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

by Aner병문

그 유명한 박흥용 화백의 소쩍이 운다, 는 조선 효종 이후 시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봉림대군 시절부터 신산한 고생을 겪으며 청나라에 대한 복수심을 키우던 효종은 북벌을 위해 나라의 경제를 안정시키고 무과를 대대적으로 늘려 무인들을 준비코자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명하며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사상적으로는 소중화 사상을 지지하며 반청복명 反靑復明을 외치던 송시열이 있었고, 경제적으로는 70의 나이에도 자진은퇴(조선 시대에는 늙은 신하가 스스로 겸양하여 관직에 물러나는 예의가 있었는데 이를 치사 致仕 라고 한다.)는커녕 셈에 밝았던 정승 김육이 있었고, 장군으로는 비록 촉 없는 화살이었을망정 수없이 날아오는데도 이미 몸 속에 갑옷을 받쳐입어 담대하게 왕 앞에 몸을 나설 수 있었다는 장군 이완이 있었으나 효종이 죽은 뒤 예송논쟁 등 각종 논란이 일며, 무과에 급제한 무인들은 하릴없는 시정잡배로 전락한다. 마치 아무리 '스펙을 키워도' 취업하기 힘든 요즘 젊은이들처럼, 한 자루 칼을 비껴차고 청운의 꿈을 품었던 무인들은, 잘 되어봐야 벼슬아치들의 호위관, 사병, 암살자들이 되거나 그나마 땅을 일구고 주막을 경영하며, 보통은 산적, 도적, 살인마들이 되어 세상을 어지럽힌다. 고전적인 그림체로 이름난 박흥용 화백답게 그는 조선 중기의 사회를 정갈하고 섬세하게 그려내는데, 오늘 본 이야기가 유독 마음에 남는다. 조강지처 糟糠之妻 라는 말처럼, 무인이 된 남편을 위해 가산을 다 팔아 칼을 마련해주고, 북방의 업무에도 따라가 보필하며, 봉림대군을 호위하러 간 남편을 말없이 기다리다 떠난 아내가 먼저 병으로 떠나자, 늙은 무인은 바위처럼 아내만을 바라보며 살겠다는 삶을 지키고, 첩 하나 없이 젊은 시절 아내와 사랑을 맹세하던 바위가 보이는 집에서 아내를 그리워할뿐 이다.



모처럼 쉬는 오늘, 아내는 요즘 갑자기 늘어난 업무와 훈련량으로 뭉친 내 몸을 정성껏 주무르고 비벼주고, 포천에서 곽 선생이 보낸 호랑이냉면을 풀어다가 정성껏 만들어주었다. 늘 내가 걱정없이 회사를 다니고, 도장을 다니고, 책 몇 줄이라도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내가 늘 나를 잘 돌봐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부자께서는, 가족과 함께 사는 방식을 확대하면 곧 사회에서 모두가 어울려 사는 방식과 같고, 타인을 대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정돈해야하므로, 이른바 수신제가치국평천하 라고 하셨다. 내가 어찌 아내 곁에 없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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