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ITF 번외편 ㅡ 세상의 때를 벗기듯이.

by Aner병문

오랜만에 오는 도장은 늘 그렇듯 변함이 없었으나, 또 오랜 코로나 역질로 기다렸다 온 탓에 낯선만큼 반가웠다. 총각 때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결혼 후에도 딸내미 낳기 전 일 년 남짓 간은 일주일에 네닷새 저녁을 온전히 바치기에 여념이 없었으나 이제는 일주일에 하루이틀도 감지덕지요, 그나마도 아홉 시 전에 샤워도 없이 나가야 하기에 젖은 수건으로 땀이나 훔치고 나가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소설가 김영하 선생께서, 삶의 자질구레한 구석들을 눈에 치워두고 글에 집중하기 위해 돈 주고 호텔방을 쓰는 작가들을 말씀하셨듯이, 단 하루 저녁이라도 바깥세상의 번잡함을 벗고 도복을 입은 채 마음껏 틀이며 맞서기 연습을 할 수 있다면 그 것으로도 좋다.



그러므로 단 하루 도장에서 그나마 태권도다운 무엇을 연마할 수 있다면 나머지 엿새는 그를 위한 몸을 짜두는 일과 또한 잠시라도 읽고 쓰며 쉬며 보내야할 터이다. 늘 티를 내며 바닥을 쉽게 드러내는 성미이다보니 남들이 보기엔 보잘것없는 문장 보시고 문무겸비코자 열심히 사는 중생인가보다 싶겠으나 실은 작심삼일도 백이십번이면 일 년이라 생각하고 사는 장삼이사 필부에 불과하다. 모처럼 연이어 쉬는 지난 주말도 연말정산에 애 쫓아다니는 것만으로도 넋이 빠져 틈만 나면 잠만 자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러니 돈 벌 필요없이 부자였던 엽문 노사가 영춘권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도 당연하지 싶다.



다만 재능도 재산도 없으므로 몸 아껴가며 짬날때마다 할 뿐이다. 요즘은 몸 풀기로 허동호 사범님의 가라테 유튜브와 일본 공수강좌를, 본 훈련으로는 ITF 기초 훈련을, 마무리 훈련으로는 9분짜리 체력 트레이닝을 한다. 7년을 익힌 태권도조차 아직 기초를 자신할 수 없는데, 하물며 유튜브로 흉내내는 다른 무공이랴. 지난 십칠년간, 온갖 노사들과 고수들을 모시며 그럴듯한 무공은 다 건드려보았으나 그나마 태권도 하나 겨우 몸에 모시었다. 갈 길이 늘 멀다. 그래도 모처럼 지난 주의 고민들을 떨쳐내듯 기초 훈련들을 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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