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히 적을 곳이 없어서(사는 이야기)

코로나에 걸렸었어요.

by Aner병문

지금까지도 코로나에 걸리지 아니했다면, 당신은 친구가 없는 사람이라고 어느 학자가 잔망스럽게도 연구했다던가. 다니는 곳이야 늘 회사 - 집 - 도장밖에 없으니 나 역시 늘 그렇듯 무사할 줄 알았다. 안식구 역시 오로지 아이만 보듬고 사니 그 안쓰러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어도 특별히 어데서 옮길 일이야 없을 줄 알았으나, 아뿔싸, 성격이 활달하다 못해 난삽하기(!!)까지 한 딸내미가 그예 옮겨왔을 줄 뉘 알았으랴. 하기사 어찌 생각하면 당시만 해도 마스크 쓰기도 참 싫어하는데다, 어쨌든 바깥 놀이터에서 이름 모를 언니 오빠, 혹은 동년배들과 매일 어울려 씨름하니 옮기지 않는 것도 이상하다 하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장모님께서 잠시 와계시던 때였는데, 늦은 밤 근무를 하던 날에 안식구와 여동생의 전화가 많이 와 있었다. 벌써 2주 전의 밤이지만, 소은이가 콧물과 열이 심하기에 자가키트로 검사해보았더니 대번에 양성반응이 나오더란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퇴근이 한 시간 남짓 남았는데 어찌나 일이 안 잡히는지, 다행히도 회사에서 배려해주셔서 대략적인 일을 처리하고 바로 퇴근할 수 있었다.



회사의 예상으로는, 지금까지 자제가 걸리면 배우자도 걸리고, 배우자도 걸리면 당사자도 걸리기 마련이므로, 중간중간 증상 보고만 하고 격리 기간에 따라 재출근을 결정하자고 했었다. 아니나다를까, 기분 탓인지 어떤지 그날 밤부터 조금씩 몸이 으슬으슬한가 싶더니, 그 다음날은 이상하게 하루종일 졸려서 장모님 뵙기 면구스럽게도 하루 종일 잤고, 낮밤으로 아이의 체온을 확인하며 해열제로 열을 다스리거나, 그예 열이 높아지면 홀딱 벗겨 찬물로 몸을 씻기던 아내 역시 예상대로 코로나에 걸렸다. 좁은 집 안에서 네 식구가 복닥거리니 어찌 나라고 아니 걸렸겠나. 나는 집안에 격리된지 3일만에 역시 확진이 되었고, 장모님은 일주일간 우리 세 식구 뒤치다꺼리만 실컷 하시다가 처가에 내려가셔서야 비로소 확진 판정을 받았다.



세 식구의 증상은 각기 다르게 왔다. 소은이는 열과 콧물이 심했고, 아내는 기침과 가래가 끓으며 목소리가 완전히 쉬었고, 나는 목이 아프면서 두통과 오한, 근육통에 몸살을 앓았다. 나는 유독 하염없이 졸려서, 정말이지 장모님 계실때는 염치불구하고 거의 하루 종일 잠만 잤다. 안식구는 아토피 때문에 면역억제제를 먹고 있었으므로, 코로나 약과 함께 복용하느라 약효가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몸이 새 것인데다, 제 어미의 헌신적이고, 정확한 의료 지식 덕분인지 소은이는 큰 병치레없이 2~3일만에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났다.



장모님이 처가로 되돌아가시고 난 뒤부터는 내 할일이 막중했다. 아내는 금방 지치고 힘들어하는데다, 밤에 주로 아이를 돌봐야 했으므로, 나는 깨어 있는 동안 집안일을 도맡고, 또한 하루 두번씩 반드시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기운을 빼주었다. 멀리 나가거나, 혹은 다른 실내로 들어가거나 할 수 없었으므로, 그늘 하나 없는 땡볕 아래 옥상에서 아이와 단둘이 놀아주느라고 나도 소은이도 까맣게 탔다. 아내는 소은이를 보면서, 아이고메, 이래 보마 서울 아 안 같고 어데 촌여자 같으데이, 하며 웃었다. 이러구러 법정 격리일 뿐 아니라 회사의 배려로 아내가 기운을 차릴때까지 주말 포함하여 보름 가까이를 쉴 수 있었는데, 사실 집안일과 아이를 돌보느라 눈코뜰새없이 바빴고, 사이사이 훈련량을 유지하고, 논문을 읽고, 영화도 가끔 보고 그러느라 회사 다닐때보다 더욱 정신이 없었다. 정말이지 사람 만나고 술 마시는 일 제외하면 집안에서 거의 무엇이든 다 했던 날들이긴 했다.



제일 큰 수확은, 가까이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아이는 새삼 몸이 크고 여물고 단단해진 것도 모자라서, 과할 정도로 제 고집과 의지가 생기고, 고민도 아주 많이 하는 세살배기 소녀로 컸다. 아직 말이 완전히 트진 못했으나, 잠시도 쉬지 않고 문장을 만드려는 듯 옹알이를 해대며, 제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들고 던지고 잡고 휘고 꺾고 맛보고, 호기심을 쉴새없이 드러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더욱이 어른들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하고 싶어서, 특히 아내가 밥을 짓거나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주방에 있는 동안, 행여나 불 떄문에 다칠까 둘러쳐놓은 울타리도 이제는 예사로 타넘을뿐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물통, 혹은 바구니, 작은 의자, 사다리 등을 다 끌어다붙이고 눕혀보고, 어떻게든 고민하며 그것을 딛고 서서 개수대 안을 들여다볼까 하는 속내가 그 동그란 눈과, 기우뚱대는 고개 속으로 다 보일듯하여 아내와 나는 정말이지 아이의 성장을 실감하며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는 여전히 흥이 많아 제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발벗고 뛰어나와 그럴듯하게 TV 속 율동을 그대로 따라하며 춤을 추었고, 노래도 비슷하게 부르고자 했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어떤 물건이든 가만 두지 않으며 전부 제가 원하는대로 만져보고 배치하고 올라타고 부수고 조립하려 들었다. 아이는 자꾸만 세상으로 스며들려 했고, 또 한편으로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제가 아는대로 끌어내어 확인해보고 싶어하였다.



그렇게 쉬고 났더니 정말이지 회사가 가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 전날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우울하여 기도도 오래 하였다. 한동안 일이 적응되지 않아 영 시간도 느리고 불편하여, 지나는 모든 분과 초들이 모래알처럼 까끌까끌 몸 속을 파내는 듯했다. 과연 노동이 인간의 본질인지, 이제 마흔을 앞두는 나는, 이십대의 나처럼 점점 확신할 수 없다. 나는 그저 빈한한 급여로 처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늘 발버둥치는 작은 가장일 뿐이다. 코로나는 어찌저찌 무사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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