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及不怠 - 경지에 이르지는 못해도 게으르지는 않으려 한다.
스무살때부터 몸이 망가지도록 나름의 훈련을 해왔지만 이제껏 아시아대회, 세계대회에서 동메달 이상을 넘어본 적이 없다. 세계대회-아시아대회에서 동메달이면 엄청 잘하는거 아닌가 싶겠지만, ITF는 국가별로 수준 편차가 매우 크다. 맞서기는 익히 알려진대로, 가라테나 쿠도처럼 러시아, 우즈벡, 폴란드 등의 동구권이 막강하고, 틀은 동아시아권- 한국, 일본 등이 상위권에 꼽힌다. 심판 분과 위원회가 있는 아르헨띠나는 양쪽 분야에서 모두 안정적인 강세를 보이는 전통의 강호다. 유단자들과 함께 아르헨띠나에 2주쯤 다녀오신 사범님은 그 나라의 태권도의 열기에 대해 놀랐다고 말씀하시었다. 현 아르헨띠나 ITF 회장님께서 그 나라 대통령과 막역한 친구 사이인 탓도 있겠으나, 그 이전에 아르헨띠나에서 축구 못지 않게 인기가 있는 종목이 태권도 등의 투기 종목인지라 매주마다 대회가 열리는 수준이라고 했다. 공 하나만 있으면 해질 때까지 놀 수 있다는 나라답게, 창시자님 말씀처럼 도복 한 벌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태권도나 가라테는 그들에게도 큰 매력인 모양이었다. 이제는 국내의 태권도계에서도 잘 볼 수 없는, 사범이 허락을 해주어야만 인사하고 도장에 들어오는 작은 예의조차도, 사범님께는 큰 충격으로 다가오신 모양이었다. 여하튼 그러한 나라들이 아닌 다른 나라와의 경쟁은 솔직히 별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내 동메달은 어찌 보면 운이 좋아서, 배 곯을 걱정없이 태권도를 하고, 또 좋은 사범님을 뵌 덕분에 거저 얻은 거나 다름이 없다. 이제꺼 나는 맞서기에서는 한번도 서양 선수들을 이겨보지 못했고, 틀도 언제나 번번이 우리 도장 사형제들에게 막혀 졌다. 달리 말하면 나는 늘 세계대회 상위권을 차지하는 사형제 사자매들과 함께 훈련하는 셈이다. ITF계의 청목...?!
그렇다고 학문으로 뛰어난가 하면 그도 아니다. 어렸을때부터 책을 쭉 읽고 자라왔으며, 학창시절에는일기 공모, 독후감 공모 등 써서 내는 족족 대상 금상을 휩쓸어서 개천에 난 용쯤 될 줄 알았으나, 지금은 이무기는커녕 지렁이라도 될까 싶다. 가계부를 보자니 한숨만 나와서, 부업삼아 해볼까 싶던 유튜브 대본 작가는 물론이요, 오랜만에 방송 나가 녹음 좀 해보고 싶었던 '나도작가다' 공모전도 시원하게 물을 먹었다. 솔직하게 나도작가다 공모전은 무난히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라 더욱 부끄럽다. 늘 하늘 위에 하늘이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몸에 배이지는 못하였다. 한편으로 재복(財福)이 있어 돈이나 많이 벌어 처자식 편케 해주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쁜 직장인에 지나지 않는다. 이래서야 와호장룡(臥虎藏龍)은커녕 그저 꼬리 없는 생쥐요, 부리 빠진 앵무새에 지나지 아니한다. 이렇게 재주 하나 없으니 이 풍진 세상에 처자식 하나 제대로 건사할까 싶어서 막막할 때도 있다. 천룡팔부에서 왕어언이 말하기를, 무릇 사내대장부란, 첫째란 인품과 용기를 말하고, 둘째는 재간과 사업을 논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학문과 무공의 성취를 따지는 것이므로 인물이 잘나고 못나고는 입에 올릴 필요도 없다고 했는데, 나는 인물조차 못난 것이 무엇 하나 내세울 게 없어 늘 부끄럽다. 키가 작고 대머리인데 그것을 거리끼지 않는 모습에 우리 아내는 그 모습이 좋아서 내게 시집왔다고는 하신다.
그러므로 억만재(億萬齊) 김득신의 고사를 늘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일찍이 나는 우리 자녀도 이런 끈기를 가지기를 바라서, 믿음을 가진다면 조지 뮐러 목사님을, 무공을 익힌다면 반보붕권(半步崩拳) 천하타편(天下打遍) 으로 이름을 날린 철족불(鐵足佛) 상운상 노사를, 학문을 익힌다면 바로 이 김득신 같은 이를 본받기를 원했다. 억만재 김득신의 조부는 진주대첩으로 유명한 김시민 장군이요, 그 아버지는 자미두수, 즉 점술에 능해 죽어서 염라대왕이 되었다고 알려진 김치(金緻, 1577~ 1625, 인조 때의 문인, 발효식품과는 관계없다.)다. 본시 총명했으나 어린 날에 천연두를 심하게 앓아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아 아둔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아버지 김치는 경상도 감사까지 역임하고, 명리학에 통달한 선비였지만, 김득신을 낳을 때 노자가 제 집에 찾아왔다는 태몽 이야기를 해주며 늘 아들에게 학문에 힘쓰기를 권했다. 김득신은 10살이 되어서야 겨우 글을 떼었지만, 무슨 글을 읽든지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수준이라, 여러 훈장들이 혀를 차며 그만두었다고 한다. 어찌나 아둔한지 그의 견마잡이를 하는 말구종조차도 김득신이 늘 외우는 싯구를 듣다 듣다 외울 지경이었다고 하지만, 그는 오히려 네가 내 스승이 되어야겠구나 라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기는 대장부였다. 덧붙이자면, 이 말구종이 늙어 더이상 말을 몰 수가 없자, 퇴직금조로 전답을 좀 떼어주기를 청했는데, 김득신은 평소와 다르게 아주 야멸차게 거절하더란다, 이에 상심한 늙은 종이 뒤돌아서서 나가자 그때서야 '아, 자네 아닌가? 내 매일 내 말을 몰아주는 자네 뒤통수만 보느라 앞얼굴을 잊어버렸네, 그려.' 라는 설화도 전해진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열전의 백이전만 11만 3천번을 읽었다는 김득신. 책을 억만번이나 읽었다고 하여 스스로 억만재라고 호를 지은 김득신.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시면서도 잊어버린 싯구를 떠올리려 노심초사하다 마침내 다시 떠올린 그 순간 어찌나 통쾌했던지, 고인께 올릴 제주를 훌떡 마시면서도, '아버지께서 살아 계셨다면 마땅히 이 술잔을 비운 것을 칭찬해주셨으리라' 웃었고, 부인의 상을 치를 때도 책을 읽느라 여념이 없었다는 김득신. 59세에서야 대과에 합격하여 겨우 벼슬살이를 하게 된 김득신. 그러나 이미 그의 글은 그때쯤 경지에 올라 조선 팔도에 시로 대적할 자가 없었다고 하고, 벽곡집이라는 문집을 남겼다. 김득신은 스스로 자신의 비문을 지어 남겼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득신보다 잘난 이는 세상에 수없을 것이지만, 김득신보다 노력한 이는 그 전에도 후에도 없을 것이다. 후학들아, 스스로의 재주가 모자라다 한탄치 말라. 이 어리석은 김득신도 끝내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오로지 힘쓰는 일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괜시리 나도 몇 글자 적었다. 불급불태. 미치지는 못해도, 게으르지는 않으려 한다. 근데 이미 엄청 게으른 것은 안 비밀.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