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1501일차 ㅡ 아파도 그만둘수 없는 이유가 다 있다.
다시금 날이 추워졌다. 답답하다고 투정부리는 소은이 옷 꽁꽁 입혀서 어린이집 보내고, 어머니 심부름 하고, 서둘러 도장에 갔더니, 어디서 많이 본 까무잡잡한 남녀가 나를 반긴다. 맙소사, 칠레 펠리페 사범님과 까를라! 한국 사람도 추운 이 겨울에, 뜨거운 남국의 남녀가 여긴 웬일이래... 심지어 둘 다 두꺼운 옷도 없이 일주일 동안 여기서 지내겠다고 찾아왔다. 사범님은 도장에 있는, 두꺼운 옷들을 선물로 주셨다. 코치용 바람막이, 태권도 자수 박은 두꺼운 조끼.. 펠리페 사범님은 몰라도, 아직 젊은 까를라는 한국 겨울이 무척 혹독한 모양이었다. 하기사 경상도 출신 아내도 서울 오면 춥다 하는데, 칠레 출신 아가씨가 버틸 수 있을리가..^^;; 아니, 근데 펠리페 사범님 모르셨나요...ㅎㅎ..
겸사겸사 연습도 하고, 태권도 지도법도 다시 점검할 겸 두 남녀가 온 모양이었다. 듣자하니 펠리페 사범님의 도장 유신관은, 수련생들이 100명이 넘고, 그조차도 입문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햐, ITF가 해외에서 인기 많다고는 들었지만, 그 정도라니 새삼 부러웠다. 한편으로, 출중한 실력과 지도력을 가지시고도, 세계에서 주목받기보다 우리 나라에 ITF를 완전히 뿌리내리게끔 하기 위해 애쓰시는 사범님께 새삼 또 감사를 느끼기도 했다. 어쨌든 오늘은 맞서기하는 금요일. 3월이면 포항으로 내려가서 본격 취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우백호는, 요즘 낮밤이 바뀌어서 오전반을 잘 못 나오니, 안 그래도 아직 흰 띠 이신 점잖은 김 선생님 혼자 계시는데, 칠레에서 손님까지 오셨으니, 손목 아프다 어쩐다 할 계제가 아니었다.
까를라는 처음 우리 도장에서 보았을때 줄검은띠였는데, 그새 검은 띠를 받아서 왔다. 축하해주었다. 펠리페 사범님과 둘이 알콩달콩 열심히 훈련하라고 짝맞춰 주고, 나와 점잖으신 김 선생님이 한 조가 되어서 연습했다. 점잖으신 김 선생님은, 젊었을적 킥복싱을 배우신 적이 있다는데, 아직 몸이 그 때의 움직임을 기억하고 계시고, 팔다리가 길고 끈기가 있으셔서 실력이 빨리 느셨다. 나는 사실 선생님 주먹과 발을, 내 글러브로 받아드리는 내내, 손목과 팔목이 쩡쩡 울렸지만, 그래도 나이 적은 사형이자 부사범으로서 해야될 일이었기에 내색하지 않고 했다. 사실 여러 사람 함께 있으니 즐겁기도 했다. 펠리페 사범님은 나보다 나이는 젊고, 단이 높지만, 지도하는 일로 시간을 많이 뺏겨 그런가 체력이 비교적 낮은 편이었고, 이제 막 검은 띠를 딴 까를라는 의욕이 넘쳐 빨리 지쳤다. 두 사람의 연습을 오랜만에 보는 재미도 있었다.
오랜만에 돌아가며 맞서기를 햇다. 이 날은 흰 띠인 김 선생님도 장비를 착용하고 함께 맞서기를 했다. 사범님 안 계실때 내가 있을때 종종 맞서기를 했기 때문에 선생님 실력은 내가 잘 알고 있다. 흰 띠라고 하기엔 선생님의 타격은 수준이 높은 편이셨다. 체력과, 타점, 방어 등만 좀 더 손보면 충분히 더 잘하실 수 있는 분이었다. 사범님은 내게 하나 더 과제를 주셨는데, 김 선생님의 얼굴을 타격하지 말라셨다. 으, 안 그래도 키가 크신데다, 난 가뜩이나 양손목이 울리는데 별 수 없었다. 선생님의 길게 뻗어오는 팔다리를 하나하나 걷어낸 다음에, 앞차부수기로 복부 쪽을 꽂거나, 뒷발 돌려차기로 옆구리를 쳤다. 손목 문제로 이번 주부터 본의 아니게 발차기에 좀더 신경을 썼더니, 그래도 약간 더 각이 나왔다.
아, 친애하는 칠레 아가씨 까를라. 도장의 열혈 부사범님을 비롯하여 여성 사자매들과 맞서기 훈련을 하면 사실 내심 난감하다. 세게 치지야 않지만, 얼굴에 손발 대기도 그렇고, 하체는 국제 규칙상 칠 수 없고, 상체를 치자니 흉부 아래를 솜씨 있게 쳐야 되는데, 그게 매번 조절이 잘 되면, 내가 내 도장 냈지, 왜 아직도 열심히 연습하겠나... 일단 검은 띠 딴 까를라 실력 좀 보자 싶었는데, 까를라는 역시나 전형적인 라틴 계열 선수처럼 자세를 잡았다. 아르헨띠나, 스뼤인, 칠레 등 라틴 계열 선수들은 기본적으로 한쪽 다리를 길게 앞으로 내밀어서 옆차찌르기 자세를 유지한 자세로 거리를 둔다. 상대가 멋모르고 정면으로 덤볐다간 길게 뻗은 앞다리에 당하고 마는 것이다. (비슷한 전략을 쓰는 가라테 출신 일본 킥복싱 선수가 있긴 하더라.) 양옆으로 좌우 속임을 주면서 접근할수밖에 없는데, 해외 선수들은 근골도 체격도 워낙 좋아서, 한 다리를 쭉 뻗은 채로 나머지 버팀발로 방향 전환도 잘한다. 나처럼 팔다리가 짧아서 접근전으로 승부 해야하는 사람과는 아주 상극이다. 우리 도장 가비도 뻑하면 이 기술을 써서 나도 초반에 참 많이 맞았었다. 다행히도 까를라는 나보다 키는 약간 더 작았기 때문에, 다리를 걷어내기가 비교적 쉬웠다. 나는 까를라의 오금 쪽에 팔을 걸어 뿌리치듯이 발차기를 걷어내고, 그 다음에...어딜 치냐고 ㅠ 얼굴도 못 치겠고, 배를 노리자니 내가 또 중심을 더 낮춰야 하고.. 어물어물하다 내가 오히려 얼굴에 몇 방을 맞았다. 까를라도 실력이 많이 늘어서 줄검은띠 시절에는 손발도 제대로 못 뻗고 애매하게 굴더니, 오늘은 아주 확실하게 앞으로 나오면서 주먹으로 연타를 계속 날렸다. 역시 띠가 다르니 사람 실력이 늘었다.
펠리페 사범님은 젊은 현역이다. 내 알기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이다. 젊은 나이에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칠레 내에서는 기반을 잡은 분으로 알고 있다. 한창 젊은 나이에 단도 높고 실력에 그에 준하니 내가 솔직히 따라가기도 엄두가 안 난다. 다행히도 많이 봐주셨다. 펠리페 사범님은 방어를 낮추고 일단 앞발로 다양하게 견제가 들어오는 편인데, 3회전을 연달아 하는데, 평소 나보다 단이나 급이 낮은 사제들 슬슬 봐주다 갑자기 해외 선수들이랑 본격적으로 하려니 나도 정신없이 움직이는 바람에 많이 지쳤다. 덕분에 뻔히 들어오는 반대 돌려차기를 보면서도, 방어가 제때 올라오지 못해 얼굴 한대를 그대로 맞았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은, 펠리페 사범님은, 늘 주먹 기술, 특히 얼굴로 날아오는 주먹에는 늘 낯설어 하신다. 이제 와서 날고 기어도 펠리페 사범님의 발차기를 따라갈 순 없다. 그래서 애초에 중심을 낮춰서 발차기를 전부 흘려보내고, 내가 먼저 뛰어서 얼굴에 두어방 꽂은 다음, 다시 착지해서 곧바로 돌려차기나 옆차찌르기, 뒤돌아 옆차찌르기 하는 방식으로 계속 나갔다. 나보다 젊은 고단자와 하려니 진짜 마지막에는 너무 지쳐서 심장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비록 아플지언정 진짜 흠뻑 빠지게 맞서기했다. 태권도는 역시 이래야 한다. 맞서기할때는 진짜 아픈 줄도 몰랐다가, 나중에 씻으려고 할때 양 손이 덜덜 떨리면서 손목과 팔꿈치가 엄청 울리고 아팠다. 그래도 해야만 하는 날이었다.
- 오늘의 훈련
도장 공식 맞서기 훈련 완
턱걸이 앞뒤로 반복 1회
유연성 정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