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857일차 - 다시 한번, 태권도의 고민, 그리고 삶의 고민

by Aner병문

비록 생활용품으로 쓰이는 첨단 전자장비를 다루는 일이 결코 내게 익숙한 일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붙임성과 가장으로서의 절박함(?!)으로 그럭저럭 회사에서 잘 적응하고 승진도 객관적으로 빨리 한, 한 해였다고 생각했는데, 엊그제 회사에서 정말 맵게 혼났다. 1시간 30분 동안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질책과 질타를 당했으며, 군대 이후로 오랜만에, 나이 마흔을 앞두고 사무실에서 눈물이 질질 흘렀다. 각종 무공을 20년 가까이 익혔으나, 실상 나는 아직도 심약하고 여리고 나약한 사내에 지나지 않아서, 팀장님 또한 마음이 언짢았는지 주마가편(走馬加鞭) 식으로 더 잘되라고 이런거다, 라는 말씀으로 마무리하긴 했으나, 그 분의 말은 오래 남았다. 내 스스로 잘못한 일이기도 했거니와, 승진을 하고 나서도 업무 절차가 왜 진행되는지, 이 절차가 왜 있는지는 생각해봤냐는 말씀이 부끄러웠다. 내 스스로도 사실 직장인답게 하루의 업무를 처리하는데 바빴을 뿐, 업무의 근원을 고민해본 일은 없었다. 나는 적은 나이가 아니고 더이상 이 회사 저 회사를 전전하기에도 지쳤다. 그러므로 내게 맡겨진 업무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사실은, 아프게 다가왔다.



이상하게도 어제도 오늘도 사범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다. 오랜 연휴가 끝나고 북적이던 도장에서(중앙도장은 방역 수칙을 안전하게 지킵니다.) 내 틀 연무를 보시던 사범님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좋아지긴 했는데, 이제 유단자가 되었으니 세부 사항을 고쳐야지, 혹시 그 동작이 어떤 동작인지 알고 있어? 고민해봤나? 으악, 태권도도 고민없이 했다는 질타이신가. 생각해보니 퇴계 틀이나 광개 틀에 나오는 손끝높은데뚫기 는 걷는서기가 아니고 그보다 중심을 낮추는 낮게 서기였고, 중근 틀의 눌러막기 의 눌러막는 손의 위치는 명치께였으며, 충무 틀의 안막기는 팔이 비스듬하게 비틀리는 것이 아니고 똑바로 서는 것이었다. 결국 그 동작들의 정확한 용도를 몰랐기 때문에 무턱대고 배운 동작들의 반복 연무는 7년 동안 내 몸에 마음대로 바뀌어 다르게 배게 된 셈이다. 나도 나였지만, 근무 끝나고 시간을 어렵게 쪼개어 찾아오는 밥 잘하는 유진이의 허탈함 또한 대단했던 모양으로, 밥 잘하는 유진이는 새삼 더욱 열심히 하겠다며, 수련이 끝난 시간에 태권도백과사전을 나와 함게 들여다보며 서기 자세부터 꼼꼼하게 확인하였다.



오늘 사범님께서는 내 발차기를 보시고, 오래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분명 몇 단계 넘어서고 달라진 것이 있다고 칭찬하셨다. 유단자가 되더니 동작의 이해도가 확실히 달라졌다고도 하셨다. 요즘 나는 그토록 힘들어하던 어려운 발차기들을 연습하고 있다. 틀은 동작들을 쪼개어 정확히, 그리고 크고 시원하게 하도록 연습하고 있다. 삶의 고민들도 이처럼 뭔가 분해해가며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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