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통성 있는 가정생활에 대하여 - 아이의 탕후루를 중심으로
내 딸이라서 팔이 안으로 굽고 편들려고만 하는 말은 아니지만, 내 딸은 참으로 신체 기능이 출중하고 끼가 많다. 제 어미를 닮아 튼튼한 근골에 쭉 뻗은 다리, 말리지 않으면 하루에 1.5리터짜리 우유 반 통 이상은 문제없이 비워내는 칼슘 흡수, 할머니 할아버지가 각고의 사랑으로 챙겨주시는 영양만점 삼시세끼. 거기에 특유의 흥이 있어 소은이는 태권도의 낱기술부터 유튜브의 춤사위까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따로 각 잡고 알려주지 않아도, 잘 치고 잘 차고 잘 추면서 재밌게 잘 놀았다. 교회에서 제 아비 젬베칠때 가끔씩 기웃거리며 두둥거리는걸보면 확실히 박자감각도 있고, 제 아비 닮아 노래하는 일도 좋아한다. 나나 아버지, 사범님, 처남 형님 등은 술 한잔 마시면 노래방은 거의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아내는 의외로 아이돌 보는 일은 좋아해도(여자 아이돌은 거의 전문가 수준) 노래 부르는 일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노래부르기 좋아하는건 확실히 소은이도 나를 닮아서, 어렸을떄부터 어린이집 함께 다니며 노래를 목터져라 부르거나, 교회에서 찬송할때 함께 부르거나, 혹은 유튜브도 따라 부르거나 했다. 이처럼 활기차고 강건한 아이다보니 아무래도 맞벌이 하느라 바빠서 아비어미 없을떄 할머니 할아버지가 힘드실만도 하다. 아내는 아이가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나 부모님은 아무래도 소은이가 안 다쳤으면 하는 바람에 변수를 두고 싶지 않아 하지 말라, 조심해라는 말이 우선 나오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아이는 저와 함꼐 맘껏 놀아주고 풀어주는 제 어미가 오는 주말을 더욱 손꼽아 기다리는지도 모르겠다.
아내가 아이를 보고, 어머니 아버지는 모처럼 친척들 보러 외출하시고, 나는 일하러 나간 주말이었다. 아내가 킬킬거리며 동영상을 하나 보내왔기에 뭔지 하고 보니, 아이가 청포도를 잔뜩 젓가락에 끼워 마치 탕후루인척 하고 맛있게 뜯어먹는 먹방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마치 유튜브 촬영하듯이, 제 어미가 전화기로 영상을 찍어주면 ‘안녕~ 나는 소은인데 오늘은 ~ 할거야~ ’하면서 마치 유명 유튜버마냥 노는데 재미를 붙였다. 요거트에 과일을 넣고 비벼 디저트를 먹기도 하고, 지금처럼 젓가락에 꿴 포도를 탕후루랍시고 먹기도 하지만, 반드시 먹방에 국한되지는 않고, 종이접기나 만들기를 하기도 하고,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한 5분 가량을 대본도 없이 무엇은 어떻게 붙여야 한다느니, 또 새콤하고 달콤하고 톡톡 터져 맛있다느니, 하는 말을 하며 보란듯이 입을 가리고 쿡쿡 웃는 모습을 보면, 어느틈에 이놈이 이리 컸나 싶어 대견하기도 하고, 요망스럽기도 하다. 한창 보고 있다가, 문득 든 생각이, 아이고, 너무 안된다는 말만 하고 다녔나 싶기는 하였다.
사실 며칠 전에 아내와 좀 크게 부딪힌 일이 있었다. 한두해 쌓인일은 아니고, 아이가 7살이니, 벌써 8년쯤 된 되었다. 물론 아내는 좋은 점도 많지만, 무던함이 지나쳐 답답한 면도 있는데, 그 중, 도통 오는 연락을 대수롭지 않게 아니 받으니 무척 힘들었다. 사실 장모께서 살아계실때에도, 처가에서 어머님 전화기가 계속 울리는데도 주방에서 요리만 하실뿐 전혀 안 받으시기에, 내가 전화기를 들고 ‘엄니, 전화 계속 오는디요, 받으셔야 안되겄어요?’ 말씀드려도 생글생글 웃으시며 ’내뚜라, 마~ 급하모 또 걸겠지 모~‘ 하시는 분이셨다. 그나마 대기업 다니는 처남 형님은 연락을 잘 받으시는 편인데, 장인 어른도, 아내도, 전화, 문자, 카카오톡 모두 보면 보는 거고, 안 보면 못 본다는 식이니 정말 힘들었다. 아무리 바쁘고 정신없어도 저녁쯤에는 보고 연락을 주어야 하지 않나 싶은데, 다음날로 넘어가기도 예사였는데다, 무엇보다 바쁘지 않는데도 연락을 그냥 무심코 안 받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급할때는 사람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아내는 큰 키에 비해 나처럼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지 않는데다, 사실 주중에는 지방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올라와 애 보니, 무척 힘들어 그런지 쉴 떄는 소파에 누워서 짬짬이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했다 .아내가 복직하기 전, 모처럼 둘만 있을 때 아내도 좀 쉬게 두려고 가만히 아무 말 안하고 지켜봤더니, 정말 해 뜰 떄부터 해 질떄까지 사람이 꼼짝도 안하고 하루종일 전화기만 보면서 낄낄낄 즐겁게도 지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니, 여보는 하루종일 눠 있음서, 등도 안 가렵고, 배도 안 고프고, 화장실도 아니 가는가? 사람이 어쨰 그런가? 그럴수가 있는거여?‘ 하니 헤헤헤 웃으면서 ’모처럼 푹 쉬는데, 이기이 얼마나 좋은 건데 그럽니까~ 내는 이케에 하는기이 쉬는 기라~‘ 하는데, 그렇게 하루 종일 전화기나 TV에 빠져 있으면, 줄기차게 오는 문자도 카카오톡도 전혀 안 본다. 아내 말로는 시선이 전혀 안 가고, 온 줄도 모른다 했다. 그나마 전화라도 해야 ’오마, 깜짝이야.‘ 하며 비로소 정신을 차려 전화를 받는데, 그것도 전화기가 손에 있을떄나 있는 일이고, 일한다고 바쁘면 전화기를 내팽개쳐놓거나, 진동/무음으로라도 놓으면, 안그래도 수도권부터 경북까지 천릿길, 그저 부모님이나 나나 아내가 어서 전화기 좀 봐주기를~ 하고 기다릴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일이 8년쨰 되니 진짜 사람 잡을 노릇이었다. 안 그래도 중요한 연락을 또 놓쳐서 결국 다음 날까지 넘어갈때, 나도 참다참다 언성이 높아질수밖에 없었고, 아내와 나는 모처럼 한 이틀간 신나게 서로의 입장 다툼을 했다. 나나 부모님 입장에서는 8년째 아내이자 며느리가 이러니, 답답함을 떠나서 무시당한다 생각할 도리밖에 없었고, 아내는 사람이 그럴수도 있고, 본인도 예전에 비해 엄청 노력하면서 좀더 잘 받으려고 노력하는데 무조건 몰아세운다며 서운해했다. 어쨌든 이 문제는 말을 꺼낼때마다 자꾸 성향이 다르다보니 날이 서서 장기적으로 천천히 더 합의점을 찾아야겠구나 생각되어 일단 묵혀두는 중이다.
다시 원 이야기로 돌아와, 아이의 젓가락 탕후루 먹방을 보며 낄낄거리다 문득 아뿔싸 하는 생각은 들었다. 너무 내 입장만 들어 아이에게 안된다, 안된다 말만 하지 않았나? 아내나 나나, 아직 혀가 여물지도 않은 아이에게 고당도의 탕후루를 먹일 생각은 없다. 지나치게 달고, 건강에도 좋지 못하다. 아이는 나나 어머니나 아버지가 안된다고 말할 것을 뻔히 알기에, 반농반진으로 늘 탕후루를 먹으면 안되냐고 물었고, 그떄마다 나는 엄하게 ’안돼, 딴거 먹어잉?‘ 하고 거절했다. 아내도 기본적으로는 입장이 같은 줄은 알고 있었는데, 아내는 나처럼 무조건 안되다고 말하는 대신, 젓가락에 평범한 포도를 꽂아서 탕후루처럼 만들어주었다. 나는 이 접근 방식이 굉장히 신선했고, 아내와 나의 극명한 차이라고 느꼈다.
아내가 무던하고 따뜻해서 물론 더할나위 없이 좋다. 아내는 가장 소중한 나의 반려이자 사랑하는 인생의 동료다. 연예인들 백 명을 갖다대어도 내 아내 하나만 같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삶의 방식에 대해 나는 아내가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아 서운하고 답답하며, 아내가 좀 더 그 점에 있어서 세심해주길 바란다. 그 입장차야 더 노력해야할 일이지만, 나는 아이의 탕후루처럼, 아내의 연락 문제도 그저 내 입장만 지나치게 내세워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새삼 생각했다. 물론 아직은 더 가야될 길이다. 아비 노릇도 어렵지만, 남편 노릇도 참말 어렵다. 아내도 내가 모르는 지점에서, 나와 비슷한 방향의 고민을 늘 하고 있을 터이다. 그래서 부부다 .남이면 안본다. 부부니까 사랑하니까 달라도 참고, 같이 갈 길을 만드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