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와 첫 나들이.
집에 돌아오니 아내의 표정이 평소보다 훨씬 밝았다. 무슨 일 있냐 물으니 노래하듯 가락도 넣고 춤을 추며 말한다. 아이고, 오늘 울 소은이가 을매나 더 효녀였는지 아십니까~ 낮잠도 딱딱 잘 자주고, 깽알거리지도 않고~ 덕분에 집 청소도 싸악 하고, 빨래도 싸악 해서 널고, 아기용품 소독이랑 건조도 다 하고, 여보야 퇴근해서 할 일이 줄었지롱~ 듣고보니 정말 평소에는 여기저기 온통 치울 것 투성이이던 집이 휑할 정도로 깨끗하다. 게다가 어머니가 손수 만들어오신 목상(木床) 위에 유리까지 얹어놓으니 제법 태가 났다. 아내는, 오늘 같은 날은 여보야 도장 한 번 슁 갔다오이소~ 라고 말했지만, 흥, 어림없지, 어딜 또 낚으시려구... 대신 날씨가 참말 좋아 이번 주부터 계획했던 아이와의 나들이를 함께 가기로 했다.
보기에는 재개발이 안 되어 복잡하고 지저분하고 허름한 안양 땅이지만, 그래도 집 앞에 있을 것 다 있다. 연중무휴 운영하는 커다란 마트와 병원과 약국과 편의점과 맛있는 술집, 산책삼아 십여분 정도 걸으면 안양역 근처에 큰 영화관이며 서점, 백화점도 있고, 무엇보다 산에 맞닿아 살던 본가에 대비되어 신혼살림 앞에는 그 유명한 안양천이 있어 언제나 사람들이 걷고 뛰었다. 하여 아이를 아기띠에 매어 단단히 고정시킨 뒤, 나는 자질구레한 살림가방을 챙겨 아내의 뒤를 나섰다. 해가 서서히 져 식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 자전거 타는 사람, 뛰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이 서로 엉켜 제법 붐비었다. 그런 이들에게 마늘이나 음료를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와 아내는 1시간 정도 쭈욱 걷다 돌아왔는데, 사람들이 어찌나 아기가 이쁘냐며 많이들도 쳐다보시고 물어보시기도 해서 좋았다. 아이는 난생 처음 접하는 바깥 풍경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방을 쳐다보다가 일정하게 걸으며 흔들리는 어미의 품이 좋았는지 금방 잠들어버리었다. 바람은 선선하고, 공기는 맑았으며, 강변따라 메리골드며 해당화, 자운영이 피어 코로나가 생각되지도 않을만큼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아내는 오랜만에 맘껏 보는 녹색이라며, 평소와 다르게 아주 오래 걸었다. 마스크와 깔따구만 없었다면 더할 나위 없을 좋았을 터이다. 깔따구는 놀랍게도 표준어이며, 파리목 깔따구과에 속하는 날벌레인데, 흔히 여름에 접어들거나 가을이 깊어갈 때 주로 무리지어 보이는 벌레들을 일컫는 말이다. 언뜻 보기엔 모기 같기도 하고, 하루살이 같기도 하지만, 그 유충은 진흙 속의 유기물을 먹고 오염 물질을 분해하여 자연의 순환에 일조한다. 다만 번식기가 되면 목숨을 걸고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낭만주의자들이기도 한데, 덕분에 자전거 등의 야외 운동을 즐기는 이들에게 악명이 높고, 알러지 비염 등의 원인이 된다고 해서, 우리 부부 역시 혹시 아이에게 닿을까 싶어 잠든 아이의 얼굴에 손수건을 뒤집어씌우고 열심히 춤을 추듯 날벌레를 쫓았다.
아이의 손발을 씻기고 푹 재운 뒤, 빨랫감을 정리하고, 생고기와 회를 차렸다. 아내는 처녀 시절 육회는 종종 먹었다지만, 생고기는 내가 권하여 난생 처음 먹어봤다 한 뒤 완전히 푹 빠졌다. 오죽하면 고기 대주시는 문신 형님이 사모님께서 술도 아니 드신다면서 생고기 참 좋아하시는 모양이라고 웃을 정도다. 1시간을 땀나도록 걸었더니 아내는 출출한지 딸기 요거트 한 컵 뚝딱 하시고, 생고기가 당긴다며 입맛을 다셨다. 문신 형님은, 그 동안은 잘 움직이지 않는 우둔살의 안쪽 부위를 두껍게 썰어드렸지만, 이번엔 지방이 낀 앞다리살을 얇게 썰어드렸다며 맛을 비교해보라고 권했다. 값이 싸서 함께 사온 병어회는 역시 제철이 아니라 기름기가 없고 물에 빠뜨린 듯 물컹거려 맛이 없었다. 대신 얇게 썬 생고기에 와사비를 살짝 바르고, 조미김을 싸서 먹으니 정말이지 다른 안주가 필요없었다. 나는 새로 받은, 뚜껑 없는 텀블러에 얼음을 넣고, 밥 잘하는 유진이가 결혼 축하 선물로 담가준 야관문주를 또 꺼냈다. 2년 동안 야곰야곰 마셔서 절반 가량 줄어 있었는데, 병을 따는 순간 더욱 숙성되어 독한 향이 사방에 진동했다. 술을 못하는 아내는, 악마의 향기데이! 하며 손사래를 치셨다. 독한 술과 생고기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오랜만에 아내가 좋아하는 와이어트 어프를 2판 6라운드 하여 2연승하였다. 실로 오랜만의 승리라 살짝 돋은 취흥에 기뻐할 새, 너와 곽 선생이 통렬히 비난하였다. 와... 남편이 되어가지고 자비없게.. 형수님을.. 언니를.. 와... 이런 어용언론, 관제언론 같은 것들이...?!!! 딸아, 네가 어서 커서 아비의 태권도와 더불어 보드게임의 원수도 갚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