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

ITF 번외편 - 혼자 하는 태권도의 즐거움.

by Aner병문

어제 다른 수련자들이 한 시간 이상 늦게 오셔서 나 혼자 1시간 30분 가량 틀 연무를 했다. 훈련하다 눈을 다쳐서 당분간 또 도장을 쉬게 된 훠궈요정 사매가 앉아서 내 틀을 보다 한 말씀 하시었다. 어머, 진짜 꾸준히 연습하는 사람은 못 이기나봐요, 병문 씨 틀 좀 빠르고 급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동작 딱딱 끊어지고 엄청 정확해졌어요. 음, 매일 보는 안식구 눈보다 역시 가끔 보는.외간여자 눈이 정확한 것… 이 아니라 역시 전 일본대회 여성부 준우승자께 이런 말씀 들으니 황송하구만요. 사실.그동안 살 10킬로 빠질 정도로 열심히 하긴 했지.


어제 좀 무리한데다 훈련하고 늦게 자고 또 다시 집 앞에서 홀로 수련하려니 몸이 당겼다. 그래도 안할수 없으므로 천천히 주먹을 치고 발을 차면서 무겁게 엉긴 몸이 풀어지도록 충분히 연습했다. 나는 오늘 아침 홀로 훈련하면서 비록 단체는 다르지만 태권도만화의 역작, 샌프란시스코 화랑관의 마스터 이바노바를 떠올리고 있었다. 러시아계 미국인인 그녀는 젊은 시절 고려인 마스터에게 고류 태권도와 합기도를 배웠으나 외국인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완고한 일부 남성 한국인 사범들에게 배척당한다. 그나마 친분이 있던 다른 미국인 사범님이 그녀를 찾아가자, 당시 중년의 부인 마스터 이바노바는 아무도 없는 차고에 도장 간판을 걸어놓고 혼자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행복해보여 말조차 걸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날이 더웠다. 이른 아침에도 공기가 식지 않으므로 창문을 다 열어놓은들, 에어컨 끈 도장은 정말 뜨거워서 도복이 속옷마냥 흠뻑 젖을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 이 애달픈 코로나의 시대에도, 혹서와 혹한과 폭우와 폭설에도, 흙바닥과 산비탈에 전깃불은커녕 지붕 하나 없이 돗자리 한 장 깔고 태권도를 하는 전세계의 사형제 자매들이 있다. 도복을 입으면 늘 그들과 연결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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