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사람도 가끔은 독해진다.
벌써 십 년 가까이 된 일이다. 나는 그때 팔자에도 없다고 생각한 늦된 직장생활을 하면서, 첫 월급으로 늘 얻어먹기만 하던 네게 술을 사주고, 몰래 책을 읽고, 짬나면 중국 무술을 계속할지 아니면 한번도 해보지 못한 태권도를 할지 골몰하고 있었다. 그때 나와 잠깐 일하던 형님은, 바로 옆 사무실의 사람이었는데 그때도 사람이 부드럽지는 않았다. 예민하고 성말랐으며,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이었다. 당시 나 역시 한없이 불안하고 흔들리는 사람이었는데도 그랬다. 형님은 당시 십 년 가까이 연애한 형수와의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불씨를 묻어둔 마냥 굵고 거친 성정의 사내가 유럽 여행을 준비할때만큼은 또 섬세하고 가냘파서, 나는 과연 사랑이란 여름에도 따뜻하고 겨울에도 시원하여 설명하기 어려운 기적인가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장난처럼 지어보던 농사도 그만두고, 매장의 현장업을 떠돌다 그예 완전한 속세에서 살기를 결심하였으나, 형님은 그 이후로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다만 푸른들에게 듣기로 좋지 아니한 소식이 들려 슬펐다.
오늘 출근 준비를 하다 정말 생각지도 못하게 형님의 유튜브를 보았다. 어찌 생각하면 어울리는 일이었고, 어찌 생각하면 어울리지 아니했다. 함께 있는 강아지와 새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면 강렬한 공격뿐이었다. 본인의 신앙, 결혼, 여성관, 군대, 그 모든 것이 통렬한 비난과 공격과 정정의 대상이었다. 한손으로 꼽을 구독자를 대상으로 형님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다기보다, 그저 지나온 세월을 부정하고 세상이 미워 그 빈틈을 후비고 싶은가 보다 싶었다. 그래서 그냥 묵묵히 보고 들었다. 어제 돌아온 아내는 장모님과 딸과 함께 밖에서 커피를 내리며 웃고 있고, 2주 만에 계단 두 단만큼 더 큰 딸아이는 어느 틈에 아비 출퇴근을 알아보고 울고 웃게 되었는데, 십 년 만에 선인장처럼 날이 선 말로 옛 형수 이야기를 쏟아내놓는 형님이 여전하여 반갑기도 하고, 한없이 서글프기도 했다. 내 삶과 형님의 삶을 비교코자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진심으로 형님이 잊을 것을 잊고 행복하기를 바랐다. 독한 마음을 지닌 이에게는 결국 독밖에 남지 않는다. 내가 아는 형님은 이보다 훨씬 넓은 사람이었었다. 하물며 아내를 만나지 않았던들 나라고 달랐을까, 더하진 않았을까, 아내에게 고마운만큼 늘 내 스스로에게 섬뜩할 때가 있다. 늘 무엇이든 망가뜨리고 마는 내 스스로의 천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