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예술, 낯설게 하기의 방식 - 국립국악원 공연과 성파스님 작품을 중심으로

by Aner병문


그러므로 현상학자들은 말하기를, 이미 늘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일상보다는, 비틀리고 빗나간 ’불편함’ 이 오히려 존재를 지각하는데 있어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매일 같은 자리에 놓인 잔받침은, 늘 그 자리에 있기에 있는지 없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일을 보다, 다른 생각을 하다 무심코 잔을 올려놓으면 그만이다. 매일 켜져 있는 컴퓨터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잔받침이 비스듬하게 놓여 있어 올려놓은 순간 잔이 깨져버렸다거나, 늘 켜져 있던 컴퓨터가 갑자기 꺼진 채로 반응이 없을때, 우리는 비로소 그 자리에 무언가가 있었음을 절실하게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옛 어른들은 그러셨나보다.



공연을 보러 온 지가 좀 오래 되었다. 생각해보니 극장을 언제 갔는지는 아직도 낯설다. 아내와 함께 간 연극은, 그 유명한 엄기준 배우의 베르테르였고, 영화는, 내 기억이 맞다면 기생충이 마지막이었다. 국립국악원은 아내와 내가 연 회원이기도 한데다, 비교적 가깝고 저렴한데,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내용들이 많아 애용한다. 국악을 엄청 좋아해서 국립국악원을 찾게 된건 물론 아니었다. 내가 아는 국악이란, 가끔 듣는 적벽가의 조자룡 활 쏘는 대목 정도인데, 국악원을 자주 가다보니, 어쨌든 계속 귀동냥을 하면서, 국악이 단순히 정체된 옛 문화만이 아니고, 나라 최고의 젊은 인재들이 끊임없이 노력하는, 활발한 예술이라는 점은 분명히 알게 되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에도, 다양한 도구들을 이용해서 국악의 명맥을 이어오던 명인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젊은 국악인들이 국악을 계속 할 수 있었을 터이다. 그래서 조금씩 남도 민요니, 서도 민요니, 악보와 탄주법이니 하는 부분도 살살 보게 되었다. 물론 대단한 수준은 아니다.



사실 아내는 내가 종종 그림을 보거나 고전 음악을 듣는 모습을 보고, 내가 대단히 순수예술에 조예가 깊다고 생각하는지, 가끔 예술의 전당 클래식 연주회나 현대 무용 등의 일정을 알아오곤 한다. 물론 요즘처럼 가사도 잘 안들리는 노래를 듣느니, 출퇴근길에 성악 가곡을 듣거나, 고전 음악을 듣는 일은 종종 있다. 아내가 있는 동네에 갈 떄, 아직 가보지 않은 지방을 들르게 된다면, 그 곳의 박물관이며 향토미술관 등도 꼭 가는 편이다. 그러나 예술이 나의 취미라고 내세워 말할 정도는 못 되는데, 정말 취미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책을 읽거나 태권도 연습을 하듯이, 주기적으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보고 들어야 된다고 믿기 떄문이다. 미술, 음악, 무용 등은, 솔직히 말해 내게, 독서나 태권도 다음으로, 빈틈없이 빡빡하게 채워진 일상의 피로를 해소하는 일에 가깝다. 요컨대 육아와 출퇴근, 훈련에도 지치면, 나는 조용히 그림을 보거나, 아니면 빠바로티의 목소리, 혹은 동서양의 옛 선율을 틀어놓고 비로소 한숨 돌릴 뿐인지라, 내가 쭉 읽어온 책이나 태권도만큼의 지식이 없다. 다만 다방면으로 읽고 본 경험은 있어, 아는만큼만 아는체할뿐이다.



그러므로 아내가 국립국악원의 새해 맞이 공연 ‘설 마(馬)중 가세’ 를 온가족 다같이 보러 가자고 예매해왔을떄, 무려 1시간 30분짜리 공연이라는데 있어 나는 좀 놀랐다. 적벽가야 삼국지도 좋아하고, 사내들 좋아할만한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 많으니 들었지만, 정통 국악을 1시간 30분씩이나 앉아서 들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새해 첫날 국립국악원에는 사람이 제법 많았고, 게다가 외국인들도 꽤 있었다. 과연 K-culture의 덕인가 싶었다. 소은이는 할머니, 어머니와 널을 뛰고, 윷을 던지고, 투호놀이를 하며 즐거워했다. 아이와 적당히 놀다가 시간맞춰 온 가족이 공연보러 들어갔다. 공연장은 빈틈없이 가득 차 있었다.



공연은 크게 1부와 2부로 구성되어 있엇는데, 1부는 민속악단과 민속무용단이 주로 하는 전통 공연이었고, 2부는 창작악단과 어린이 동요단이 함께 하는, 비교적 현대적인 공연이었다. 아무래도 1부의 내용과 비중이 높았는데, 첫 연주부터 마지막 악극에 이르기까지 숨돌릴 틈이 없었다. 정말 재미있었다. 어두운 무대에서 조명을 솜씨있게 비춰 화려한 복색과 화장을 한 악단들이 한 눈에 확 잡혔는데, 눈을 감으면 선율이 더 잘 들려서 좋았다. 서양 고전 음악이 주로 유려하게 이어지는데 매력이 있다면, 동양 고전 음악은 장중한 박자 위에 한번씩 튀어오르는 현악기나 취악기의 선명함이 날카롭게 흔적을 남긴다고 생각했다. 나는 늘 대금이나 꽹과리, 태평소 등이 지나치게 꺾이며 튀어오르지는 않는가 생각했는데, 적어도 이번 공연에서는 그 날카로움이 덜하면서도 부드럽게 존재를 남겨 좋았다. 한두번 정도는 음악시간에 부르거나, 들어온 사설난봉가, 창부타령 등도 친숙하여 좋았는데, 한자를 많이 써서 함축적이면서 운율을 살린 가사에, 타령꾼들이 가볍게 걷거나 뛰거나 손을 들어올리는 정도의 무용으로도 그 맛을 더하였다. 공연의 절정은, 대부분 그러했듯, 부채춤이었는데, 나는 부채춤이 그렇게 정교하고 절묘한 안무를 가지고 있는지 미처 몰랐고, 몸을 여러 번 회전시키거나 부채를 꽃과 나비에 비유하며 다양하게 펼치고 거두는 화려함 속에서도, 손발들은 함부로 흩어지지 않고 딱 있어야 할 곳에 있었다. 나는 도장에서 반대돌려차기 5번 정도만 연이어 해도 어지러운데, 국립국악단의 무용수들은 약 10여분 이상 몸을 여러번 휘돌리거나, 맴돌거나 뛰어도, 발끝과 시선이 흐트러지지 않았고, 늘 중심을 유지했다. 나라 최고의 재주꾼들이 모였겠거니 짐작하고도 남았다.



2부의 말발굽 소리는, 나중에 알고보니, 올해의 말의 해라고 특별히 작곡한 음악은 아니었고, 몽골의 음악을 변주하여 작곡한 음악이라고 했다. 현대적 국악은 어떨까 싶었는데, 마치 서양 연주자들의 연미복을 연상시키는듯한, 길다란 검은 한복에 비교적 현대적 느낌을 갖춘 모습이었고, 심지어 지휘자까지 나오셨다. 국립국악관현악단에도 지휘자가 있구나 싶어 놀랐다. 말발굽 소리는 나중에 찾아보니 국악 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많은 음악이었는데, 약동하는 박진감이 있었고, 음악이 끝날떄까지 휘몰아치는 느낌이 과연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 전 공연은, 우리가 익히 아는 심청전의 심 봉사와 뺑덕어미가 맹인잔치 가기 전 재담을 푸는 자리였는데, 걸쭉한 농과 창으로 풀어진 자리가 한순간에 긴장하듯 조여드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귀여운 어린이들이 나와 어른 못지 않은 솜씨로 동요를 부르며 자리는 마무리되었다.



아내는 ‘엣헴, 내 선구안이 어떤교?’ 하는 얼굴이었고, 그래서 나는 마음껏 칭찬해주었다. 아버지 어머니께서도 아주 재미있는 공연이었고, 지금껏 본 국악 중에 최고였다고 해주셨다. 소은이만 약간 지루해했지만 끝까지 의젓하게 자리를 잘 지켜주었고, 뺑덕어미 역을 맡은 소리꾼의 재담은 소은이에게도 제대로 먹힌 모양이었는지, 소은이는 종종 뺑덕어미 이야기를 했다. 1시간 30분 동안 연주, 무용, 창, 악극, 사물놀이 등으로 다양히 구성된 국악 공연을 보면서, 나는 예술을 접하는 형식에 대해 다시 고민해볼 기회를 가졌다. 요컨대 태권도 훈련이나 독서 등의 공부는, 낯선 기술이나 지식을 내 것으로 익숙하게 끌어오는 과정이다. 쓰지 못하던 기술을 연습하여 쓸수 있게 되거나, 말하지 못하던 외국어를 능란하게 한다거나, 모르던 지식을 이해하는 일은 모두 낯섦에서 익숙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다. 반면, 예술이란, 늘 익숙하던 일상을 낯설게 자각하거나 비틀어버리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찍이 뒤샹은 양변기에 ‘샘 ‘ 이라는 제목을 붙여 미술관에 전시해둠으로써, 단번에 관념의 역전을 일으켰다. 그 자리에, 그 제목을 단 양변기 하나만으로, 사람들이 알아서 예술작품을 상상하여 해석해주리라는 기대와 예측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터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만약 늘 일상의 피로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전화기에서 앱을 켜서 국악을 들었다면 이 정도의 만족은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제아무리 내가 집 앞 바깥 옥상을 스스로 ’옥상도장‘ 이라고 부르며, 도복을 입고, 맨발로 연습하더라도, 그 곳에서의 태권도가 도장에서의 태권도와 동일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당시의 공연도, 멀리 차를 타고 와서, 꺠끗한 옷을 입고,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휴대전화를 진동으로 놓고, 워치를 극장 모드로 바꾸며, 의자에 푹 파묻혀, 섬세하게 계산된 조명과 음향 장치의 도움을 받아 가장 부각된 공연을 관람하는, ’평소와는 다른 비일상의 자리‘ 가 가장 예술을 예술답게 향유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오늘 찾아간 경기도 박물관의 전시도 그랬다. 난 원래 미루고 미루던 현대미술관을 가고 싶었는데, 아이가 또 갑자기 현대 미술관을 가고 싶지 않다고 하여, 우리는 일단 오랜만에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을 갔다. 용인시에 위치한 경기도어린이박물관 옆에는 경기도박물관이 있다. 경기도에 관한 많은 내용들을 볼수 있는 곳이다. 현재 조계종의 종정이시라는 성파스님의 글씨, 옻칠그림, 부처님 빚으신 도자기 불상 등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마치 모든 기술에 통달한 종합격투가마냥, 글씨와 그림,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가를 이루신 대단한 예술가셨다. 잭슨 폴록처럼 옻이 그냥 흐르게 두도록 그리셨다는 오옻칠그림은 내가 잘 알 수 없었고, 교회 집사일망정 부처님의 안온한 미소는 좋았고, 글씨를 보던 와중에, 한 어르신들이 나누시는 말씀을 귀동냥하여 듣게 되었다. 다들 글씨에 대해 조예가 싶으신 듯, 반야심경의 글씨에 대해 논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분이 말씀하시었다. ‘중국어라는게 성조가 있잖아? 같은 한자라도 성조나 발음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게 있다구. (이를테면 契 계약할 계 로 일반적으로 읽지만, 나라 글 이라고도 읽는다. 글안 에서 거란 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떄 쓰는 글자.) 근데 그 발음과 뜻에 달라지는 데에 따라 글씨쓰는 법도 바뀌어요. 어떻게 읽으면 한번에 휘리릭 이어서 쓰고, 어떻게 읽으면 끊어가면서 쓰고, 글씨의 묘미가 그런거 읽어내는 재미거든.‘ 호오, 그렇구나. 나는 반야심경의 몇번 반복되는 반약파라밀 글자를 여러번 들여다보았지만, 글씨를 잘 알지 못해서 전혀 차이를 알수 없었다. 어머니는 한자와 서예에 모두 박식하시는데, 어머니께 여쭤보면 뭔가 아실지도 모르겠다.



늘 쓰는 글씨지만, 글씨가 예술의 정수로 거론되는 순간, 그 필법부터 호흡, 자세에 이르기까지, 검법 못지 않은 엄격함이 요구된다고 들었다. 학교 다닐 무렵 노자를 강의하시던 선생님 한 분은, 글씨야말로 정신력을 드러내는 최고의 예술이라고 하셨다. 정신이 흐트러진 사람은 제대로 글씨를 쓸수 없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하물며 그림이며 도자기이겠는가. 경기도 박물관은 작년 여름부터 곳곳에 QR코드를 심어두고, 열세 개의 ‘보물’ 을 찾아 앱으로 등록록하면 선물 하나씩을 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저 전시된 유물들을 보기만 하기 보다, 13개의 코드를 찍어 유물에 대한 문제를 맞히고 제출하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이 도입되니 아이도 훨씬 신기해하고, 적어도 13개의 유물에 대한 단상은 훨씬 더 우리 가족에게도 깊게 남았다.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예술이란, 정말로 일상을 낯설게 하는 것이고, 낯설게끔 해야 비로소 그 맛을 알게 된다는걸 마흔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 일상이 힘든데 어찌 예술을 알고, 할수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들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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