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나는 여전히 집착하고 산다.
예수님의 뜻을 따르기로 마음 먹었다는 어느 청년은, 예수님께서 네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끝내 망설이다가 결국 발걸음을 돌렸다. 제 재산에 대한 집착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자신을 보기 위해 꽃 두 송이를 들고 온 청년에게, 꽃을 들고 왔다는 생각조차 내려 놓으라고 말씀하셨으며, 달마 대사는 도를 닦기 위해 스스로 팔을 자른 선승 혜가에게 너의 마음을 가져오면 편하게 해주겠노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이 고정되어 있다,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마음 자체가 오히려 우리를 더욱 힘들고 어렵게 만들 때가 있다.
아내와 딸이 처가에 잠시 쉬러 간 날, 약 2주 남짓한 나날이었지만 이래저래 꼽아보니 태권도 하고 술 마시기도 빠듯한 날들이었다. 나는 잠을 자는 단 하루를 제외하고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퇴근, 혹은 쉬는 날에 늘 도장에 향했고 그동안 더욱 뒤처지고 둔해진 태권도를 채우려고 애썼다. 나의 태권도가 못난 채로 고정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나는 태권도를 마치고 나면 늘 술을 마셨는데, 그럼으로서 내가 늘 행복하고 자유롭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사범님과 사형제, 사자매들과 술을 마셨고, 전현직 직장의 누님과 여동생들과 술을 마셨고, 벗들과 술을 마셨고, 너와 술을 마셨다. 내가 스스로 외롭지 않은 사람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나는 가끔 틈이 날 때 책에 밑줄을 쳐가며 읽었는데 나의 무식함과 천박함을 조금이라도 가리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결국 처자식이 없을 때 나는 철저히 욕심에 따라 움직였으며, 나의 집착에 따라 움직였다. 내가 반드시 이래야 한다, 내가 이렇게 보여야 한다 는 내 스스로의 욕심에서 나는 열흘 넘게 조금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미 꿈은 버렸다고 생각했고, 하루하루 살아나가는 것조차도 힘든 내 스스로의 역량을 알았는데도 그랬다. 조금이라도 지금의 내가, 본디 내가 아닌 것처럼, 마치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가 반드시 있을 것처럼, 그렇게 집착을 집착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내일은 아내가 온다. 퇴근하고 졸린 눈을 부벼가며 겨우 청소를 마치고, 이제서야 자리에 든다. 다른 건 몰라도 책을 다 읽지 못한 건 정말 아쉽다. 막 시작한 습작의 몇 문장도 그렇다. 그러나 지금도 2주, 아니 두달, 아니 2년을 더한다 해도 내가 지금보다 뛰어난 무공을 지니거나 훌륭한 글을 남기거나 여러 사람을 아우르는 위인이 될 수 없음을 내 스스로가 잘 안다. 나는 그저 하루를 넘기며 내 가정을 건사하기에도 힘에 겨운 필부다. 그런데도 허망한 꿈에 집착하는 내 스스로를 알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이러고 산다. 이렇게 부끄러운 남편과 아비를 믿고 사는 아내와 딸에게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