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예술 - 가끔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우리 삶에 깊이 박힌 것.

by Aner병문

어머니 아버지가 환절기에 며칠씩 앓아누우시어 행여나 코로나일세라 겁이 나신다며, 돌아오는 주말에 딸을 봐주시기가 조금 어렵다시었다. 서산도장 개관식이 있는 날인지라, 모처럼 안식구와 함께 호젓이 나서 밥 잘하는 유진이와 같이 서산 벽돌 사범님이 준비해주실 온갖 맛있는 향토 음식에 술을 부어마시고, 하루 묵어 서산이 자랑하는 벚꽃길도 보고 올 생각에 가슴이 뛰었는데, 그러지 못한다니, 아들 키워봐야 소용없다고 나는 노는 일정 줄일 생각에 풀이 죽었는데, 아내는 벌써 미나리를 굵게 썰어넣어 감자전분에 비벼놓고, 사과를 갈아넣어 집 앞 마트 문신 형님께 특별히 부탁한 질 좋은 사태를 쪄내어 음식하기에 여념이 없다. 며느리가 되어가 어머이 아버지 편찮으시는데 그럼 가마이(가만히) 있겠능교, 솜씨는 없어도 뭐라도 해드려야 옳지. 다행히도 어머니 아버지는 큰 일은 아니시었으나, 며느리가 손수 해다드린 음식에 매우매우 감동받으시었다. 한때 강철처럼 엄격하시던 어머니 아버지도 이제는 그저 세살배기 손녀의 '할비할미' 밖에 되지 않아 지금쯤 또 누군가에게 사진을 보내며 '아앗따, 이거이 우리 메누리가 보낸 음식이랑게, 아, 다 늙은 시부모 좀 아프믄 뭣이 어쩔까바서 기어이 음식을 해가꼬 오네잉~' 하실게 뻔하여 겉으로는 웃고 말았으나 아내에게 몹시 고마웠다.



지난 주 내내 아내를 집에 두고, 쉬는 날에도 저녁 반나절은 늘 도장에 있었고, 토요일은 하루 내내 도장에 가 있었으니, 아내도 드물게 낯이 좋지 않았고 ('참는데도 한도가 있다 안하능교? 도장 언제 함 찾아가야 될캉는갑다.' 억양이 살아숨쉬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고 즉시 집으로 왔다.ㅠㅠ) 너도 밥 잘하는 유진이도 내가 선을 넘었다며 아우성이었다. 언니 진짜 잘 참고 사네, 전 선생님 정신차려! 하는 너야 그렇다치고, 아니 똑같이 밤늦게까지 태권도하는 밥 잘하는 유진이 네 녀석이..심지어 울 안식구랑 이름도 같은 네 녀석이... 여하튼 지은 죄가 있는지라 찍소리 아니 하고 이번 쉬는 날에는 처자식과 붙어 어디든 가고자 했는데, 아뿔싸, 골목길을 지나다 그만 아내가 옆에 공회전 걸려 있던 렌트카와 슬쩍 부딪혔다. 정말 대단한 상처도 아니었고, 흔적도 없었는데, 배가 산더미처럼 나온 덩치 큰 중년 사내 둘이 불콰한 얼굴로 나와 상스러운 어휘를 섞어가며 투덜거렸다. 안식구도 낯이 좋지 않았고, 나 역시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지만, 아이도 있는데다 일단 우리 잘못이므로, 잠자코 있었다. 사실 나는 지나치게 남자가 거칠거나 선 넘는 요구를 하면, 제아무리 내가 운전이 서툴지언정 큰 소리를 내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역시 이런 일은 운전도 능숙하고, 세상사 훨씬 많이 겪은 아내가 더 나았다. 아내는 속마음이야 나빴겠으나, 정중하게 그냥 적정한 선에서 돈을 드리겠노라 했고, 남자도 원래 그 것이 목적이었는지 군말없이 물러났다.



찝찝한 기분을 떨구고자 우리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그냥 집 앞의 안양예술공원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아내나 나나 영 기분이 좋지 아니해서, 그냥 빨리 떨쳐버리고자 공원길을 쭉 걸었다. 속없는 아이가 신이 나서 꺄르륵 꺄르륵 웃고 있는 동안 비로소 우리 부부도 속이 좀 풀어졌다. 아이에게 간식을 먹이고, 아내가 좋아하는 아포가토와 베이글을, 나는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셨는데, 커피 온도가 아주 절묘하여 펄펄 끓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아 혀에 감기는 맛이 최적이었다. 안그래도 유명한 외식사업가의 이름을 걸고 몇천원 이상의 값을 받으면서, 오로지 맵고 달고 짠 자극만이 있을 뿐, 혀에서 기분나쁘게 풀어지는 식감의, 저질 식자재를 잔뜩 쓴 편의점 도시락 따위에 지친 나로서는 이 커피 한 잔이 정말로 감로수처럼 느껴졌다. 아내 또한 마찬가지라서, 안 그래도 큰 눈이 처져 피곤해보이던 사람이 구수한 베이글에 치즈와 블루베리 잼을 바르고, 에스쁘레소에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한 접시 뚝딱 먹고 났더니 다시 생글생글 접시꽃처럼 밝은 사람이 되었다.



아이가 서서히 잠이 들 때라, 우리는 다시 아이를 태우고, 공원 곁길로 향해서 산 중턱까지 올랐다 내려왔다. 안양예술공원은 말 그대로 다양한 설치조형물이 구간별로 전시되어 있으며, 기간에 따라 새로운 작품들이 전시되기도 한다. 우리는 늘 보던 작품들만 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무로 된 평평한 길을 따라 유모차를 밀고 갈수록 우리가 보지 못했던 예술 작품들도 많이 보여서 새삼 공공사업의 효용성을 깨닫게 해주었다. 하기사 모든 시민들이 쉽게 올 수 있는 예술공원에 정기적으로 공모하여 예술 작품들을 사들여 전시한다면, 안양시 소재의 예술가들에게는 동기부여 호구지책이 되니 좋고, 우리 가족 같은 시민들 또한 손쉽게 예술 작품을 접할 수 있으니 더할 수 없이 좋다. 이 작품이 예술 작품임을 깨닫고, 어떤 뜻일까 고민하게 하는 조형물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작품이 예술 작품인지 모르고 지났던 것들도 꽤 많았다. 우리는 나중에서야 안양 파빌리온에서 그 모든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첫 시작은 안양예술공원 중턱의 '파라다이스 살라' 에서 알았다. 우리 부부는 소은이가 있기 전부터 그 낡은 정자를 자주 보고 그냥 좋은 정자구나 하고 지나쳤는데, 알고보니 그 정자는 한국 예술가와 결혼한 유명한 태국 학자가 손수 합작하여 지은 정자였다. 살라는 태국 말로 정자 라는 뜻이며, 한국어와 태국어로 각각 현판이 정자 위에 걸려 있다. 하기사 우리 부부는 그 당시에 한창 연애 같은 신혼을 보내느라 한국어건 태국어건 외계어건 신경 안쓰고 살 때긴 했다. 엊그제서야 보니, 정자 천장에는, 마치 불교의 탱화를 연상케하는 천상의 그림과 지상의 그림을 과거-현재-미래의 순으로 절묘하게 배치했는데, 그 배경은 또 한국인지라, 사랑하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태국 남편의 만족감이 손에 잡힐 전해져왔다. 새삼 몇 년간을 지나쳐왔던 이 정자 또한 누군가의 의도가 가득 담긴 예술품이었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서 말했듯이, 안양예술공원 중간쯤에는 안양 파빌리온 이라는 작은 전시박물관이 있다. 파빌리온pavilion 또한 정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동 가능한 예술적 건축 조형물을 뜻하기도 한다. 안양 파빌리온 안에는 안양 소재의 예술가들, 활동가들의 다양한 면면을 볼 수 있으며, 특히 최근에는 안양시 곳곳에 어떤 예술품들이 있는지 전부 찾아볼 수 있다. 커다란 컴퓨터 화면 앞에는, 몇 개의 칩이 있어서, 그 칩을 꽂으면 칩의 기준대로 예술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를테면 '현재 관람 가능한 예술품' '인생 샷을 찍을 수 있는 예술품' '남아프리카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 등의 칩을 컴퓨터 앞 인식기에 꽂으면 즉시 그에 해당하는 목록이 나오는 식이다.


여기에서 우리 부부는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가 지나친 생각보다 많은 조형물들이 전부 다 예술품이었다. 대부분의 예술품들은 설치조형물인만큼, 사실 건축공학과도 깊이 맞닿아 있었고,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응 그냥 다리구나, 응 그냥 탁자구나, 응 그냥 의자구나, 하면서 별 생각없이 공공재라고 생각했던 기물들이 모두 누군가의 의도와 상징이 가득 담긴 예술품들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영상이 광고이듯이, 적어도 안양에서 벌써 5년 가까이 사는 우리 부부 역시 생각지도 못하게 많은 예술품들과 벗하며 살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므로 그 예술품들은 우리 부부에게 별다른 자극도 호기심도 주지 못한 채, 그새 하나의 일상품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의도도 있을 터이다.)



그 절정은, 김진주 작가의 이소 異素 였다. 이 작품이야말로 오며가며 거의 밥먹듯이 아이와 함께 안양천변을 걷는 우리 부부는 늘상 보던 작품이었다. 개발의 편자, 제눈에 안경이라고 우리 부부는 정말이지 이 작품이 작품이라고 생각도 아니 했다. (궁금한 분들은 한번 검색해보시라.) 그도 그럴것이 이 작품은, 애초에 나무 의자와 장기판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어린 시절을 안양에서 보낸 작가가 그 때부터 서로 옹기종기 모여 장기를 두는 어르신들을 보며, 인생의 끝을 마주하는 어르신들이 서로 낯선 이들과 모여 수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묘한 향수를 느껴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 작품은, 여러 어르신들이 한 곳에 모여 장기를 두는 모습을 연출하고자 고안한 인연의 도구이며, 심지어 밤늦도록 장기를 두실 수 있게 설치한 조명의 각도와 채도까지 정해두는 세심함을 보였다. 당 작품을 설치하기 까지, 어르신들에게 손편지를 걸어두어 양해를 구하는 모습도 작품 준비 설치안에 전부 기록되어 있다. 아내야 그렇다치더라도, 명색이 철학에 대한 고등교육을 받았다고 자부했던 나는 너무 무지했다. 일상의 매사에 호기심을 갖고 추동하는 힘이 철학의 기본인데, 나도 모르게 속세에 물들었었나보다.



우리 부부는 속세의 번잡함을 잊으려고 안양예술공원을 내내 걸었었다. 내가 유모차를 밀 동안 아내는 아기 짐을 담은 배낭을 메고 온갖 작품을 보며 즐거워했다. 둘레길 입구에서 초로의 아마추어 악사들은 기타를 연주했고, 어느 할머니는 또다른 병풍 작품 앞에서 반주가 가능한 마이크로 노래 연습을 하고 계셨다. 그 자리에 있던 작품 역시, 작년 여름 무렵에는 보수 때문인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던 박윤영 작가의 그림자 호수 였었다. 한자인 줄 알았던 무늬는, 한자와도 같은 그림 문자였고, 옛 당나라 그림과 같은 필체로 그려낸 그림들은 모두 현대의 이야기들이었다. 속세와 맞닿는 공원에서, 아내와 나는 속세를 잊으려고 애쓰며 즐거워했다. 번잡스럽고 시끄러운 속세로 내려가고 싶지 않았다. 아내와 나는 아이가 낮잠에서 깰 때까지 느지막하게 놀다가 비로소 돌아왔다. 나는 아내와 함께 순대국에 모듬 수육, 모처럼 남극의 순대국으로 가서 빨간 소주 한 병에 잘 먹고 아이 역시 하루 종일 돌아다녀 깊이 잠들었었다. 돈 몇 푼 들이지 않고 행복했던 하루를 기억한다. 예술에 대해 생각하고 놀았던 하루가 최고의 예술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