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삶의 평안함에 대하여.
그러므로 다시 한번, 타이모의 말을 떠올린다.충분한 난폭함이 있다면 네 삶을 시련으로 만들어라. 고작해야 제국의 수교위에 지나지 않는 니어엘 헨로의 계략에 빠져 하루종일 물을 뿜는 살수차에 쫓겨다니고, 철의 침묵으로 이어진 평생의 동료 아실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으며, 밤새 차가운 산바람을 맞으며 어디에 물웅덩이가 있는지 알 수 없어 긴장한 채 하룻밤을 보내야 했던 황제암살자 지멘도 그 때 그녀의 말을 떠올렸었다. 이영도가 마련한 환상 세계 속에서의 레콘은, 겉모습은 커다란 닭처럼 생겨 두 발로 하늘을 날듯 뛰고, 날개 같은 손으로 바위를 뽑아 던지는, 그야말로 역발산 기개세의 거인 종족이지만, 안타깝게도 물보다 무거운 몸을 지녀 어디든 빠지기만 하면 떠오르지 못하고 가라앉는다. 덕분에 레콘은, 대륙을 횡행하는 네 선민 종족 중에 가장 힘이 세고, 빠르고 날렵하게 뛸 수 있지만, 그 커다랗고 무거운 몸 때문에 함부로 몸이 젖거나 물을 마시기조차 어려워하는 심각한 공수증(恐水症)을 앓는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전사요, 혼자서도 능히 국가 하나를 대적한다는,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오만한 거인 레콘들이 쥐딤 대학에 모인 이유는, 이미 국가의 체계를 갖춘 제국으로부터 뛰쳐나온 레콘만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타이모의 분리주의를 듣고 공감했기 때문이다. 별철을 벼린 무기를 평생의 친구로 삼고, 그 무기를 도로 최후의 대장간에 보내 모든 은원을 정리하고 더이상 싸우지 않을 것을 맹세해야 비로소 노인으로 인정받는다는 레콘들에게 갑작스럽게 다가온 제국이라는 체계, 또 그 제국에서 뛰쳐나와 다시 레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부르짖는 타이모의 강연은 어땠을까. 레콘에게는 성(姓)이 없다. 오로지 그 무기와 투지만이 존재를 증거한다. 타이모의 난이 있고 난 후, 지멘은 아실과 함께 황제를 암살키 위해 가장 가까운 거리까지 침투했던 영웅임에도, 그 위대한 모습을 되찾지 못한 채, 물웅덩이로 가득한 산 정상에서 오로지 타이모의 말만을 떠올리고, 또 반문하기를 반복한다. 충분한 난폭함이 있다면, 네 삶을 시련으로 만들어라. 왜 그래야 합니까, 타이모,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해서 어쩌자는 겁니까?
어떤 사람이 때때로 대단히 예민하다면, 바로 그 지점이 그에게 가장 여린 상처였기 때문이었을 터이다. 육십 평생을 날카롭게 살아오신 어머니가 살아오신 흔적을 온전히 듣고나서야 비로소 마흔을 앞둔 나 역시 조금은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마저도 어머니가 열에 한둘은 접어놓은 채 펼치신 얘기였겠지만, 삼십몇년 만에 듣는 이야기의 자락만으로도, 조금 더 일찍 어머니를 알았더라면 서로 주고받는 상처가 적었을까 못내 아쉽다. 제국으로 통일되기 이전, 여러 왕국과 변경백령과 토후들의 영지들이 대확장 전쟁으로 전란에 휩싸일때조차 레콘들은 심드렁하다 할 정도로 철저히 개인으로 남기를 고집했지만, 그런 그들의 여유조차 물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 가장 강한 레콘으로 칭송받는 티나한조차 물 이야기만 들어도 숲을 망가뜨리며 도망친다. 그러므로 가장 온유하고 부드러우며 많은 인문서적과 무협지에서 본받도록 칭송받는 물이 레콘에게는 오히려 삶을 제멋대로 망치는, 끔찍한 불청객일 뿐이다. 바슐라르는 물과 꿈에서 아주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물에 대해 말한다. 레콘에게도 물이 그 어떤 용보다 더 두렵고 난폭할 것이다.
불청객은 늘 두렵고 난폭하다. 그릇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소유를 알았고, 문이 생기면서 낯선 것을 경계하고 적대할 줄 알게 되었다. 요즘에는 이사오거나 아기를 낳았다고 떡을 돌리는 풍습조차 보기 어렵다. 문 밖에 누가 올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문 밖에 카메라를 달고, 문고리에서 전자 잠금쇠를 채운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아예 찾아올 사람들이 거의 없게끔 만든다. 경계 바깥에 구태여 마음을 주지 않고 안에서만 잘 살겠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 전 만리장성을 쌓았던 중국인들도 했었다. 그래도 이민족들은 찾아와서 함부로 성을 넘었다. 제아무리 문을 굳게 걸어 잠가도 아무때나 누르는 벨 소리는 또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제는 아예 건물 바깥 현관에도 비밀번호를 만드는 형국이다. 상처와 두려움이 많은, 평범한 소시민들을 탓할 일도 못 된다. 물론 강신주 선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받지 않는 완전무결한 소통을 꿈꾸며, 틀에 박힌 삶 안에서 손가락만 놀리는 현재의 SNS를 강하게 비판하긴 했었다.
나는 이십대까지는, 젊은 날의 외수 선생님처럼 오는 이 막지 않고 가는 이 잡지 아니하였다. 외로움에 목이 말라서 누구든 청했고, 또 누구든 틈이 보이면 비집고 들어갔다. 지금보다 젊으셨던 그 분의 집은, 사방으로 훤히 트여 보기 좋았는데, 마을 사람들 누구나 볼 수 있었고, 놀러갈 수 있었다. 그 앞에 오는 사람이 병문 씨인가, 하였을때 외수 선생님은 식객 몇은 거두어먹이는 능히 이 시대의 맹상군 같았다. 나는 그 전만 해도, 황금비늘 이후로 점점 밋밋해져가는 선생님의 글을 읽어가며, 독자로서 한 번 질타해보리라 마음먹었는데, 막상 보니 한 마디도 제대로 못 하고, 선생님 앞에서 재롱 피우며 술만 실컷 마시다 왔다. 그때가 내 나이 스물서넛, 한참 강원도의 전투경찰로 세월을 보낼 때였다. 차현 형님은, 학생 시절 박범신 선생을 본 기억을 소설의 문장으로 옮겼다. 자신의 글 하나만으로 성 하나를 구축한 인자한 성주 같았다고 했다. 평생 단련한 이의 몸에서 품격이 나오듯, 글을 써온 이의 정신은 능히 상대를 감화하는 법이다. 그러나 나는 입으로만 글을 쓴다 하고, 눈으로만 읽어대어서, 상대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고 내 외로움만 우겨가며 상대에게 상처를 입혔다. 정말로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었다. 나는 레콘처럼 거만하고 오만했지만, 그렇다고 그처럼 대단한 힘이나 재주도 없었다. 나는 늘 여러 사람을 속여오며 나만을 강요했었다.
서른이 넘으면서 그러한 성향이 바뀌니 참말 신기한 일이다. 뻔뻔하게도, 이제는 내가 그런 사람이 싫어 자꾸만 두문불출한다. 한때는 십수 명 되는 사람들 몰아다가 생일 잔치하고, 밤마다 술 퍼먹으면서 놀고, 술 깨면 운동하다 책 읽고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여러 굴곡을 겪으며 정말 싫어져버리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인간 관계가 좁아지고 아는 이들도 많지 않게 되었다. 나도 요즘은 만리장성 속 중국인들마냥, 안락한 가정에 위안받고, 가끔 나들이하여 말 통하는 벗들과 문경지우 백아절현 이야기나 하며 술 퍼마시다 오는게 낙일 뿐이다. 그러므로 옛날의 나처럼 누군가가 갑작스럽게 내 삶에 침범해 들어와 하루를 헝클어뜨리며, 옛날의 내가 이토록 천박하고 무례하고 참담했던가 싶어 입맛이 쓰다. 오래 알고 지낸 공수표 씨는 너는 어쩜 그렇게 변할수 있니,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성숙해지니, 하고 반 놀리듯 말하였지만, 나는 아직도 휴대전화 하나 사는데 지인에게 속된말로 60만원씩 눈탱이를 얻어맞는 바보 멍청이다. 그러므로 나는 요즘 말로 힘숨찐이 아니라, 그저 이제 삶에 지치고 겁을 먹어 스스로 이빨과 발톱을 뽑은 늙은 살쾡이에 가깝다. 그 말을 하고 싶었다. 요즘은 외부의 자극이 올 때마다, 하루의 끝에 처자식이 있어 위안받는 사실에 감격하고 있다. 또한, 이십대 때 그토록 내가 천박하고 거칠고 무례했음에도, 내 곁을 지켜주고 있는 소중한 벗들에게 감사한다. 내 딸은, 크면서 스승으로 본을 받는 이들이 참말 많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