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암귀 라는 말을 모르는 이는 드물 터이다. 설사 한자를 모른다 할지라도 그 뜻을 새겨주면 금방 아, 그 얘기 알지, 라고들 할터이다. 열자는 오동나무를 베라고 충고한 이가 그 나무를 베고나자 땔감으로 달라 말했다는 사례와 사실은 도끼를 잃어버렸는데 평소 귀여워하던 이웃집 아이가 훔쳐가지 않았을까 의심하여 미워하게 되는 사례 등을 들어 사람 마음의 유약함을 경계했다. 한비자는 이로부터 더 나아가 세난 편에서, 부잣집 담벼락이 무너진 것을 보고 고치라 조언만 해주었을 뿐인 이웃집 사내가 훗날 정말 도둑이 들자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 사례를 들어 유학에서 말하는 인의와 양심 등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가를 꼬집었다. 비록 맹자와 가는 길은 달랐다지만, 일본에서는 공부자의 적통으로 맹자보다 한 수 위로 꼽는 순자의 제자이었을지언정 한비자는 그렇게 유가로부터 벗어나 법가의 길로 향한다. 말더듬이였던 그는, 현란한 저술을 통해 시대를 앞서간 입헌군주제를 부르짖었다. 비록 한비자는 동문인 이사의 모함으로 억울히 사약을 받았지만, 지금은 문명화된 사회치고 법 없이 운영되는 곳이 없다.
우리는 과연 법의 승리를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옛 왕보다 더 존숭하는 마음으로 법을 대하고 있을까? 우리는 과연 사필귀정 신상필벌 인과응보를 믿고 살고 있을까? 이 정부의 지지율은 첫 해에 무려 80퍼센트에 육박했으나 작년 40퍼센트도 채우지 못하고 올해는 무려 35퍼센트까지 곤두박질 쳤다. 나라 백성 십중 서넛만이 그 마음을 지켰으니 이들은 세상 말로 친문 중 친문ㅡ찐중찐이라 할 터이다. 언론에서는 그 이유를 40대, 진보, 여성층 등 그동안 이 정부를 지지해온 주된 계급들의 이탈로 꼽았다. 칸트가 계급에 상관없는 진선미ㅡ3영역의 미학을 부르짖었으나 부르디외가 계급적 미학으로 이를 반박했듯, 결국 자신이 속한 계급을 보장해줄 수 없다면, 정치도 법도 소용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이 정부가 적폐청산과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며 윤ㅡ추 대전을 매일 다룬다 해도, 소위 국민정서가 공감치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에 지나지 않고 말았다. 추 장관이 제아무리 합법적 절차를 말하고, 심지어 위인설관, 아니 위인설법 하신다 해도 우리는 여전히 법의 위엄을 믿지 못하게 되었는데 법이 사람에 따라 불균형하고 불공정한 도구로 전락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마치 바다 건너 홍콩에서 역시 여장관이 법의 이름으로 야권을 짓누르고 구속시키고 추방시키지만 누구도 그녀를 정의로 믿지 않음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글을 읽고 무공을 익힘은, 사실은 내가 나답게 살기 위해서다. 글을 읽어 어진 마음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사회의 외압에 속거나 굴하지 아니하며, 이 어진 마음을 밖으로 표출하는 행위를 의 혹은 협 이라고 옛 어른들은 불렀다. 그러므로 최익현(시..실례지만 어디 최씨...읍읍)은 망국의 위기에서 제 목부터 베라 도끼를 들고 궁궐 앞에 섰고, 옛 류큐의 고수들은 무기를 빼앗겨도 당수를 익히며 끝내 나라와 전통을 보전하였다. 나는 비록 재주없으나 내 자녀가 한 조각 의기를 지니고 살기를 바라 어젯밤에 이어 오늘 새벽도 뉴스 틀어놓고 두 시간 땀 솟도록 훈련하였다. 늘 할 수 있는만큼만 한다, 즉 할 수 있는만큼은 최선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