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제2차 人감-도장 협상의 결말 - 심기일전! ㅠㅠ

by Aner병문

어머니가 내 다친 어깨를 꼭 ㅅ병원에서 보이라 하는 이유는 다 있었다. 내가 오래 전 군대에서 다친 발목을 그대로 묵히다 주짓수로 끝내 수술을 하게 되었을 때, 당시 우리 가족이 철석같이 믿던 고대 구로병원에서는, 다른 건 몰라도 관절내시경 수술은 ㅅ병원이 우리보다 낫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그 병원보다 잘하는데 없을걸요, 강력히 추천해주었다. 당시 ㅅ병원은 우리 집에서 훨씬 가깝다는 이점이 있었으나, 지은지 얼마 안된 작은 병원이라 그렇게 좋은 병원인가 어머니와 내가 모두 반신반의하던 생각이 난다. 막상 가보니 병원 시설이 깔끔하고 좋았고, 밥도 맛있었으며, 무엇보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간다는 기술은 둘째치고도, 인품이 정말 훌륭하시었다. 어머니도 한 수 접어주는 부드러운 언변에, 쉬는 날에도 사복을 입고 한두번씩 들르며 환자들의 용태를 살피는 모습이 정말이지 드라마 속 명의 그 자체시었다. 어머니는 등산하다, 동생은 술 먹고 노래방 계단에서 고꾸라져서, 우리 세 명은 같은 선생님께 동일한 부위의 동일한 수술을 모두 받았고, 그래서 선생님께서 만날 때마다 가족은 가족인가보다고 놀리셨던 기억이 있다. 여하튼 내 어깨는 이른바 로컬 병원에서 내 팔뚝만한 주사를 백만원어치씩 맞아가며 겨우 고쳤는데, 아이를 안는 두 달만에 똑같이 고장나버려서, 결국 ㅅ병원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도 예약이 꽉 차 2주를 기다려야 했는데, 거기서 또 여동생을 봐서 어이가 없었고, 선생님조차 아니 어떻게 이 집안은 가족 아니랄까봐 어머님, 아드님, 여동생이 또 똑같은 부위를 똑같이 다쳐서 옵니까? 하고 반문하실 정도였다. 네? 하고 되물으니, 방금 여동생 나간 건 보셨을거고, 어머님도 똑같은 부위로 다음주에 예약 잡혀 계세요. 아이고, 맙소사, 젊었을 적 연습시합에서 암 바로 팔꿈치 인대가 나가던 날에, 어머니도 도배를 하시다 의자에서 떨어지며 손을 잘못 짚어 팔꿈치가 그대로 부러지셨던 날이 생각났다. 어쩔 수 없는 천륜은 천륜인가.



여하튼 오랜만에 뵙는 선생님은, 보자마자 잔말씀을 시작하셨다 .아이고, 살 많이 찌셨네, 안 그래도 어머님이 운동 많이 하다가 자꾸 다친다고 걱정하시던데, 인제 애도 생기고 그러셨으니 권투, 태권도 그런 운동 그만하시고, 산 다니시고 그런 걸로 살 빼셔야지. 말투만 서울말이지 어머니가 평소 하시던 말씀 그대로였다. 그래도 오래 전 수술 발목의 안부를 아직도 물어봐주셔서 고마웠다. 내 옛날 발목 사진에는 아직도 예수님마냥 선명하게 못 자국이 박혀 있었다. 발목은 좀 어때요? 비 오고 날 궂지만 않으면 쓸만합니다, 근데 눈비 오거나 몸 많이 쓰는 날에는 저릿저릿해요. 어쩔 수 없어요, 그런 운동 계속 하시면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고, 아, 무릎 연골도 좋지 않으셨지, 무릎이랑 발목에서 충격을 다 흡수 못하니까 고스란히 발바닥으로 가서 족저근막염도 더 잘생기고 그러는거예요, 살 빼시면 부담이 덜할 거예요, 영양제 처방해드릴테니까 아침에 한 번씩만 먹어봐요, 훨씬 덜할 거예요. 그러니까 살 빼려고 운동을 하는데, 운동을 못 하도록 아프니 문제 아닙니까, 내가 괜히 볼멘소리로 입술을 삐죽여도 선생님은 생글생글 웃으셨다. 그러니까 어머님 말씀처럼 사람 집어던지고 때리는 운동 고만하시고, 다른 운동 하시라니까, 흐흐, 그나저나 아픈 어깨가 여긴가요? 하고 뒤로 슥 돌아가셔서 딱 짚으시는데, 그 순간 내 머리에서 천둥벼락이 꽈르릉, 태권도고 뭐고, 선생니마아아아악! 하고 앞으로 풀썩 쓰러졌다. 회전근개랑 힘줄 나간거네, 뭐, 찍어봐야 알겠지만 아주 전형적인 권투 선수식 손상일 거예요, 자, 일단 엑스레이랑 초음파 찍고 다시 와봅시다. 토요일 아침 일찍밖에 예약 시간이 비지 않다고 했지만, 예전보다 더욱 확장하여 올린 건물에는 사람이 정말이지 5일장마냥 바글바글했다. 한참을 기다려 다시 촬영을 하고 오니 선생님은 또 빙글빙글 웃으시었다. 뭐, 정확하네요. 일단 3개월 잡읍시다, 오늘은 충격파 요법이랑 운동 치료법 알려드릴거예요, 운동하시던 분이니까 운동요법의 중요성 잘 아실텐데, 제가 오늘 살 뺴라고 말씀드렸다고 해서 무리하게 몸 쓰시면 안됩니다, 특히 어깨에 체중을 싣거나 과하게 꺾이는 움직임 절대 안돼요, 가장 중요한건, 힘줄과 인대는 이런식으로 손상이 자주 가면 재건이 참 어려워요, 다행히도 수술을 할 정도는 아니지만, 단계적으로 운동을 통해서 근육을 붙여서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보강하는 방법이 가장 좋으니까, 몸 좀 오래오래 아껴가며 씁시다, 애 아버지가 이제, 응? 아니, 누가 들으면 내가 무슨 엄청난 프로 선수라도 되는 줄 알겠네.



발목의 인대 재건수술을 받을 때부터 나는 소위 그 따다다다다~ 하는 딱따구리 소리가 나는 충격파 요법이 정말 싫었다. 살도 얼마 없는 복사뼈 부근에, 기관총마냥 수선을 떠는 절굿공이 같은 기계를 가져다대는데, 내 생전 그렇게 아픈 기계는 처음 봤다. 택견을 시작하면서, 난생 처음 다리를 찢었을 때에도,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바닥으로 빼서 골반을 열 때에도 그렇게 아프지는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차가운 얼음칼을 뼛속에 쑤셔넣고 마구 휘젓는 느낌이랄까, 어찌나 아픈지 뒤통수까지 고통이 뻐근하게 올라온다. 일정한 진동을 가하는 충격파 요법으로, 몸 안의 괴사하는 조직들을 제거하고, 세포를 자극해주어 몸이 빨리 낫는다고는 하지만, 나는 발목 수술을 받을 때에도 족저근막염으로 고생할 때에도 정말이지 이 충격파 요법이 싫었다. 또 신기한 것이, 아프지 않은 부위에 갖다대면 그냥 아무 느낌없는 진동에 지나지 않지만, 내가 아픈 부위에만 가져다대면 뒤통수까지 잔인하게 후벼대는 고통으로 변하니 끔찍하지 짝이 없었다. 그 날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첫 머리 올리는 관기마냥 덜덜 떨며 어깨를 풀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기계를 갖다대자마자 얼마나 아픈지 물리치료사 선생님께 어깨를 맡긴 채 찐새우마냥 춤을 췄다. 젊은 여선생님은 킬킬거리며, 아프시죠오~ 근데 참으셔야 돼요오~ 환자 분 몸이 많이 아파서 그래요오~ 자 이제 2분 남아따, 2분~~ 아아, 선생님, 차라리 시간이라도 말씀하지 마세요, 더 길게 느껴지잖아욧!



오전 내내 애를 보면서, 모처럼 저출산 대책 회의의 보고를 맡아 서류 작성을 하고 있던 아내도, 피골이 상접한 내 모습을 보더니 할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여보, 병원에서 뭐랍니까? ...일단 밥이나 먹게요잉. 아내도 오후 2시가 다 되도록 애 돌보며 보고서 쓰느라 밥조차 제대로 못 챙겨먹었다. 아이를 돌봐 재운 뒤에, 1시간이 걸려 주변을 뒤진 끝에, 아내가 전부터 먹고 싶어했던 떡볶이 집을 마침내 찾았다. 아내의 말에 너도 공감했듯이, 떡볶이는 여자의 소울푸드란다. 의외로 나는 가래떡에서 나는 밀가루 맛을 썩 좋아하지 않아서 떡볶이는 오뎅만 건져먹거나, 튀김이나 묻혀 먹고 마는데, 아내에게 떡볶이를 먹이며 몸의 상세도 말하고, 도장 허락도 내심 받아낼 심산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에게 몸 상태를 말해봐야 혼나기도 하고, 걱정만 할 터이므로 말하지 아니하려 했지만, 곽 선생도 그건 말도 안된다고 하고, 너는 지친 목소리로 나를 혼냈다. 생각해봐, 언니가 만약에 어디 가서 아파가지고 와, 근데 너한테 말도 안 해, 아픈 건 너도 뻔히 아는데, 그럼 너는 걱정 안할 거 같아? 엄청 하겠지. 그래, 너 그러다 진짜 어깨 못 쓴다 나중에, 몸 좀 아껴 써, 그러다 소은이 아버지 없이 큰다. .....그 정도냐?!




그리하여 난생 처음 인상 좋은 중년 부부가 만드시는 우삼겹 떡볶이를 아내에게 바치면서, 조심스럽게 몸에 대해 얘기하니 아내는 마음의 준비는 했다고 그럴 줄 알았다 했다. 오늘까지만 외식하고, 다음날부터는 번갈아가며 운동도 하고, 소은이도 백일을 곧 넘기니 퇴근길에 함께 나가 걷기도 하자고 했다. 아내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이니 나도 그럼 용기 좀 내봐야겠는걸!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딛자마자 아내에게 정말로 천둥벼락이 쳤다. 여보야, 진짜 너무합니데이, 일주일에 3일을 도장 나가겠다꼬요? 아, 아니, 그래도... 평일 저녁에 이틀, 주말 아침에 하루 일찍.. 이렇게 나가서 일 주일에 3일 정도는..(겁먹어서 서울말 나옴)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마이소! 내도 하루 종일 애 보믄서 여보야 올 시간만 손꼽아 기다리는거 뻔히 암서~ 내 펭셍 태권도할 사람한테 시집 온거 알고, 사범님이랑 여보야 사이 각별한거 내 모르는거 아닙니데이, 그래서 쪼매만 기다려달라 캤디만, 그걸 못 참고 또 이러시나, 게다가 병원에서도 운동하지 말라 캤다 아입니까? 여보야 그러다 진짜 어디 뿌라지기라도 하몬 어쩔라고요, 내 간호사 생활은 머 폼으로 한 줄 아십니까, 여보야 가끔 비올때 아파서 쩔쩔매는거 내 다 안데이, 내 진짜 말을 안 할라 캤디만! 그리고 또 뭐요? 커피 하루 2잔으로는 너무 피곤해서 맨날 집에서 애 보고 나서는 잠만 자니까 시간이 아까워서 커피 도로 여섯 잔까지는 늘려야겠다꼬요? 여보야, 내 만나기 전에 하루 여덟잔씩 커피 마시고 하루 4시간씩 잤지요? 그게 수명 깎아묵는 일이란걸 왜 모릅니까아~ 그런 식으로 해서 머 운동하고 책 읽고 하모 뭐 삶이 행복할거 같아요? 지금은 아직 젊지, 이제 마흔 넘어보소, 확 옵니데이 확, 진짜 확 마! ....찍...




아내가 정말로 서운해해서 아무 말도 못했다. 저녁은 아내가 좋아하는 굽네 치킨을 사다주고, 또 보드게임도 같이 하면서 기분을 풀었다. 물론 무던한 아내답게 화난 게 오래 가진 않았지만, 하루종일 놀리는걸 보니 정말로 서운하긴 했던 모양이다. 내 딴에는 빨리 도장으로 복귀하여 몸도 마음도 심기일전 하려 했던 것이 아내에게 그렇게 큰 부담이 될 줄 몰랐다. 아내도 늘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내 또한 내가 퇴근하고 항상 육아를 함께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풀고 나서는 몇 가지 조항을 함께 했다. 1) 도장은 1주일에 하루 로 정한다. 2) 퇴근 후 바로 아이안고 안양천 1시간씩 걷고 와서 씻긴다. 3) 저녁을 꼭 함께 먹지 않아도 되니, 번갈아가며 자전거라도 타고, 식사량을 줄이자. 4) 커피 하루 여섯 잔은 말도 안된다, 하루 세 잔까지만 허락하겠다. 정도가 되겠다. 나로서는 근 2주를 제대로 읽지도 쓰지도 않고 늘어져 있었던 터라, 차라리 병원에서의 진단이 심기일전의 계기가 될만한 일이었다. 잠시 쉬었던 영어와 일본어 공부도 계속하고 있다. 어쨌든 아내는 세븐원더스 듀얼 을 연달아 두 판, 그 것도 한 번은 점수로, 한 번은 과학 승리로(그 어렵다는 6개 문양을 모두 모았다, 미친 불가사의..ㅠㅠ) 이기시고는 으하하, 의기양양하며 잠드시었다. 그리고는 오늘 아침에 출근하니 '여보야 항상 사랑합니데이~ 내 화내서 미안하니까 이번주는 도장 2번 갔다오이소' 라고 보내셨는데, 나 이거 갔다 와도 되는 각인가?!!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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