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아까 잊어버렸던 내용이 기억났다.
나는 서른 고개를 넘으며 내 자신이 정말 변했음을 말하고 싶었다. 얼마 전 너가 내게 전화하여 그래도 영어는 좀 하잖아? 영어나 일어 중국어처럼 친숙한 언어 말구 전혀 다른 외국어 배울때 제일 필요한게 뭐라고 생각해? 라고 물었을때 나는 회화라면 이것이 무엇이냐 는 말을 배우는 것이라고 했다. 이걸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아 그로부터 낯선 말을 차곡차곡 쌓을 터이니, 나는 늘 What is called of this? 외에도 셔언머 밍즈? 와 고레와 난데스까? 바스 이스트 다스Was ist das (요즘에도 제2외국어 독일어인데 있나?ㅋㅋ) 로 시작했었다. 너는 그때 다시 물었다. 그럼 그냥 공부를 한다면? 나는 망설임없이 문법, 문법을 알아야 그 형식에 맞춰 말을 만들지, 했다가 내 스스로 고리타분하게 느껴져 놀라 입을 다물었다. 너와 내가 안지 십 년 가까이 되어가지만, 이십 대의 내게 물어봤을 때는 정말 이리 대답치 않았을 터였다. 아마 그 때도 안주머니에서 조그마한 술병 꺼내어 꼴깍거리며, 말이지 말! 말부터 트여야 주고받으며 늘지, 문법 백 번 해봐라, 말이 느니? 하며 껄껄 웃지 않았을까.
나는 이제 사람을 쓰러뜨리기 위해 무엇이든 효과적인 잔기술만 주워모으던 경박한 이십대가 아니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대로 읽어 스스로의 지적 허술함을 감출 나이도 아니다. 얼마 전 카타의 여왕이라 불리는 가라테 일본 대표 우사미 리카 상의 동영상을 보았을 때 나는 그녀의 카타에 완전히 반해버리었다. 그녀의 모든 움직임은 법도에 맞았고 합리적이었다. 문외한이거나 소경이라 할지언정 그녀의 도복 나부끼는 소리만 들어도 그 비범함을 알 터이다. 그렇게 피곤한 눈 부벼가며 그녀의 카타를 넋놓고 보다가 내 스스로 놀라버리었다. 예전의 나라면 그깟 품새며 틀, 카타, 투로가 무슨 소용이냐며 다 춤에 불과하며 대련 한 번 더하고 팔굽혀펴기나 하라고 퉁을 놓았을 터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누구보다 기초와 절차와 단계를 중시하는 고리타분한 아재가 되었다. 물론 단계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천재들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나는 그런 인간이 아님을 너무 늦게 알았다, 부끄럽게도.
그러므로 나는 이제서야 나이 마흔이 가까워 태권도를 통해 가르침대로 기초를 지켜 치고 받으려고 노력한다. 요설과 잡설에 혹하는 대신 질박한 고전을 되풀이하여 읽는다. 어학원 선생님 미스터 강의 말 대로 단어를 외우기보다 반드시 문장을 만들어 그 구조에 익숙하고자 한다. 훗날 내 자녀들은, 내가 어렸을때 그랬듯 울 아비는 생긴대로 소심하고 겁이 많아 책 읽고 태권도하며 고리타분한 말 안주 삼아 술이나 마신다 타박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미 숱한 상처 주고받으며 내 부족함 알아버렸으니 어쩌랴. 다만 무공이든 학문이든 인격이든 더는 스스로 나대어 뉜가를 아프게 하지 아니하였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