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훈련일지)

ITF 번외편 - 훈련 시간은 따로 필요하다.

by Aner병문

나중에 수요일까지, 이번 주의 지도 보조를 마치게 되면 또 따로 쓰겠지만, 그 동안 해왔던 화/목 자유 수련 시간의 지도 보조와, 월/수 정규 수련 시간의 사범님 부재중에 지도 보조를 맡는 것은 또 전혀 달라서, 나는 어제 무척 지쳤었다. 비록 본업은 아닐지라도, 스무살때부터 얕게나마 다양한 무공을 접해왔으며, 서른살 이후 사범님을 8년째 모시고 있는 나조차도 기진맥진한데, 이제 빨간 띠의, 승단을 앞두고 있는 콜라 사매는 더 힘들었을 터이다. 그녀는 사실 내가 없었던 2주 동안 몇 번이고 전화하고 싶었는데, 퇴근해서 아내와 함께 아이를 돌보고 있을 내게 함부로 도움을 청하기 망설여져서 차마 연락할 수 없었다고 했다. 사실 신체적 능력이나 무공은 명백히, 이십대 중반의 젊은 콜라 사매가 뛰어나고, 나는 그저 도장에서의 오랜 경험과 변변찮은 언변만이 조금 있을 뿐이지만, 분위기를 좀 잡아준 것만으로도 콜라 사매는 많이 부담을 덜었던 모양이다. 코로나가 확실히 많이 풀린 듯, 칠레에서 다른 계열의 ITF 초단을 딴 젊은 가비 사매가 입문했는데, 요전에 사범님께 듣기로 그녀의 꿈은, 한국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며 사는 것이라, 일년째 한국어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한다. 서양인 아니랄까봐 크고 당당한 풍채에 긴 팔다리를 쭉쭉 휘두르는 기세가 시원키는 하다만은, 신체 능력이나 기술을 떠나서 외국의 다른 계열 ITF는 새삼 틀과 동작이 전혀 다르구나 싶었다. 여하튼 꽤 오랜만에 도장에서 영어를 썼는데, sub instructor인 나는, 너가 잊어버린 동작 자체나 맞서기의 움직임을 봐줄 순 있지만, 틀과 동작의 원리는 Master인 우리 사범님께 다시 배워야할 것이라고 일러두었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워낙 새로 입문한 흰 띠 수련자들과, 또 부지런히 급을 올리고 있는 유급자 사제들이 많아 저녁 시간 내내 돌고 나니 정말 내 훈련 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술은 마셔야겠기에, 사범님 안 계시는 나흘 동안 마저 잘해보자고, 코로나 완화되는 자정 열두시까지 햄버거 사매, 콜라 사매와 의기투합하여 빠르게 소주 네 병 후루룩 마시고, 자정에 딱 다들 잘 보내었다. 그래도 훨씬 나보다 뛰어난 두 젊은 사매가 사범님 부재중에 나를 많이 도와주고, 또 너그럽게 대해주어서 고마웠다. 밥 잘하는 유진이가 함께 있었으면 더 든든했으리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으나, 그녀는 또 그녀대로 업장 일에 치여 바쁘다. 다행히도 잘생긴 형주와 새로 초단 승단한 한재 동생이 늠름한 유단자의 품격으로 바쁠때마다 도와줘서 감사했다.



여하튼 사제들이나 동문들의 실력은 뛰어나지만, 늘 내 실력이 문제이므로, 오늘도 아이 재울 시간에 밤에 나와 두어시간 틀과 보 맞서기 연습을 했다. 사실 최근에야, 내가 옥상에서 세게 뛰면 밑 층이 울린다는 사실을 깨닫고 살살 뛰고 있다. 그렇게 해도 온 몸에 땀이 빼족 솟는다. 어느덧 봄이 왔다. 3단 승단을 볼 연말이 또 금방 온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짧은 끄적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