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오늘 하루 푸지게 보냈다.

by Aner병문

총각 시절 끊임없이 몸을 많이 썼더니 별나게 대단한 실력을 갖춘 것도 아닌데 시름시름 몸이 아팠다. 결혼하고 훈련을 예전보다 못 하니 당연히 몸이 급하게 불었고, 덧붙여 아이를 보느라 누적된 상처에 피로가 더해갔다. 발목과 무릎은 이미 익히 알고 있었으나 족저근막염과 어깨 회전근개 손상까지 겹쳐 여덟 달을 쉬었다. 발바닥이야 그렇다치고 어깨에는 이백만원도 훨씬 넘는 돈이 들어갔는데 좌우지간 어지간하여 아프지 않아 다시금 훈련을 했다가 이제서야 어깨를 다시 보일 짬이 났다. 여섯 달만에 뵙는 선생님은 몸 많이 좋아지셨네, 무릎이랑 발목은 계속 아프실텐데 연골 약 계속 드셔야지, 사람 치는 운동은 고만 좀 하시고, 하며 웃으시었다. 딱따구리처럼 경망스러운 충격파 치료는 여전히 아팠다.


요즘 고생 많이 하신 어머니 면 세워드릴 겸하여 떡갈비 좀 사드렸는데, 결국 며느리 떡갈비에 돼지갈비를 얹어 싸주셨으니 그 돈이 그 돈이었다. 이제 오래 걷기 시작하는 딸의 첫 신발을 신겨주러 산책삼아 아가방까지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는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친다고 중래향을 들렀다. 치엔(내 성이 전 全 가 니까) 시엔셩 先生, 낮에 어쩐 일이오, 마누라랑 딸내미도 같이 왔소? 하며 중국 사장님이 반겨주셨다. 아이고 많이 컸다 컸어, 딸도 이쁘고, 마누라 성격 좋아 참 잘 뒀소. 그 동안 많이 번 돈, 코로나로 다 까먹고 버틸 재간이 없다는 사장님은 4월에 재래시장 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포장 배달 장사만 한다시었다. 코로나가 끝나겠소? 절대 안 끝난단 말이, 서너 달이면 버텨볼만하겠지만 이미 직원 다 내보내고 코로나 끝이 없소. 할 말이 없어 한 마디 읊조려보았다. 허다허다니엔. (許多許多年 ) 허다한 해, 즉 오랜 시간을 뜻하는 중국어 관용구다. 치엔 시엔셩은 영어도 잘 하더니만은 쫑꿔도 우리 사람들하고 몇 년 어울리면 잘하겠소, 한어도 다 읽지 않는가 말이. 괜히 부끄러워서 손사래를 쳤다. 라오빤이야말로 솜씨가 이렇게 좋으신데 이 소국에서 고생 그만하시고 본토로 가시지 그래요? 아이고, 본토 음식 종류 너무 많아 나 같은건 끼지도 못하오, 죽으나 사나 여기서 승부 봐야지, 자주 와주어 고마우니까 서비스 오늘 내 많이 하겠소. 씨에씨에. 지삼선, 탕수육에 서비스로 내주신 고량주, 냉면까지 잘 먹었는데 정말 가게 살림 정리하시는지 양도 평소보다 더 많은데다 냄비에 복을 부르는 액자까지 얹어주셨다. 본인도 열 달배기 외손자가 있기 때문인지 사장님은 우리 부부가 먹고 마실 동안 자신이 애를 보겠다 하셨다. 딸 이름 한어를 어찌 쓰나 그래, 손바닥에 한자를 써드리자 좋은 이름이라고 웃으셨다. 부른 배와 짐을 끌어안고 다시 우리 부부는 오래 걸었다.



부른 배를 꺼뜨리려고 오래 걸으니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밤이 되었다. 아내는 아이를 씻기고 밥을 먹여 재웠다. 56도짜리 고량주라봐야 한 병이어서 나 역시 이미 깨어 짐을 다 정리했다. 영어 공부를 마치고 잠들면 내일은 도장을 갈 수 있다. 넉넉치 아니한 살림이지만 가끔 바깥 밥, 술을 먹고 좋은 인연을 뵐 수 있어 감사하다. 아내가 내 가정을 건사해주시지 않는다면 이런 행복은 없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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