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916일차 - 드디어 조금씩 맞서기의 길이 보이긴 시작했지만!

by Aner병문

수영강사 미스터 문과 칠순의 강 선생님께서 각자의 승단 심사를 앞두고 보 맞서기에 좀 더 주력하고 싶다고 하시어서, 노부인과 젊은 청년은 사이좋게 마치 조손지간이나 모자지간처럼 주먹과 발을 주거니 받거니 보 맞서기 연습을 하였다. 그럼 나는? 당연히 맞서기하는 금요일만을 기다려오신 공도 형님과 또 신나게 맞붙었다. 어제 대략적으로만 붙어서 많은 기술들을 쓰지 못한게 아쉬워서, 나는 모처럼 레거스와 발등 보호대까지 전부 다 차고, 형님과 권투 규칙으로 2라운드, ITF 규칙으로 2라운드, 하단차기까지 넣어서 2라운드, 총 6라운드를 각 3분씩 했다. 어제 나도 생각해본 바가 있어 좌우로 계속해서 움직이면서 복부를 주로 공략하고, 치고 빠지고 옆으로 돌거나, 반대 돌려차기, 혹은 뒤돌아옆차찌르기의 변칙적인 공격을 계속해서 시도했다. 안그래도 짧은 팔다리인지라 키도 체중도 훨씬 위인 형님과 상대하느라 체력이 점점 떨어지면서 당연히 열세로 몰리게 되었으나, 5~6라운드쯤 들어서니 몰아치던 형님도 힘드신건 마찬가지. 그쯤 되니 나 역시 형님의 거두는 공격을 따라 거리를 바짝 좁히고, 좌우 훅-돌려찌르기를 칠 수 있었다. 이때의 요령은 일단 맞더라도 어느 정도 들어간 다음, 상대가 공격을 거둘 떄 따라들어가 몸을 바짝 붙이고 얼굴 위쪽으로 길게 롱 훅을 좌우로 날리는 것인데, 이 방식이 제법 먹혀들었다. 일단 유효타가 생기기 시작하자, 형님도 좀더 많이 생각을 하시게 되었고, 그래서 하단이나 반대돌려차기 등을 넣어가며 계속해서 움직이는 와중에 기어이 일이 터졌다. 오른쪽 훅을 먼저 치고 왼쪽 훅을 치려고 반동을 주는 자세에서 형님의 오른쪽 훅이 동시에 서로 교차한 것이다. 권투로 치면 카운터 맞는 식으로 내가 형님의 주먹에 스스로 얼굴을 갖다댄 꼴이라 정말이지 턱에서 쯔걱 소리와 함께 눈앞에 별이 번쩍하고, 순간 정신을 못차려 잠깐 뻗었다.



몸무게가 40kg도 넘게 차이나는 장정의 타격을 턱끝 일점에 받았으니, 대번에 턱이 붓고 위아랫니가 제대로 맞지 않는듯한 특유의 불편한 고통도 고통이었으나, 머리가 띵하면서 속이 어지럽고, 기어이 밖에서 위액이며 속엣것을 조금 게워내어 도복까지 더러워졌다. 도장 화장실에서, 회사 화장실에서 철벅철벅 도복에 묻은 위액이며 이물질들을 빨아내고 있자니, 사람들이 흘끔흘끔 거리는건 둘째치고, 몸의 긴장이 빠지면서 얻어맞은 온 몸, 특히 집중적으로 하단차기를 연타당한 허벅지가 터질것 같았고, 주먹을 맞은 얼굴은 열이 올라 어지러웠다. 어찌어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가방을 보니, 아무리 두어번 빨아 쭉쭉 짜내어 비닐봉지에 넣었다 할지라도 이미 빨랫감이 된 도복에서 물이 새어 가방 밑바닥이 다 젖고, 다시 읽으려고 넣어둔 '연애소설 읽는 노인' 이 푹 젖어버렸다. 아, 팔다리도 짧고 속도도 느린 내가 그나마 조금 거구의 장정들과 붙어 이길만한 길을 조금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하루 감당해야할 거 너무 많네. 으하하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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