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갈수록 어디선가 본듯한 아저씨가 된다. - 협소하게 살아지는 것.
그러므로 황석영 선생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성장소설 ‘개밥바라기 별’ 에서, 모두 젊었을 적 황석영 선생의 모습을 얼마간 나눠받은 듯한 젊은 등장인물들이 소소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떄, 누군가가, 자리에 없는 동무를 문득 만났던 때를 추억하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 그녀석, 자신에게 딱 알맞은 벽을 만났어. 다음에 봤을땐 어디서 본듯한 아저씨가 되어 있을 거다.‘ 황석영 선생의 개밥바라기 별을 읽던 시절은, 너무 철이 없어서 내가 철이 없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던, 갓 군대를 제대하고, 불보다 뜨겁고, 칼보다 날카롭게 굴어야 된다고 믿던, 이십대 중반 시절이었다. 돈이 어디로 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서너 시간 골방에서 자는 때를 제외하곤, 아침엔 일어나 체육관에서 훈련 뒤 학교에서 공부하고, 다시 업장으로 돌아와 기분에 들떠 대충 장사하고 있는 돈 쓸어모아 술이며 책이며 흥청망청 마시고 쓰고 읽던 허랑방탕한 삶이었다. 그 시절을 추억할순 있어도, 남아 있는 이는 거의 없다. 그 떄 나는 황석영 선생의 그 문장을 오래 기억하게 되었는데, 절대 그렇게 늙고 싶지 않다는, 젊은 날의 강렬한 혐오 떄문이었을 터이다.
어쩌랴, 나는 세상의 주인공도 아니었고, 내가 생각했던만큼 뛰어난 천재도 아니었다. 내 학문적 능력은 뛰어나지 못해 나는 학교에 더 남을 수 없었고, 내 경제적 능력은 더 빈곤해서, 나는 추악한 비난과 함께 시원하게 망해버렸다. 내 청춘의 한 자락은 분명히 내가 망쳤고, 거기서부터 기어나오는데 가족들을 비롯한, 깊은 벗, 사회, 교회, 도장에서의 교육으로 지금까지 겨우 왔다. 그떄의 시절이 없었다면, 나는 차라리 예술가인척 건방떠는, 싸움꾼 건달은 되었을망정 처자식과 함께 차분하게 살수 있는 기회는 얻지 못햇을 터이다. 나는 아내와 함께 자주 찾던 식당에 새로운 음식이 나오면 먹어보려 들지만, 절대로 그 떄 못 갔던 길에 대한 동경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이먹거나, 결혼하고 나서 협소해지고, 보수적으로 변하는 일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자신의 고뇌를 자녀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당연히 자녀는, 젊었을 적 내가 그랬듯이, 부모가 뭘 아냐며 자신의 삶과 자유를 지켜내기 위해 격렬하게 반항할 것이다. 나 또한 그랬기 떄문에 정말로 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 역시 내가 그토록 젊었을적 거부하고 반박했던 부모니처럼, 비록 방향과 무게를 다를지라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를 자녀에게 할수밖에 없을 터이다. 결혼하고 나서 통화하거나, 이야기 나눈 사람들이 다들 농담처럼, 왜 나더러 그토록 협소해졌냐, 보수적으로 변했냐, 젊었을떄랑 다르다, 라고 말해서 몇 자 적어보았다. 나는 이제 더이상 내가 모르는 내용을 구태여 적극적으로 알려 하지 않고, 오로지 내가 정확히 아는 내용에만 말하고 싶어졌다. 나는 모험하고 싶지 않고, 구태여 반박하고 싶지 않으며, 그저 내가 할수 있는것들만 반복하며, 지킬수 잇는것만 지키고픈 사내로 변해버렸다. 다른 변화가 없다면, 나는 아마 삶의 끝까지 이런 모습을 지킬 것이다. 몇 번 말했듯이, 적어도 내가 뜻을 꺾은 지점이, 내 자녀의 시작점이길 간절히 바랄뿐이다. 공부든 무공이든 예술이든, 이 아비가 아는만큼은 무엇이든 알려주고 물려주고 싶다. 아파야 성장하겠지만, 구태여 성장하려고 아플 필욘 없다는 사실도 알려주고 싶다. 사실 나도 다시 되돌아오지 못할수도 있을 정도로 꽤 아슬아슬한 청춘을 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