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번외편 - 자전거를 삐거덕삐거덕.
김훈 선생이 자신이 타는 자전거에 풍륜(風輪)이라는 이름까지 붙여가며 전국을 유랑하는 자전거 애호가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글에도 나오듯, 김훈 선생은 단골 냉면집에서 연하게 우린 육수를 받아다 옆구리에 질러차고 혈맥처럼 뻗은 우리 나라의 도로를 누볐다고 했다. 북촌 시절, 가끔 성벽을 쌓은듯한 우람한 고택에 배달나가야할 일도 종종 있었는데, 운전이 서투니 자전거라도 타며 북촌 오르막을 쉭쉭 오르곤 했다. 재차 말하지만 하루 3만 보씩 걸으며 물건을 나르고, 팔고, 또 도장으로 돌아가 4시간씩 수련하던 시절이었다. 내 허벅지를 터뜨릴듯한 오르막을 함께 달리던 자전거에 김훈 선생을 본받아 '풍' 자 돌림으로 이름을 붙이려 할 때, 당시 매장 누님들은 까르륵 웃으며 농을 거셨다. 풍 자가 꼭 들어가야 헌다고? 글믄 병문 씨 이름자 띠어서 병풍 으뗘, 병풍. ...네? 북촌을 누빌겅게 북풍은 어뜬가? ..아니, 그건 좀 정치적으로... 야, 너 머리도 없어가지고 스님 같으니까 중풍해 , 중풍. ..그만들 하세욧!!
백일상 준비를 하시느라 분주했던 이틀이 지나고, 아내와 나 둘만 있게 되자 비로소 조용하여 안심이 되었는지 아이는 젖병을 빨다 말고 금세 잠이 들었다. 날이 지기도 전에 깊게 잠든 날은 어제가 처음이었다. 조금씩 조금씨 자는 시간이 늘어나고, 잠드는 시간이 일러지기 시작하더니 이제 하루 예닐곱 시간은 깨지 않고 푹 자기도 예사이니, 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와 2시간에 한번씩 앵앵 울어 진땀 나던 때가 벌써 아득하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아내나 나나 생활의 큰 변동이 없는 사람이라, 아이도 매일 보고 겪던 하루에서 벗어나면 아무래도 낯선지 손발을 바동대며 울었으나,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원래 매일 적응과 변하의 연속이므로, 아이가 어서 빨리 좀 더 커주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다. 아이는 잠자리가 바뀌어도 울었고, 분유가 바뀌어도 울었고, 심지어 젖병이나 공갈젖꼭지의 형태가 바뀌어도 울었다. 요즘에는 뱃구레가 많이 커져서 한번에 200mm 먹기도 예사인지라 먹는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대용량 젖병을 새로 주문했더니, 그 또한 낯선지 한참을 바동거리면서 먹다가 잠들곤 한다. 아마 이 젖병에도 익숙해지면 또 예전보다 더욱 빨리 잠들 수도 있을 터이다.
여하튼 아이가 처음으로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잠든 저녁, 아내는 한시간이라도 더 아이가 일찍 자주니 삶의 질이 달라진다며 좋아하였다. 회사 누님께 말씀하시길, 안쓰는 휴대전화 공기계를 CCTV처럼 사용하여 내 휴대전화와 연결해주는 앱이 있는데, 요즘 젊은 신혼부부들은 다 이 앱을 사용하며 집 밖에서 산책도 하고 소주도 한 잔씩 한다고, 병문 씨도 아직도 모르냐고 반문하시었다. 아내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구태여 쓸 필요가 없다고 여겨서 나한테는 말을 아니 했다고 했다. 내 처녀 적에 그런 애기 엄마 봤그등요, 삼겹살 무러 갔는데, 애기 엄마 둘이 서로 애 양쪽에 놓고 자기들은 고기 꾸브면서 소주 묵고 있는기라. 아따, 좋네요잉.(나도 모르게 나온 진심) 좋긴 머가 좋십니까, 애 엄마가 그라믄 안되지예, 내는 술을 못 해가 그란지 몰라도, 불 옆에 한두살 묵은 애기 놓은 것도 영 마땅찮고, 아이고, 애 업을 엄마들이 술이라니 안된다 아입니까, CCTV 있다 치더래도, 거까지 갈 동안 애는 막 울어제낄끼고, 그럼 그 동안은 또 누가 돌본다 말입니까, 내는 불안해가 그래 몬 살지, 우리 집에서는 말또 안되는 일입니데이~ 나도 어디 가서 꽤 뒤떨어지고 고루한 사람 소리 듣는 축이지만, 정말 아직도 한참 젊은 우리 아내에겐 당해낼 도리가 없다. 그래서 그냥, 아이고, 그 엄마들도 술 한 잔 걸칠라고 을마나 참았겠는가, 그 사람들도 고로웠을(괴로웠을) 것이네~ 하고 말았다.
그러므로 아이가 모처럼 일찍 잠이 들었으므로, 또 아내와 보드게임을 한 판 한 다음, 나는 모처럼 아내와 번갈아 실내 자전거를 타고 재활 운동을 하고 태권도의 기술 몇 가지를 써보았다. 실내 자전거래봐야 모두가 아닌 조립식이고, 재활 운동이래봐야 유도할 때 쓰는 스포츠 밴드를 발로 밟아 이래저래 당기고 미는 일이었으며, 태권도의 기술이래봐야 모두가 다 아는 추켜막기, 안막기, 바깥막기, 찌르기 등의 동작이었다. 왼쪽 어깨가 시큰시큰하여 많은 기술을 쓸 수 없었다. 만약 8월이 될때까지 왼쪽 어깨를 계속 쓰지 못한다면, 2단 승단을 도와줄 때는 부득이하게 오른팔을 대신해서 써야 한다. 온 몸에 군살이 붙고 근육이 짧게 줄어들어 하프 스쿼트도 스무개 정도 하니 허덕허덕 숨이 턱에 닿았다. 예전에는 백 개 이백 개도 문제 없었던 하프 스쿼트다. 그래도 몸처럼 땀을 내니 좋았다. 서양골동양과자점의 막내로 들어온 링 위의 쟈니즈- 칸다 에이지는 망막박리로 프로 권투 면허를 반납하고 훌륭한 케이크 기술자가 되고자 노력하지만, 그래도 과거를 잊지 못해 매일 패배하는 하위복서조차 부러워하며 말한다. 케이크 기술자와 복서 중에 뭐가 더 좋냐고? 당연히 복서지, 만약 아무리 약한 복서라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난 주저하지 않고 선택할거야. 나 역시 그렇다. 프로 근처에도 못 가본, 사회체육만으로도 허덕거리는 몸을 지녔지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매일매일 다시 태권도를 할 수 있다면. 응? 나의 처자식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