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젊은 아저씨의 고리타분함..ㅎㅎ
들뢰즈와 가타리는 뿌리와 나무 이미지로 대변되는 전통철학의 계보에 대응하여 무작위로 퍼져나가는 리좀 이미지에 대해 말하였다. 아닌게아니라 온갖 매체를 통해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 단일한 전승 구조는 더이상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에 갈수록 빠르고 격렬하게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현 상황의 추세는, 마치 크고 날카로운 원추형의 바늘처럼 느껴진다. 고리타분, 아니 골이따분한 과거와 불안한 현재를 벗어나 무한한 희망으로 달려나가고자 하는 그 움직임을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분노의 도로에서 이미 망가진 고향을 벗어나 막연히 새로운 이상향을 찾아 소금사막으로 향하려는 여성전사 부발리니들에게 맥스는 끔찍하더라도 현실에서 가능성을 찾자 역설하지만, 여하튼 지금 우리 세대들에게 안주는 그저 죄악처럼 느껴진다. 심지어 미니멀라이프이니 소확행이니, 혼자살기니 하는 삶의 형태들조차 고정된 유행으로 답습되려 한다.
그렇게 누구보다 앞서고 빠르게 달리고 싶고, 가장 먼저 부와 평안을 거머쥐고 싶으면서, 소통이며 공유 등은 왜 하고자 하는 걸까?코로나는 분명 인간의 물리적 생활 방식에 위협과 동시에 당위성을 안겨주었고, 이제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외로울 수 있게 되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책과 영화와 음악과 운동과 게임을 즐기면서도 첨단을 자처하는 프로그램들은 " 내가 원할 때에 " 사람과 조우할 수 있는 기능을 더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또한 그럴 수 있으려면 시스템 요구사항이 갖춰진 기기를 함께 써야하니, 결국 현 세상이 결정짓는 소통이자 공유란, 기기ㅡ다시 말해 소비 형태를 통해 비슷한 삶의 수준을 전제해야 되는 모양이다. 내가 어렸을 때도 사라져가는 광경이긴 했으나 이제 단순히 동네 친구라서 놀이터에서 모여놀수 있는 모습들조차 "비슷한 경제 수준의 아파트 단지 내"에서나 뜨이게 되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보니 운전은커녕 못질, 형광등 갈기도 서툰 내가 첨단산업의 첨병에서 허위허위 먹고 산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원리는 반드시 알아야하기에 알아듣도 못할 영어를 번역해가며 배운다. 그때마다 나는 이런 시대에 구태여 몸을 단련하고 기천년 전의 글을 읽어 무엇할까 싶은 절망과 나태를 본다. 또는 그때마다 바로 이런 시대야말로 머나먼 시공을 넘어 끊임없이 전승되는 글들이 중요하다 생각되어 가슴 벅차다. 오늘은 꼭 기술 수련을 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