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ITF 번외편 ㅡ 시간의 축

by Aner병문

총각 시절에는 시간을 나누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김훈 선생의 말씀처럼 일단 자기 먹을 것을 벌어야하므로 항시 출근하고 남은 시간이나 쉬는 날에 무조건 도장을 나갔다. 한번 가면 하루 두 시간에서 보통 네 시간이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었다. 평소에는 저녁을 먹지 않았고 술 약속이 있을 때만 많이 먹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무슨 시흥동 칸트 같다. 하여간 돈이 없어 문제지 시간은 넘치던 때였다.



처자식이 생기고 나서는 모든 시간의 축이 아이에게 맡겨졌다. 무엇을 하든 아이가 깨면 중단해야 했다. 책은 문장 단위로 읽어 달을 넘기기도 예사였고, 체계 있는 훈련은 바랄 수 없었다. 아이가 자란만큼 줄이고 줄여 최소한의 양만큼을 반복하고 있다. 초단 시절, 사범님께서 말씀해주시기를, 어느 노고수는 나이가 드시어 젊은 시절처럼 화려한 기술로 공방을 잇기 어려워지자 딱 다섯 개의 초식만을 연마하여 매번 맞서기 때마다 그 다섯 개의 기술로 경기를 끝냈다고 했다. 내가 아는 어느 가라테 고수는, 역시 따로 생업이 있었으므로 매일 카타 훈련만을 하다 시합을 나갔는데 카타를 응용하여 경기에 임하니 능히 우승을 거두었다고 했다. 매일 하는 훈련조차 일기에 쓰지 못할 정도로, 늘 소꿉장난처럼 깔짝이고 마는 것이지만, 내게는 포기할 수 없고 양보할 수 없는 일상이므로 기어이 부끄럽게 몇 자 적어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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