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759일차 - 역치( 閾値)에 대하여

by Aner병문

아내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부리나케 도장으로 갔다. 내 이런 일도 있을까 싶어 도장에는 도복을, 가방에는 속옷과 수건을 늘상 가지고 다닌 덕을 본 셈이다. 이틀 뒤에 오는 아이 백일을 맞아 머리를 깎고, 사범님 드실 커피 사서 찾아뵈니 사범님 또 평소처럼 야, 살찐거봐, 애 키우긴 좋겠네, 그 배 위에 애 딱 올려놓는건가? 하고 웃으셨다.



도복 바깥으로 밀려나오는 군살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래도 참말 희한한 것이 도장에 오는 순간부터 그토록 미어질듯 후벼낼듯 쑤시듯이 아프던 어깨가 아프지 아니하였다. 무릎도 발목도 가볍고 부드러웠다. 아니, 솔직히는 틀을 할때 조금 아프기는 했지만 내가 신경쓰지 않을만큼 즐거워서 그럴 터이다. 퇴계 틀과 충무 틀을 조금 헷갈린것 이외에는 틀을 그다지 잊어버리지 않았다. 중요한건 신체 능력이었다.



기초 중의 기초인 앞차부수기식 스트렛칭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버팀발이 후들거리었다. 살찐건 둘째치고 근력과 유연성을 다 잃어버렸다. 하단차기의 감을 잃어 허리도 제대로 못 돌렸다. 2주 뒤에 승급심사를 보고 일단은 영국으로 돌아가는, 스물두살짜리 핏덩이 케빈과 알이 붕붕 날면서 턴차기 하는 동안, 나는 몸이 무거워 헐떡거리며 틀 연무와 근력, 유연성 운동을 겨우 마쳤다.



힘들고 아팠지만, 심지어 씻고 나오자마자 금세 근육통이 몰려왔지만 누가 시켜서 한 일도 아니니 오랜만의 태권도가 당연히 즐거울수밖에 없다. 다만 오늘 아침도 더이상 몸을 방치할 수 없어 아내의 허락을 받고 안양천변에서 30분 섀도우와 달리기를 하고 왔다. 이제 여기서부터가 다시 내 반환점이자 새로운 출발점이 될 터이다.



그러므로 역치( 閾値)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생체에게 어떠한 고통이나 자극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최소한의 값을 뜻하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딸아이가 아직 젊어 서툰 부모와 파장을 맞추어가며 삶에 익숙해져가는 과정도, 왜 갑자기 이리 바뀌었냐며 불평하는 휴대전화의 업데이트도, 결국 변화에 대한 자극값이다. 그러므로 도장에서의 자극도, 내게는 역치의 변화였다. 하루에 아주 조금씩이라도, 무엇이든 읽고 쓰고 말하고 생각하듯, 몸을 쓰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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