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영화감평)

스파이더맨 : 노웨이 홈

by Aner병문

감독 존 왓츠, 주연 탐 홀랜드, 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 윌렘 데포, 마리사 토메이, 젠데이아, 제이콥 배덜런 외, 스파이더맨 : 노웨이 홈, 미국, 2021.



변화는 상실을 전제로 한다. 고정되었다면, 변화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장은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다. 성장은 스스로를 부정하고, 탈바꿈시킨다. 그러므로 손을 펴야 새로운 것을 받을 수 있고, 놓아야 잡을 수 있으며, 잃어야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의 다정한 이웃' 스파이더맨은, 당최 뭘 얼마나 크게 얻으려 늘 잃기만 하는지 알 수 없다. 원작에서부터 시작하여,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이건, 마크 웹 감독의 스파이더맨이건, 마블의 한 축으로 우뚝 선 존 왓츠의 스파이더맨이건, 아버지 같던 삼촌을 잃고, 여자친구와는 늘 삐걱대고, 돈은 없고, 스트레스도 풀 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니까' 자경단 노릇도 하지만, 경찰이며 언론은 늘 스파이더맨을 못 잡아서 안달이고, 더군다나 두 이면의 삶을 살자니 참 만만한 노릇이 아니다. 피자집 알바도 쫓겨나고, 비정규직 사진 기자 일도 간당간당하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좋아하는, 최고의 스파이더맨은, 꽃사슴 같은 여린 눈망울에 불쌍하다 못해 궁상맞기까지 한 토비 맥과이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실수투성이인, 십대의 어린 스파이더맨-탐 홀랜드의 스파이더맨 또한 결코 놓칠 수 없다. (사실 앤드류 가필드의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은, 오히려 '가장 유복하다' 가 평가받은 마블의 스파이더맨보다 훨씬 더 '잘 나가는' 기분이었다. 졸업식에서 그웬과 당당히 키스하며 환호받는 피터 파커라니... 그런 피터 파커는 내 피터 파커가 아니라고..ㅠ)



이미 두 번의 스파이더맨을 충분히 겪었던 관객들에게, 마블은 새로우면서도 결코 동떨어지지 않은 스파이더맨을 선보여야 했다. 가장 어리고, 실수가 잦으며, 좌충우돌하면서도, 한 명의 성인이자 영웅으로 우뚝 서고 싶은 스파이더맨. 인피니트 사가의 모든 영웅들이 복잡한 결핍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반드시 성장해야 하는 필연적 숙명을 안고 있는 것처럼,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 성장해야만 하는 많은 이유를 가졌다. 적당히 가난하고, 한부모 가정이고, 곧 대입을 앞두고 있으며, 가지고 있는 큰 힘에 비해 정신적으로 미성숙하여 늘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오이디푸스적으로 갈등하고 대립하면서도 사랑하고 존경한다. 토비 맥과이어 주연의 스파이더맨 3부작처럼, 역시 3부작을 통해 점점 하나의 영웅으로 우뚝 서가고, 또한 스파이더맨 팬들에게는 무려 선물과도 같은 시니스터 식스와,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를 연상케하는 다른 차원의 스파이더맨들과 어울리는 '우리 차원의' 스파이더맨에게 이웃 이상의 동질감을 느낄 수 밖에 없을 터이다.



아직 개봉한지 얼마 안된 영화이므로, 서사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는 따로 적지 않으려 한다. 다만, 새롭게 개봉하는 마블 두번쨰 시리즈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이 영화 또한 강렬한 가족 공동체를 갈구하는 서사를 반복하기에, 그 분위기는 제법 무겁고, 우울하다. 재미와 흥미보다는 스파이더맨을 영웅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의미를 부여하는 서사라고 봐도 좋을 터이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으므로, 단지 나는 왜 마블 스파이더맨 연작 부제에 항상 '홈home' 이 들어가는지만 말하고 싶다. 캡틴 아메리카가 구조에서 태어났지만 구조에 반발하고, 반면 자본의 수호자로서 가장 구조에 길들여지지 않으려 했던 아이언맨이 오히려 구조를 지지하는데 비해서, 스파이더맨은, 앞으로 사회 구성원으로 구조에 편입되어야 하는 십대다. 그에게 '홈' 은 십대로서 소속되어야 하고, 그에게 역할과 연대감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하지만, 스파이더맨의 '홈' 은 명확하지 않다. 사회 바깥에서 당당히 정체를 드러내고 인정받는 어벤져스의 다른 영웅들에 비해 스파이더맨은, 오랫동안 자신의 정체를 감춰야 했다. 그런 그를 사회 구성원으로 훈련시켜줘야할 '홈' - 가정, 학교, 사회는 그에게 온전히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피터 파커는, 미드타운 고등학교의 우등생으로 MIT도 갈망하고, 따뜻한 가정, 여자친구와의 애정, 소꿉친구와의 우정도 중시하지만, 동시에 어벤져스의 일원으로 큰 대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세우며 사회에서 소란을 피우는 일도 즐겨한다. 그러므로 변덕이 심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는 십대 스파이더맨을 온전히 담아줄 '홈'은 가까이 있는 듯 멀다. 어떤때는 온듯(Coming)하다가도 다시 금방 또 멀어지다(Far from), 아예 갈 길조차 잃어버리고(No way)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은, 사실 그동안 마블이 보여준 오락성 영웅서사 영화라기보다, 차라리 한 청소년의 성장 영화에 훨씬 가깝다. 소년은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어린 시절의 치기 어린 낭만을 가슴 아프게 놓아주고, 잃어버리고, 상실해야 하지만, 이미 먼저 성숙한 어른들- 두 스파이더맨이 교류해주고 그를 긍정해주기에 그는 어른스러운 영웅으로서 능히 성장할 수 있었다. 이는 성장하기 위해 끝내 아픔을 스스로 선택하고 위대한 영웅으로 탈바꿈한, 어느 '다정한 이웃' 의 관한 이야기다. 또한, 90년대부터 우리의 영화관을 즐겁게 해주었던 모든 스파이더맨들을 등장시켜, 여러 차원의 스파이더맨이 어떠한 결핍과 서사를 가지고 그동안 세상을 지켜왔는지도 세세히 설명해주었다. 그러므로, 이로서, 스파이더맨은, 진정으로 완성된 모습을 가지고 새롭게 태어났다 선언해도 좋다. 그 한 축을, 내 젊은 시절을 담당해주었던 토비 맥과이어가 다시 보여주어 정말 고마웠다. 닥터 옥토퍼스의 역할을 맡은 알프리드 몰리나와 토비 맥과이어가 서로 눈빛을 교환하는 그 모습은.. 어우 야..ㅠㅠㅠ 그것만으로도 14,000원 영화 값 안 아깝지..ㅠㅠ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