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에는 아내가 커피를 마시게 하지 않으므로 심신이(쌍권총 춤 추신 오직 하나뿐인 그대~ 그 분 말고) 한 가지로 늘어져 있다. 책을 읽자니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무공 흉내라도 내자니 아이가 부산스러워 꽁무니만 쫓다 진이 빠지기 일쑤다. 어머니나 주변 누님들 말씀처럼 이제부터 뭐든 입에 넣고 돌아다닐테니 육아 시작이라는데, 아닌게 아니라 전기 케이블이며 리모콘, 와이파이 공유기까지 모조리 끌어내어 입에 넣으려하니 살림 망가지는건 둘째치고 행여나 감전될까 겁이 나서 손을 끌어서 찰싹찰싹 때리면서 짐짓 근엄한 애비인 척, 안돼! 안돼! 했더니 아내가 대번에 아쵸! 하면서 172센티미터의 키로 낮은 돌려차기를 날렸다. 아니, 어찌 근가, 내 딴에는 지금버텀 되는 것과 안 되는 것, 알려줄라 허는디, 얻어맞아서 조금은 억울한 내가 투덜대었으나 아내는 어림도 없었다. 이제 돌도 안 지난 아아한테 뭐 벌써부터 그럽니까, 부정적인 언사 쓰지 말라카니까는 참 자꾸 그러시네! 쳇, 그래서 그런가, 아이는 결국 내 책을 찢었다. 네 어미가 시킨 것이 틀림없....읍읍.
이러구러 아이 있는 집 다 그렇듯, 하는 일없이 바쁘고 길었던 하루가 지나고 부부가 잠자리에 들 때, 아내가 물었다. 근데 여보, 밖에 눈 장난 아입니데이, 내일 눈 치워야 안할까? 커피 한 잔 없이 하루를 보내어 멍해 있던 나는, 대수롭지 않게 나가 내일 출근 전에 나가볼랑게 걱정 마씨요, 이러고 잠들었는데, 허, 막상 오늘 새벽 나가보니 군 시절 생각이 절로 났다. (우리 브런치 쓰는 분 중에서도 현역 장교 한 분 계신 줄 아는데 장군 눈은 잘 치우셨는지ㅎㅎ) 아내는 산에서 일하던 사람이라 벌써 일이 복잡해질 것을 알았는지 파카와 장갑, 양말 다 꺼내놓고 일찍부터 커피를 끓여놓고 있었다. 젊은 부부가 중무장을 하고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이른 아침부터 눈을 치우는 풍경이 수도권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지라 몇몇 새벽잠 없는 어르신들이 칭찬해주셨다. 참 옳게 된 (올바른) 색시랑 남편이네, 아이도 잘 클거야, 근데 신랑이 키가 작은데 어찌 이리 훤칠한 색시를 얻었는고? ...거 어르신, 눈 치우다 허리 삐끗할 뻔 했네요. 넉가래가 있으면 쫘악 밀어서 한 켠에 쌓으면 좋았을텐데 쓰레받기 대용으로 쓰는 삽 하나로 대략 길 틔워놓고 정리만 다독다독 했다. 아이가 지루한지 유모차에서 울어대어서 아내는 결국 아이를 안고 올라갔다. 젊은 신랑도 어서 출근하라고 어르신들이 만류하셔서 나도 그 뒤따라 얼른 올라갔다.아내가 내려주신 커피가 얼어붙은 속을 타고 내려가는 기분이 제법 그럴듯하였다.
여러 번 쓰는 얘기지만, 남명 조식은 공맹의 글을 읽는 이들은 마땅히 제자리를 정돈하고 비질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창시자님께서는 태권도교본에 도복을 입고(!) 빗자루로 거리를 쓰는 유단자들의 사진을 손수 실으시면서, 태권도를 하는 사람은 마땅히 지역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공부자께서는 수신ㅡ자신의 몸을 닦고 정갈히 하는 것에서부터 천하를 다스리는 이치가 있다고 보았다. 난 솔직히 그래서는 아니고, 그냥 해야 되어서 했다. 솔직히 아내가 참 현명하다. 날이 너무 추워서 고량주 한 모금 입에 물고 속 좀 덥히고 나가려 했다가 또 냉장고 앞에서 손칼등으로 맞았다. 태권도교본 감추든가 해야지...ㅡ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