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다시 한 번, 고지식한 남자의 주말보고서
한 해를 넘겨 두 해째의 절반이 되어도 도통 수그러들줄 모르는 역병을 참다못해 밀렸던 화혼들이 터져나오는지, 원래 총각 시절에는 몰랐던 가정의 달이 이랬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여하튼 지난 주말은 결혼식 세 개를 치르니 순식간에 녹아버리었다. 군대 후임과 우리 부부 중신 서주신 권사님의 자제분과, 도장 사제의 결혼인지라 어느 한 자리 빠질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나는, 다들 결혼식 끝나고 출근하냐며, 웬 큰 가방을 지고 왔느냐 놀리고 놀라긴 했으나, 늘 그렇듯 도복 하나, 속옷과 수건, 책 한 권, 술병 대신 커피 텀블러 짊어지고 인천과 서울을 누비며 얼굴을 비추고 술을 실컷 마시고 왔다. 누나가 위로만 셋이라는, 당시 내가 반장이던 시절 막내 후임의 결혼도, 키가 훤칠하게 커진 동네 아우의 결혼도, 도장 사제의 결혼도 벌써 내 결혼을 아득하게 느끼게 하여 신기했다. 우리는 뷔페와 옛 이야기를 안주삼아 신나게 떠들었다. 도장 사제의 결혼식에서, 사회자는 신랑과 미리 합의가 있었는지 어쨌는지, 앉는서찌르기를 시켜서 정말 웃겼다. 그 와중에 싸인 웨이븤ㅋㅋㅋㅋㅋ
중신 서주신 분의 경사였기에 장모님께서도 처가를 대표하여 인사드려야한다고 올라오신 김에 함께 우리 교회에 모시고 갔다. 빈 손으로 또한 갈 수 없는 자리였으므로 어머님은 수박과 참외와 떡을 사서 목사님 차에 실어드렸는데, 수박 끈이 헐거운줄 모르고 고쳐 잡으려 들었다가 땅에 떨구어 작신 두 조각이 났다. 완전히 엎어져 부서진 것도 아니고, 딱 반으로 갈렸기에 까짓거 우리 부부가 파내어 먹으면 일도 아니겠으나, 돈도 아깝고 하여 버스 여덟 정거장 떨어진 우리 집의 새 수박을 하나 안고 왔다. 즉, 인근 세탁소에서 비닐 하나 얻어 부서진 수박을 싸안고 버스타서 집으로 가져다놓은 뒤, 다시 새 수박을 안고 교회로 돌아와 차에 실어놓은 것이다. 네 말마따나 고지식하고 피곤한 방법이긴 했으나 나 하나 피곤하면 수박 하나 덜 사도 되고, 게다가 내 스스로 깨먹은 것 누가 치울 것인가. 다만 행사용 높은 구두가 발을 터뜨릴듯 피곤했고, 또 예배 끝나고 결혼식 간다고 멀끔하게 정장 차려 입어놓고, 깨진 수박을 안은 채 땀투성이로 탔으니 나를 계속 흘끔거리던 마을버스 기사님은 아마 속으로 인간극장급 이야기 여럿 상상하고 계실지도 몰랐다. 어데 인사드리러 가다 수박과 함께 쫓겨난 노총각쯤으로 보이려나. 나는 그때 사실 어느 주례사를 생각하고 있었다. 사랑해서 결혼함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결혼한다는 말씀을. 너는 나더러 참 고지식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아내는 아마 나보다 더 많이 잘 알 것이다. 그래도 늘 사랑하기 위해 함께 해주시는 아내가 고마웠다. 이틀간 원없이 먹고 마시고, 잠도 모처럼 잘 잤다. 배명훈을 다시 읽고 있다. 영화는 거의 보지 못했다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