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를 풍미한 거부, 돌아가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관람기
아내는 사실 본인의 취향은 아니지만, 내가 보면 무척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몇 달전부터 계속해서 돌아가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신청을 해왔다고 했다. 아내의 표현대로라면, 방탄소년단이나 나훈아 선생 콘서트 예약보다 더 힘들더란다. 어르신들을 위한 오전 시간 접속 사이트가 따로 있을 정도라고 하니, 새삼 당대를 풍미한 거부가 모아놓은 보물이 무엇인지 대중의 관심이 많았을법하다. 혜안과 애국심으로 사재를 털어 망국의 보물을 일부라도 보호한 간송 선생의 미술관 역시 한 해에 두 번인가 개방할때마다 사람들이 몰리지 않던가. 아내가 작년 말 쯤에, 초반에는 워낙 예약이 힘들다며 투덜거리기에 그깟 거 보면 어떻고 안 보면 어떠냐며 아내를 위로하고 말았는데, 기어이 남편 좋으라고 끝내 예약을 성공했다고 기뻐하길래 참 고마웠다. 그 날 일정이 급하게 변경되지만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어쨌건, 안그래도 육아, 회사, 도장 등 세 마리 토끼를 잡느라 바쁜 남편을 대신해 일정을 어찌어찌 잡아서 기왕 잡은 예약은 겨우 후다닥 볼 수 있게 되었다.
잠시 아이를 맡기고 모처럼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서울 중심지로 올라가고 있는데, 요정처럼 예쁘고 애교많은 금발 소녀와 그 오빠인 듯한 소년이 마주선 외국 부모와 함께 노약자석에 타고 있다. 어린 날의 해리 포터마냥 굵은 테 안경을 쓰고 뿌루퉁한 얼굴의 오빠에 비해, 곱실곱실한 금발을 늘어뜨리고 빵글빵글 웃는 소녀는 진짜 어디 광고에 나오는 아기 모델처럼 예뻤다. 난 사실 한동안 영어를 못 써서 아이고, 돈 안 주고 영어 쓸 수 있는 기회가 언제 오나 내심 노리고 있었는데, 옆에 앉은 할머니가 스윽 일어나 나가시자, 강단 있어 뵈는 갈색 머리의 젊은 외국 엄마가 우리 부부에게 눈짓을 하며 조심스레 묻는다. She...? 기회는 왔도다, Oh, No problem, We don't need it. 내가 빨리 말해주자 그녀도 안심한 표정이었고, 그로부터 물꼬를 터서 나는 금천구청역부터 서울역까지 두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닌게 아니라 남편은 미 공군이었고, 아내는 놀랍게도 쇼토칸 가라테 초단을 딴 채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 부인이었다. 정권 못이 희미하게 박힌 내 손을 보여주자 그녀도 놀라워하며, 자신의 사범님-센세 사진을 보여주었다. 우리 부부는 육아, 무공, 영어 공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사실 마스크를 감안했다고 해도 나는 두 부부의 말 중 거의 절반 정도밖에 못 알아들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영어를 쓴것 치고는 꽤 대화가 잘되어서 다행이었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주로 얘기를 나눈 탓도 있을 터이다. 월 7만원 값은 잘했네, 라고 위안이 되었고, 도장에서도 미즈 가비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크게 불편함은 없으니 다행이다. 커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겠다는 여덟살 아들과, 또 아이스크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딸을 둔 젊은 엄마는, 아들딸이 크면 바로 가라테를 시킬거라며 눈을 불태워서 웃고 말았다. 신혼 여행시절부터 외국인이 말을 걸면, 그 큰 키로 내 등 뒤에 숨는 아내가, 저 사람들이 뭐라캤는데 그래 크게 웃습니꺼? 하기에 아따, 들어보소, 이 양반도 아들딸들 좀 더 크면 가라테 시킨대잖애, 나도 소은이 다섯 살 되면 띠로 걍 묶어다 사범님께 딱 바치불라네, 하자 아내는 아이고, 무술하는 사람들은 다 그런갑데이, 하며 손사래를 쳤다. 미국에서는 레슬링이 워낙 유명해서, 젊었을때 레슬링을 오래 했다는 남편은, 벌써 눈치를 채고, 아내에게 '아, 당신은 안 좋아하나보군?' 하고 물었고, 아내도 예쓰, 예쓰, 아이 라이크 스위밍. 아이 돈 라이크 파이트! 해서 우리 또 웃고 말았다. 나중에서야 사람들이 꽤 우리를 흥미롭게 쳐다본다는 사실을 알았고, 미국 가족들은 KTX를 타야 한다며 서울역에서 내렸는데, 그때 한 어르신께서 함께 내리시며, 자 가자! 렛츠고! 하며 두 아이들을 앞장세우시는 광경 또한 꽤 재미있었다.
오랜만에 향하는 정독도서관 근처 북촌은 또 그럴듯하였고, 나는 잠시 너와, 또 밥 잘하는 유진이와, 털보 형님과 일하던 젊은 시절이 떠올라 잠시 옛 기억에 사로잡혔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만 주로 가본 나는, 서울관은 처음이라, 이 곳에 즐비한 수많은 노신사, 노부인들과 또 젊은 부잣집 도령들, 아가씨들이 많아 아, 너무 아저씨처럼 대충 입고 왔나, 라는 생각이 드물게 들었다. 아무렴 어떤가, 쉽게 못 볼 구경을 하러 왔는데, 하는 생각으로 정시 발권을 기다리며 미술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예약한 시간이 1시라면, 1시에 정확히 발권을 시작했고, 이후 1시간 동안 57점을 볼 수 있었다. 아내는 미술을 보는 일에 그닥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랏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전시를 배치하는 방식에는 매우 관심을.보였는데, 문외한인 자신 조차 왜 이런 배치를 했는지, 왜 이런 조명을 썼는지 알 수 있겠다며 놀라워했다. 아내는 직관적이고 이해가 쉬운 그림들을 좋아했고, 나는 요즘 부조와 조형물에 빠져 있었다. 요컨대 진중권 선생의 지적처럼, 고전 미술이 재현에 목적을 두고, 사진 이후의 근대 미술이 자본과 현실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움직임에 목적을 둔다면, 회화보다는 부조나 조형물이 추상을 표현하기 훨씬 어려울 터이다. 요컨대 캔버스라는 형식을 지닌 회화는, 무엇을 그려두든 사람들이 '아, 뭔가 그린 예술이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선과 면과 무게, 질감 등을 단순히 표현한 조형물, 예컨대 내가 철사 몇 개를 구부려 전시하거나, 나무를 깎아 올려놓은 상태에서 분실한다면, 과연 사람들이 그것을 예술품이라고 인식할지, 아니면 '어디서 쓰던 도구를 버려놨나, ㅡ쓰레기인가.' 하고 인식할지 알 수 없다. 캔버스라는 형식을 감안한다고 해도, 부조와 조형물은, 추상 예술의 의도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세밀한 제조 기술도 필요하거니와 그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도구나 쓰레기로 전락하기 일쑤다. 그러므로 나는 언제부터인가 부조나 조형물의 예술적 가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회화처럼 부조물을 캔버스 안에 넣어 색을 입힌 권진규 작가의 예술품을 한 시간 동안 눈여겨 보았고, 아내는 무릉도원을 그린 동양적 산수화가 좋다며 흠뻑 빠져 있었다. 역시 산을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다웠다.
나는 오랫동안 글을 쓰고자 노력했지만, 그 꿈을 접은지 오래고, 무공이 출중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무공이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의도의 발현이라는 사실은 이해하고 있다. 즉, 태권도의 모든 자세들은 그 의도와 목적을 알지 못하면 난해한 춤사위와 다를 바가 없다. 아내와 나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예술이 무엇인가 에 대해 꽤 오랫동안 이야기 나누었다. 아름다운 싯구가 문학을 아는 사람에게만 이해되고, 무공의 기술이 무도인들에게만 회자되며, 예술이 오로지 예술의 소양을 갖춘 이들에게만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우리는 계급 사회라고 한다. 예술이란 과연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이에게도 명징한 마음의 울림을 주는 것인가, 나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한동안 오랫동안 도장에 있어, 배우든 배우지 않든 물리적 충격을 몸소 겪는 사회에 오래 있었던 나는, 이런 생각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아내는 늘 나더러 어려운 사람이라며 킥킥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