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반란, 역모의 시대 - 여러 분란을 목도하면서.
그러므로 전남대 국문과 교수이기도 한 박한실 선생은 '한국반란사' '세계반란사' 를 내며, 난을, 곧 당대의 변혁을 꿈꾸었던 저항의 역사로 규정한다. 옛부터 수없는 역사가들은 비슷한 말을 수없이 반복해왔다. 역사를 기록키 위해 다리 사이 남성까지 내주었던 사마천은, 갈고리를 훔치면 죽음을 당하지만 나라를 훔치면 왕이 된다고 말했다. 진나라를 뒤엎으려 했던 진승은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냐며 부르짖었다. 일본 근대의 양명학자이자 무사였던 오시오 헤이하치로는 엘리뜨 계급으로서의 한계를 느끼고 농민 봉기를 일으켰다 자폭하였다. 녹두장군 전봉준은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기까지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동학의 기치를 지키고자 했다. 간디와 네루는 영국의 압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물레를 잣고 바닷물로 소금을 만들며 끊임없이 투쟁했다. 틱꽝득 스님과 전태일 열사는 스스로를 불사르셨고, 박노해 시인은 하루 20시간의 노동에 시달려 졸다가 기계에 잘린 동료의 푸르딩딩한 손을 씻어 묻어주었다는 이야기를 시로 적었다
베버는 합당한 권력이 곧 권위라고 정의했다. 즉, 합당하지 않은 힘은 폭력이 된다. 그런데 베버는 또한 덧붙이기를, 국가란 폭력을 합법적으로 소유하고 행하는 유일한 조직이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국가가 행하는 진압과 전쟁은 모두 주권을 행사하는 정치적 합리성을 지닌다. 그러한 연유로 야마토 중앙 정권이 옛 오키나와에 터를 잡은 류큐 왕국을 지배하고자 사무라이들의 모든 병기를 수거할 때, 그들은 마땅히 저항하였겠지만 그 또한 합법적이었을 터이다. 무기를 빼앗긴 류큐의 모든 이들은 계급을 막론하고 손발을 돌과 나무에 쳐가며 당나라로부터 전래된 권법, 즉 당수(唐手)를 연마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손발을 무기 대신 쓰는 기술을 익혔고, 솥뚜껑과 바위, 항아리, 심지어 서로의 몸까지 던지고 받아가며 신체를 극한으로 단련시켰으며, 낫, 쇠스랑, 봉, 심지어 배 젓는 노까지도 무기삼아 카타(形)를 만들어 보급한다. 훗날 전세계에 유도, 검도와 더불어 일본의 위명을 떨치게 되는 가라테의 원류인 오키나와 테는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가라테는 말 그대로 공수(空手), 빈 손으로 자신을 지키고 뜻을 관철시키려는 역사적인 무도이며, 빈 손의 혈관 안에는 불합리한 폭력으로부터 저항하려는 정신이 강하게 깃들어 있다. 일본 근대 정부가 고류 검술로부터 태어난 검도와, 검을 빼앗겼을 때 그 방비책으로 권장되던 유술을 개량한 유도 등은 화족(和族) 들의 교양으로 널리 장려했지만, 저항으로부터 태어난 가라테만큼은 오랫동안 차별하여 일본의 대표 무도로 인정치 않았던 연유도 여기에 있다. 얄궂게도, 일본에서 유학하며 옛 일본군의 장교였던 조선인 최홍희는 바로 이 가라테를 수련하며 더욱 독립운동의 의지를 불태웠고, 광복 이후 한국군을 창설하면서 가라테를 변형한 태권도를 통해 역시 저항의 역사를 이어나간다. 그러므로 외세와 정치적 압제로 인해 갈라진 국가에서, 서로 다른 태권도를 수련한다는 것은 말조차 되지 않는 일이다. 이러한 역사는 중국에서도 다르지 않아, 불산4소룡이자 광동10걸로 꼽히며, 서극 감독 연출에 이연걸이 호연한 영화 시리즈로도 유명한 황비홍 역시 중의학의 명의자 홍가권의 대가였으며 이를 따르는 권사들을 홍문(洪門)이라 일컬었다. 그들은 반청복명(反靑復明)을 기치로 내걸고 일본과 서양 외세를 몰아내고자 홍가권을 익혔는데, 홍가권 역시 혁명 전사를 길러내고자 하는 군대식 권법이지라 내공 단련보다는 강하고 격렬한 외공 단련을 중시했다고 전해진다 .
냉병기에서 열화기의 시대로 옮겨온 지금, 우리가 익히는 격투기는 기껏해야 신체 강건을 위한 대중적인 취미처럼 보급되었지만, 실은 어느 무공에나 피와 한이 서린 저항의 역사가 있다. 나는 일찍부터 격투기란, 말로서 설득되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뜻을 관철코자 하는, 본능에 거하면서도 가장 세련된 의사 소통의 방식이라고 믿어왔었다. 상대를 착취하려면 폭력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폭력을 가하려는 이로부터 나를 지키려면 반드시 몸에 오래 익힌 기술이 필요하다. 또한 그 기술이 상대를 압제하는데 쓰인다면 그 것은 더이상 무공이나 격투기라고 부를 수 없다.
그렇다면 근대 국가의 압제는 현대에 들어서는 합법적일까? 로크와 루소는 비슷한 시대를 살면서, 국가와 개인은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라고 주창했다. 서양 외세의 침입에 의해 '강제적 근대' 를 맞이한 동양에 비해서 서양은 계급적 분화와 갈등이 훨씬 빠르게, 주체적으로 일어난 편이다. 베버와 맑스를 비롯한, 수없는 대가들이 그 원인과 추동력에 대해 논하지만, '근대란 무엇인가' 부터 전제해야 되는 복잡한 논의는 삼가하도록 하자. 네루가 그 딸에게 설명키 위한 간단한 축약을 빌려오자면, 로마-오스만 투르크가 원시적으로나마 동서양 문화의 가교 역할을 해오고, 십자군 전쟁을 통해 동양의 우수한 과학 지식들이 서양으로 전래되어 갔으며, 구텐베르크의 활자가 교회만이 독점하고 있던 지식들을 대중에게로 헐어내면서, 근대의 총아인 부르쥬아들은 막강한 재력과 지식으로 무장하여 신세계를 이끌었다. 이른바 동아시아 3국도 나름의 번영을 구가하며 높은 문화를 이룩했지만, 이미 왕의 목을 잘라가며 사회의 전반적인 변혁을 꾀했던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유럽 외세와, 그러한 영국으로부터 떨어져나와 독자적인 부를 구축하던 미국과는 이미 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흔히 근대화라고 함축되며 왜곡되는, 이른바 서양화에 강제된 근현대를 맞이하였다. 광복 이후, 우리 공간에서, 우리 말로 우리 식의 사유를 하는 철학자가 거의 부재하다는 강신주 선생의 지적은 뼈가 찢어지도록 옳다. 지금은 철학이라고 하면 누구나 대부분 서양의 것을 생각한다. 하물며 생활 방식은 이미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일단 국가의 '명령' 이라면 따르고 존중하는, 기본적인 국민성은 정말이지 한국, 아니 동양 고유의 미덕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다. 우리 나라에서는 지금도 혼란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외신에서는 한국이 코로나에 대처하는 방식이 아주 선진적이라고 평가하며, 징병제 국가이자 마지막 분단 휴전국으로서, 국민이 바치는 국가에 대한 신뢰가 아주 높다는 점을 근거로 꼽았다. 나로서는, 국가란 개인이나 민간 사업이 할 수 없는 공공서비스의 제공자이자, 개인이 모인 공동체이므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 정도로' 국가를 존중하면 헌신하면, 그게 곧 충(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즉, 국가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이 아니라, 나를 비롯한 이웃들과의 공동체로서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의 근간을 흔드는 '난' 이 현 시점으로 세상 곳곳에서 발생할 때, 맑시스트로서의 네루의 역사관은 한계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 여전히 계급적 갈등이 남아 맑스의 위대함을 알게 해주는구나 몸서리치게 된다. 여러 번 인용했지만, 맑스는 결국 잉여로 인한 경제적 분란이 계급을 낳아 모든 분열의 시초가 된다고 보았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 에서 미소 냉전이 종식되며 더는 대규모의 무력 충돌이 없을거라고 말했지만, 천만의 말씀, 문명의 충돌/문명 내의 충돌을 떠나 쉼없는 갈등과 내전은 계속되어 오고 있다. 동양에만 순혈 민족주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서양에도 국경을 나누고 통제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이미 근대 초부터 민족주의 사상이 중시 되었는데, 그러므로 굽시니스트 김선웅의 지적처럼, 내전은 같은 공동체를 이루던 이들에게 분열을 강제함으로써 더욱 큰 비극을 맞게 한다. 내전의 이유는, 지금 홍콩에서, 또 미국에서, 그 이전의 아프리카 등에서 보는 것처럼 익숙하리만치 다양하다. 정치적 견해가 맞지 않아서, 인종이 달라서, 너무 가진게 달라서, 서로 다른 신을 믿어서, 태어난 성별이 달라서- 분열할 이유가 이리도 많은 것이다. 따라서 현대 신유학은 다시 천륜(天倫)으로 회귀하여, 차라리 같은 핏줄을 타고난 가족끼리 잘 뭉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에 기반한 여러 중국 재벌들이 가족 중심의 경영을 중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모택동은 공산정부를 이룩하기 위해 청춘을 바쳤다. 젊어서부터 장개석이 이끄는 국민당의 추격을 피해, 낮에는 걷고 밤에는 글을 썼다고 하는데, 그 유명한 대장정으로부터 태어난 역작이 모순론이다. 모택동이 이끄는 공산군은 대장정을 끝내고 국민군을 격파해 장개석을 대만으로 패주하게끔 했으며, 모택동이 저술한 모순론은 쌍용 노조원들의 필수 교재였을 정도로, 이른바 '운동' 하는 이에게는 공산당 선언과 더불어 누구나 한번쯤 읽어봤을 책이다. 이 장절한 논문을 아주 간단하게 축약하자면 세상에는 큰 모순과 작은 모순이 있는데, 큰 모순을 해결하면 작은 모순은 자연스럽게 해결된다는 이야기다. 모택동이 보기에 세상을 주름잡는 큰 모순은 제국주의자들이 저발전 국가를 억제하는, 경제적-정치적 역학 모순이었다. 그러한 모순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의 인민들은 늘 굶주렸던 것이다. 덧붙이자면, 모두가 알고 있듯이, 이 사람은 훗날 손가락 하나로 어마어마한 실책을 저지르게 된다. 난 지금도 그 참새가 왜 하필 모택동의 눈에 띄었을까, 안타깝기 짝이 없다.
다시 박한실 선생의 말로 돌아와, 그러므로 난은 당연히 거칠고 피폐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좌파니 우파니, 진보니 보수니 하는 가름 자체를 올바른 기준으로 인정할 수 없듯이, 국내외에 폭풍처럼 몰아치는 페미니즘, 특히 래디컬 페미니즘이라 일컬어지는 흐름이 정말로 '복수' 를 위한 것이라면 용인되지 않음이 마땅하다. 다만 그와 별개로, 비주류 세력이 사회에 자신의 의견을 관철키 위해 어느 정도의 거친 반향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주류 세력이 동의하고 수용하는 선 안에서의 의견 제시는 의미가 없다. 얼마나 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통해 똑같은 훈구대신으로 착취를 일삼았고,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끝내 자본가가 되어 역시 부를 물려주며, 얼마나 많은 재야 정치인들이 그렇게 늙은 퇴물이 되었는가? 심지어 위안부 운동을 자처했던 이들도 30년 동안 부정축재의 의혹을 밝히려 하지 않고, 여성들의 지지를 받던 여성들도 또다른 소수 성별을 포용하는데는 인색하다. 송곳의 구고신이 꼬집듯, 자기 자리가 바뀌면 보는 풍경도 바뀌는 이가 사람이다. '누구나 수용할만한 온건한 방식으로' 상부 구조를 노려왔던 이들은 그렇게 변절하고 변모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변하지 않을, 요절한 이들으 상징으로 삼아 그리워하고 추모하고 숭배한다. 따라서 반란이란 원래 상식을 깨는 것이고, 보기에 마땅히 거칠고, 받아들이기에 마땅히 섬뜩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선을 넘지 않고서는, 귀를 막은 이들의 마음까지, 처절한 외침이 들릴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실 어제 좀 울었다. 마음이 먹먹해서 울었다. 한 백인 경찰이 한 흑인을 법을 핑계삼아 무참히 죽였다. 그래서 그 도시는 성난 흑인들의 시위로 뒤덮였다. 또 그 시위를 핑계삼고 혼란을 틈타, 물건을 훔치고 사람을 때리는 이들이 있었다. 홍위병의 난이 그랬고, 우리들의 촛불 시위에도 일부 그런 이들이 있었듯이, 젊고 순수한 흑인 소년들도 무장하여 거리로 나왔을때, 할아버지 연배의 어른은 그 소년들을 응원하고 나섰고, 그보다 조금 젊은 아버지 연배의 청년은 그 소년들을 막아섰다. 어르신은, 다시 한번 권리를 찾던 그 때처럼 흑인들이 모두 들고 일어서야 한다고 했고, 그보다 젊은 아버지뻘 사내는, 그렇게 해서 얻은 것이 없고 오히려 흑인에 대한 편견만이 돌아왔다고, 아직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은 너희들은 제발 다른 길을 찾아달라고 설득했다. 그 3대의 논쟁이 정말 치열하고 마음에 와닿아서, 나는 돌아오는 퇴근길에 조금 울었다. 흑인도 아닌데 그렇게 울었다. 인종은 달라도, 나도 사람이라서 그랬나보다. 나이가 다른 3대의 흑인도, 스스로 흑인으로서 살아오며 생각한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총을 들고 떨쳐 일어난 가장 후대의 젊은이에게, 각자의 가르침을 전수하고자 한 것이다. 말하는 바는 달라도, 가려고자 하는 뜻은 같았다. 영어가 다 들리지는 않았어도, 그 마음이 참말 좋고 넘치게 와닿아서 울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저 먼 나라의 도시에서, 성난 흑인 시위대가 백인 경찰을 폭행하려 할 때 그를 막아선 또다른 흑인 시위대의 사진이 회자되고 있다. 모든 것을 약탈당한 상점을 묵묵히 청소하는 이들도 있다. 과격한 시위만이 강조되지만, 바로 그 경찰이 흑인을 죽이는, 한쪽 무릎을 꿇는 자세로, 서로를 마주보며 추모하는, 따뜻한 양상의 사진도 많이 보았다. 맹자가 말한 선의 본성- 사단(四端)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조슈아 웡은 약관의 나이에, 전세계 사람들이 홍콩의 민주주의를 지켜주기 바라면서 오늘도 길거리를 뛰어다닌다. 나는 내 가정 하나도 건사하기 힘들어서 눈치를 보며 회사를 다니고, 혹시나 올해는 인원 감축이 있지 않나 마음을 졸이는 필부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꽃처럼 흔들리는 마음이 있어서, 부족한 앎과 거친 글로, 몇 마디 적었다. 적어도, 우리 모두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므로 사람으로 죽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