 비협조. 이 모든 일이, 전선에 임한 장군에게는 크나큰 압박이었을 터이다. 김윤석 배우가 그려내는 충무공은, 그래서 악에 받쳐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일개 장수도 아니고, 다음 수를 생각해야 할 여유도 없다. 그는 그저, 이 전쟁을 끝내야 하는, 고뇌 많은 한 명의 사내를 그려내었다.
전작인 명량, 한산뿐 아니라, 다른 상업 영화에 비해도 노량 : 죽음의 바다는, 이런저런 서사를 길게 풀어놓다가 1시간 8분만에야 화포가 불을 뿜으며 비로소 전쟁 장면이 시작된다. 굉장히 강한 적처럼 보이던, 백윤식 배우의 시마즈는 영화 결말 20분을 남겨놓고, 갑자기 ‘어찌 이럴수가…’ 하며 넋을 놓아버리고, 협공하기로 한 고니시는 영화 중반 이후 사라져버린다. 갑작스레 비어버린 서사에서 충무공만 북을 치다 돌아가시는데, 이 나라 사람이라면 그래도 공감이 될수밖에 없는게, 그가 바로 충무공이시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장수로 나셔서 끝까지 제 몫을 하려 노력하다 돌아가셨다. 그래서 이 나라 사람들은 그 분을 최고의 영웅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이제서야 겨우 영화 3편을 다 보았다. 다만 역시 첫 작품이 제일 좋았다. 단순히 배우만의 문제도 아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